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니즘을 넘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먹고사니즘을 오래 겪어본 사람이다. 그래서 먹고사니즘을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먹고사니즘은 대체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직원을 고용하는 순간, 기업은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조직이 아니다. 그때부터 기업은 사람의 삶을 매개로 돈을 벌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 국면에서 “이번 달을 넘기는 판단”이 기준이 되는 것은 정상이다.
그런데 내가 요즘 더 강하게 경계하는 상태는 먹고사니즘 그 자체가 아니다.
헛된 방향으로 정말 성실하게 살아가는 상태, 나는 이 상태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본다.
이 상태의 특징은 명확하다.
늘 바쁘다
늘 의미 있어 보이는 일을 한다
늘 “기회가 많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방향 감각이 선명해지지 않는다
이건 실패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가장 ‘그럴듯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성실함 자체는 미덕이다. 문제는 성실함이 방향을 대체하는 순간이다.
많은 조직과 개인이 이런 말을 한다.
“이건 기회라서요”
“지금은 가릴 때가 아니에요”
“일단 해두면 나중에 연결될 수 있어요”
이 말들은 대부분 생존 국면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 언어가 습관이 될 때다.
처음엔 질문이 이렇다.
이 일이 우리의 목적에 맞는가?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이 이렇게 바뀐다.
이걸 안 하면 손해인가?
이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목적은 사라지고 ‘기회 대응 능력’이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성실함은
자산을 만드는 힘이 아니라 타인의 계획을 완성시키는 노동으로 변한다.
이건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정부 과제, 투자 제안, 협업 요청, 외주 프로젝트. 이들은 모두 외부의 목적을 담고 있다. 그런데 내부에 명확한 방향이 없으면, 외부 언어가 내부 목적을 대체한다.
“일 잘한다”는 평판
다시 오는 연락
다음 기회
이 보상들은 중독성이 강하다.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을 앗아간다.
거절 = 위험
선별 = 사치
방향 점검 = 나중 문제
이 세 가지가 굳어지면, 조직은 움직이지만 이동하지 않는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에 있는 조직들은 보통 이렇게 보인다.
프로젝트는 계속 있다
매출도 완전히 끊기진 않는다
구성원도 바쁘다
하지만 내부를 보면 다르다.
모든 프로젝트가 1회성 대응이다
이전 경험의 재사용률이 거의 없다
“다음에는 덜 해도 되게 만드는 것”이 없다
이때 조직은 사실상 먹고사니즘을 넘어선 게 아니라, 먹고사니즘을 ‘정교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먹고사니즘은 언젠가 끝난다. 돈이 떨어지거나, 구조가 바뀌거나, 결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헛된 성실함은 다르다.
당장 망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말린다 해도 설득력이 없다
본인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가장 늦게 문제를 인식한다. 그리고 인식했을 때는 이미 방향을 바꾸기엔 너무 많은 관계와 선택이 엮여 있다.
Sprig은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프리미엄 식사 배달 스타트업이었다. 핵심은 ‘배달’이 아니라 ‘완성된 한 끼’를 고급스럽게 설계해 제공하는 모델이었다. 그리고 Sprig은 56M 달러 이상을 투자 유치했다. (Bloomberg.com)
여기까지만 보면, 이 회사는 먹고사니즘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함정이다.
식사 배달은 본질적으로 다음 조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재고가 ‘음식’이라 폐기 비용이 높다
물류가 ‘시간’에 묶인다
품질이 ‘매번 일정’해야 반복 구매가 생긴다
마진이 얇은데, 고객은 배송비와 가격에 민감하다
즉, 이 시장은 “성장하면 해결”이 아니라 성장할수록 복잡성이 폭증하는 쪽에 가깝다. Sprig은 운영을 확장하려고 메뉴를 늘리고 리테일 공간까지 실험했지만, 결국 사업을 접었다. (fooddive.com)
Sprig 같은 유형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이거다.
자금이 있으니 “당장 돈 버는 구조”의 검증을 뒤로 미룬다
검증이 늦어지니 비용 구조가 먼저 굳어진다
굳어진 비용 구조 위에서 고객을 늘리려 하니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결국 “성장”이 생존을 돕지 못하고, 생존을 더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핵심 문장은 하나다.
투자는 먹고사니즘을 제거하지 않는다. 먹고사니즘을 ‘보이지 않게’ 만들 뿐이다.
먹고사니즘은 원래 잔인하다. 하지만 그 잔인함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얼마에 팔아야 사는가”, “무엇을 줄여야 하는가”, “누가 실제로 돈을 내는가”를 강제로 묻게 만든다. 투자로 그 질문을 늦추면, 질문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청구서로 돌아온다.
Fab은 한때 “차세대 초고속 성장 스타트업”으로 불리며 크게 주목받았다. 그리고 Fab은 수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과도한 지출과 불안정한 모델로 급격히 무너졌다. (Business Insider)
이 사례를 “과도한 투자 때문에 망했다”로 끝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중요한 건 방향을 잃은 성실함이 자금과 만나면 어떤 형태로 폭발하는가다.
Fab은 한때 높은 밸류에이션, 빠른 확장, 공격적인 운영으로 상징됐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고, 큰 폭의 지출과 구조조정을 겪었다. (Business Insider)
이런 경우에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번 기회만 잡으면”이라는 논리가 반복된다
그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직은 더 바쁘게 움직인다
바쁨이 곧 진척처럼 보이기 때문에, 방향 점검이 실종된다
결국 성실함은 축적이 아니라 소각이 된다
돈은 방향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돈은 이미 가진 방향을 증폭한다.
