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말그대로 글을 ‘쓸 수 있는’(able) 사람부터(한국의 문해율은 97% 이상) 정말 ‘글을 쓰는’(professional) 사는 사람까지. 무엇이 되었든,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카피의 숙명을 암시한다.
카피에 대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직속 사수, 팀장, 광고주, 엄마, 친구, 다른 팀 회사 동료들까지 다양하다.
제작팀 상사에게, 특히 카피 선배에게 기대하는 피드백은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 제시이다. 대부분의 경우 다시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주거나 살릴 부분을 살려주고 나머지를 다시 써오라고 하는 등 구체적인 디렉션을 준다. 이들에게 들었을 때 가장 화가 나는 피드백은 ‘이 카피, 뭔가 좀 이상해.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느낌이 좀. 이게 다니?(혹은 얼터는 없니?로 끝남)’이다. 아파서 의사를 찾아갔더니 ‘당신이 아픈 건 정말 확실히 알겠는데, 이대로 가면 죽으실 것 같은데,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 상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야.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네 연봉 나 주던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일단 상사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여러 번 듣고 오면 내가 쓰는 카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고, 그때부터 상사 보고 전에 어떤 과정을 추가하게 되니, 그것은 주변 사적인 지인(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내가 쓴 카피(컨셉)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좀더 편하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인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피드백이 대부분 인상 평가로 끝난다. 그리고 본인들이 광고업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는 최대한 지양한다. ‘우리 딸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고슴도치가 쓰는 건 똥이라도 좋아)’, ‘올~(만 보내고 말 없음)’, ‘흠, 괜찮은데?(진짜인지 헷갈림)’ 등. 하지만 그들이 만약 ‘뭔 소리야?(생각보다 자주 듣는 말)’라는 반응을 보내왔다면 그냥 보고에선 빼면 된다. 정말 쓰레기 같은 컨셉이니깐.
사적인 지인과 상사의 피드백까지 넘어선 몇 개의 카피는 드디어 광고주에게 던지는 메일, 혹은피티 문서에 몸을 싣는다. 이후 광고주의 피드백을 기다리게 되는데, 사실 이때부터는 그냥 광고주의 내부 보고 라인에서 발생하는 사유로 인한 카피 수정 작업의 반복이다. ‘사장님이 상품명이 2번 더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데요’라는 이유로 억지로 몇 번 더 우겨 넣기도 하고, ‘마케팅 본부장이 15초 광고라도 USP를 세 가지 다 넣으셨으면 좋겠다는데요’라는 이유로 포인트인 카피를 삭제하고(이 컨셉때문에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USP를 넣기도 한다.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카피를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은 ‘이러려고 카피라이터 했나 자괴감 들어..’
T회사에서 교육 인턴을 할 때 광고를 하려면 광고주를 하라는 말을 카피라이터로 취업하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아주 먼 별에서 보내온 신호가 이제 잡히는 것처럼. 카피를 쓰려면 광고주를 해야하나?
그럼에도, 지리한 피드백 과정에 대해 ‘이건 광고업계의 생리야.. 그지같아..’라며 징징댈 수 만은 없는 것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의 경우는 피드백을 손을 거의 안타게 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내 말은, 아이디어만 월등하게 좋으면, 그걸 생각한 나도, 그걸 보는 친구도, 평가하는 상사도, 심지어 광고주까지. ‘이건 이대로 너무 좋네요’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 뭔가 애매하면 계속 고치고 싶은 눈화장처럼. 그러니 사실 원인은… 그 수많은 피드백 과정이 생겨나는 원인은… 어쩌면 내 아이디어가 구려서인가?
Written by 전, 카피라이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