말 못할 우울증
1. 할머니의 죽음
20대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고모와 고모의 딸인 내 사촌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방에서 자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있다가 밤이 되었다. 그때 사촌동생은 무척 어렸어서 내가 데리고 들어가 한숨 자고 나오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집으로 가려고 나섰는데, 뒤에서 친척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겁도 업데이"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시간이 지나 30대 중반즈음, 고모와 통화를 하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우울증으로 방에서 스스로 떠나셨다는걸.
2. 대화가 부족한 가족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시시콜콜 얘기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이었다. 저녁 자리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려하면 아빠는 "뉴스 본다"며 말을 끊고 TV에 집중하셨다. 엄마에게는 한번 "왜 나한테 궁금한게 없냐,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물어보질 않냐"며 따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니가 말을 안해줬잖아"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 나도 나이가 들면서 엄마와 아빠의 애정 표현 방식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댁에 가면 아빠와 엄마는 각자의 얘기를 하기에 바쁘다. 나는 그저 내 생활에 대해 "알아서 잘 하고 있다" 정도로 퉁쳤고, 정말로 알아서 잘 하는 편이었다고... 생각했다.
3. 회피 진행 중
여러가지 복합적인 결과로 나는 나의 우울증 상태를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답답하고 죄스럽다.
전화도 잘 하지 않고, 시골에 한번 오라는 얘기에도 갈게요, 말만 하고 가지 않은게 두달쯤. 6월말, 엄마아빠가 일을 보러 서울에 왔을 때, 아빠딴에는 걱정과 애정의 표현으로 "그때 아빠가 이러이런거 저러저런거 하라고 했을때 했으면 좋았지 않겠냐"라는, '그때 코인 샀으면' 같은 말을 했는데 그게 어떤 트리거가 되었다. 울컥한 눈물이 멈추지 않아 곰탕 국물에 눈물콧물 빠뜨리는 나를 보며 엄마아빠는 적잖이 놀랐고, 나는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힘들어서 운거 아니다, 아빠에게 그런 소리 듣는게 속상해서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아빠는 "엄마아빠한테 자식은 다 애 같아서 늘 걱정된다"며 그렇게 넘어갔지만, 나는 내가 선택해온 것,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여러가지 역할에 대해 모두 실패한 것처럼 느껴져 좌절스러웠다.
지금도 그것은 극복되지 못했고.
4. 말할 수 없어
주변에 우울증 약을 먹는 친구들이 서너명 있어 그들과는 숨김없이 얘기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하지만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죄스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 할머니의 케이스를 겪으신 두 분께 이 병이 얼마나 더 크게 받아들여질지가 걱정돼 나는 정말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엄마아빠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면 눈물이 난다. 엄마아빠의 걱정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나의 대답에도.
이럴땐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