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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카피 Nov 18. 2019

06 회사원이 되지마라?

 “회사원이 되지 마라” 모든 광고인들이 선배에게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 확실히 대부분의 회사원과 광고회사 제작팀 사이엔 다른 점이 있다. 출퇴근 시간이 조금 다르며, 주 52시간의 법망에서 벗어나 있으며, 인사팀보다 팀 내부의 규율이 작용한다. 하지만 광고인은 회사원이 아니니, 직장 예절에 구속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예의보다 기분이 앞선 사람들. 그게 곧 스웩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기분파’라고 말한다.


 기분파들은 꽤 매력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기분이 태도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그들은 회사라는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기분이 날 땐 세상 누구보다 유쾌 상쾌 호쾌한 장난꾸러기가 된다. 언뜻 보면 후배에게도 격식없이 장난치는 마음 넓은 선배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때문에 선배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광고회사의 신입들은 이들의 아기새가 되기 십상이고.


 기분파의 기분은 하루에도 들쑥날쑥한 바이오리듬을 보인다. 그저 기분이 나빠진 기분파가(별 시덥잖은 이유 때문일 때가 많다)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기새들은 ‘저 새끼가 또…’라는 생각 대신 ‘내가 뭘 잘못했나 자괴감이 들어…’하며 오히려 내 탓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전긍긍 10분 전 나의 언행과 행동을 되돌아보며 다시 호감을 얻기 위해 (그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이게 기쁨조와 다를 게 뭔가?)


 그들의 가장 나쁜 점은 오늘의 기분에 따라서, 같은 자극에도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저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뒷정리를 하던 때였다. 우리팀 기분파 부장님은 식후땡을 즐기기 위해,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여러분, 이게 사회생활입니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 무렵 우리에겐 작은 의식이 있었는데, 부장님이 나를 놀린다(양말이 그게 뭐냐~?) ->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 “이 짜식이~!”라는 말로 장난스럽게 받는다.는 간단한 친근감의 표시였다. 다만 그 날 내가 예상 못한 것은 ‘부장님의 기분이 별로다’는 변수였다. 하필 그는 식사시간에 기분이 나빠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나를 대하기 위해 나를 놀렸고, 나는 언제나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었고, 부장님이 그 때 했던 말은… 


 “야, 내가 니 친구야?” 왜 아이들에게 일관적이지 않은 육아가 가장 나쁜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날 이후 삐뚤어졌다.


 ‘기분파 광고인’의 기저에는 이런 마음들이 있다. “서로 예의를 지키는 그런 딱딱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겠어?”(하지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지) “솔직하고 유쾌한 감정표현이 곧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는 거라구!”(하지만 아랫사람은 너무 솔직해선 안 되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5시간씩 책상에 앉아 200자 원고지 200매를 쓴다고 했고, 장강명 또한 하루 8시간, 연간 2200시간 글쓰기 원칙을 고수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감정적인 충동이 창조적인 걸 만들어낸다고 착각하지만, 모든 일들은 결국 근면과 성실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광고인은 회사원이 아니라고 하지만, 소설가보다는 회사원이 아닐까? 그렇다면 적어도 회사원의 마음가짐을 장착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9-6 근무는 아직 요원해 보이지만…


Written by. 前 카피라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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