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사의 거인들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흔히 아인슈타인이나 튜링을 먼저 말한다. 그러나 그들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직접적으로 지금 우리의 삶을 바꾼 인물이 있다. 바로 존 폰 노이만이다. 그는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구조적 원리를 설계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였고, 동시에 수소폭탄 개발을 밀어붙인 냉전의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 문명이 과학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어떻게 흔들려 왔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폰 노이만의 업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컴퓨터’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에서 출발했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를 전자기기, 즉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기계로만 떠올리지만, 원래 컴퓨터란 단어는 사람을 가리키는 직업명이었다. 복잡한 수학 계산이나 천문학, 군사적 궤적 계산을 전담하는 이들을 “컴퓨터”라 불렀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수천 명의 인력이 손으로 수식을 풀며 ‘인간 컴퓨터’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수소폭탄과 같은 압도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앞두고는, 인간의 속도와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계식 계산기를 넘어선 전자식 컴퓨터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드러났고, 폰 노이만은 그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읽어낸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넓은 영역을 넘나들며 발자취를 남긴 천재였다. 순수 수학에서 집합론과 함수해석학, 게임이론의 기초를 닦으며 경제학과 사회과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응용 수학과 물리학에서는 유체역학과 충격파 이론을 정립해 전쟁 중 폭발 압축 설계와 같은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컴퓨터 과학의 영역이었다.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저장하고, 데이터와 명령을 동일한 공간에서 처리하며, 입력과 계산, 출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의 원형이 되었고, 이는 ‘폰 노이만 아키텍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디지털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하는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원자폭탄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다며 윤리적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폰 노이만은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소폭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순한 찬성자가 아니라 계산과 설계에 직접 참여하며, 핵융합의 복잡한 반응을 해석하기 위해 초기 전자식 컴퓨터를 활용해 세계 최초의 대규모 물리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결국 현대 컴퓨터가 태동하게 된 배경에는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려는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폰 노이만은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정책가로서도 미국 정부에 깊숙이 개입했다. 국방부와 원자력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때로는 핵무기의 선제 사용을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펜하이머가 끝내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고백하며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면, 폰 노이만은 오히려 냉혹한 현실주의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윤리적 고민보다 냉전의 힘의 균형을 우선시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냉전기의 기술관료로서, 군사-산업 복합체의 핵심 두뇌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폰 노이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는 분명 위대한 창조자였다. 그의 이론적 업적은 여전히 과학과 사회 곳곳에서 살아 숨쉬며, 컴퓨터라는 문명의 토대를 놓은 공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위험을 가속한 인물이기도 했다.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를 옹호했고, 그 개발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를 20세기의 다 빈치라 부르며 찬사를 보내지만, 또 다른 이는 현대판 파우스트라 부르며 그가 인류와 거래한 위험한 선택을 비판한다.
폰 노이만의 삶은 인류에게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그의 천재성은 디지털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그의 냉혹한 현실주의는 핵전쟁의 위협을 가속했다. 원래는 사람의 직업이었던 ‘컴퓨터’라는 이름이 오늘날 모든 전자기기를 가리키게 된 것처럼, 폰 노이만이라는 이름 또한 과학의 창조적 빛과 파괴적 그림자를 동시에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는 결국 인류 역사 속에서 천재성과 위험성이 가장 극명하게 교차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