방향이 맞으면 → 학습 속도를 높인다
방향이 틀리면 → 틀린 길로 더 빨리 간다
Fab은 그 후자의 전형이다.
Maple은 뉴욕 기반의 건강식 배달 스타트업으로, 2015년 대규모 투자를 받았고 한때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사업을 종료하고 기술 자산을 매각했다. 이 분야에서 Munchery, SpoonRocket 등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맥락이 함께 언급된다. (Axios)
이 사례는 Sprig와 함께 “식사 배달이라는 카테고리 자체의 구조적 잔혹함”을 보여준다.
물류/재고/품질/마진의 동시 제약
확장할수록 늘어나는 운영 난이도
단기 성장으로는 덮이지 않는 비용 구조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단순한 결론이다.
어떤 시장에서는 ‘열심히’보다 먼저 ‘구조’를 인정해야 한다.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 열심히는 미덕이 아니라 손실을 키우는 능력이 된다.
이제부터는 이름이 아니라 현장에서 가장 흔한 유형을 말한다. 이 유형은 실패하지 않는다. 대부분 꽤 오래 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정부 과제 제안이 들어오면 그 틀에 맞춰 쓴다
협업 제안이 오면 목적을 묻기 전에 일정부터 맞춘다
외주 요청이 오면 “일단 받자”가 기본값이다
이때 조직 내부에는 이런 문장이 쌓인다.
“지금은 가릴 때가 아니다.”
“일단 해놓으면 연결될 수 있다.”
“이번만 잘하면 다음이 열린다.”
이 문장들이 일정 기간 조직을 살린다.
문제는 이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직의 운영 원칙이 된다는 점이다.
대응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응력만 남는 조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성을 잃는다.
프로젝트는 남는데, “우리의 제품”은 남지 않는다
경험은 쌓이는데, “우리의 기준”은 쌓이지 않는다
실무는 성장하는데, “우리의 방향”은 더 흐려진다
이 조직은 보통 2~3년쯤 지나서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잘하는 조직인가?”
질문이 늦게 나올수록 비용이 크다.
이미 조직의 매출 구조, 인력 구조, 관계 구조가 외부 기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Basecamp(37signals)는 창업자들이 ‘재고’라는 제목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정리하며, 속도와 확장에 대한 통념을 의심했다. (Medium) 이 사례를 “부트스트랩 성공”으로만 소비하면 의미가 없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이 유형의 조직이 지속가능성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대체로 같다.
성장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가/통제 불가능한가’로 판단한다
통제 불가능한 성장은 조직의 방향을 흔든다. 조직의 언어를 바꾼다. 조직의 리듬을 부순다.
Basecamp의 방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될 것 같은 일”보다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고르는 기준.
이건 멋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
Mailchimp는 2001년 설립 후 외부 자금 없이 성장한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2021년 Intuit가 120억 달러 규모로 인수했다. (포브스) 이 사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큰 엑싯”이 아니다. 중요한 건 순서다.
부트스트랩의 핵심은 “투자 안 받았다”가 아니라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스스로 설계했다는 데 있다.
돈을 벌어봤기 때문에 비용 감각이 생긴다
비용 감각이 생기면 선택 기준이 생긴다
선택 기준이 생기면 “거절”이 가능해진다
거절이 가능해지면 방향이 선명해진다
이 순서가 없다면, 지속가능성은 오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지속성장가능성은 ‘희망’에 머문다.
무엇이 바뀌어야 먹고사니즘에서 지속가능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가?
시간이 아니다. 노력의 총량도 아니다. 판단 기준과 축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전환의 조건과 최소 방법론이 필요하다.
먹고사니즘 국면에서 대부분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번 달을 넘길 수 있는가?”
“이 기회를 놓치면 위험해지지 않는가?”
지속가능성으로 넘어가는 순간, 질문이 바뀐다.
“이 일을 끝내면, 다음에는 무엇을 덜 해도 되게 되는가?”
이 질문이 모든 일의 입구에 붙기 시작하면 전환은 시작된다.
답이 당장 없어도 상관없다.
질문을 붙이는 순간부터 일의 설계가 바뀐다.
기회는 늘 외부 언어로 온다. 그래서 외부 언어를 내부 기준으로 번역해야 한다.
아래 네 가지 질문은 수락/보류/거절을 가르는 최소 게이트다.
기회 판단 표 (4문항)
이 일은 우리의 방향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대체하는가?
끝나고 나면 재사용 가능한 자산(문서·기준·템플릿·플레이북)이 남는가?
우리가 하지 않아도 6개월 내 치명상이 없는가?
이 일을 반복할수록 자유도(선택권·속도·비용 통제)가 증가하는가?
활용 예.
4개 중 3개 이상 ‘예’ → 수락
2개 이하 → 보류 또는 거절
1개 이하 → 즉시 거절
이 표의 핵심은 ‘용기’가 아니다. 사후 설명이 가능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성실함은 기본값이다. 문제는 축적 단위가 없을 때 성실함이 소모로 끝난다는 점이다.
아래 세 가지는 가장 작은 축적 단위다.
상황: 어떤 선택의 순간이었는가
기준: 무엇을 중요하게 봤는가 (최대 3개)
선택: 무엇을 택했고, 무엇을 버렸는가
결과: 즉시/지연 결과
다음 기준: 다음번에 바뀌어야 할 판단
목적: 감각을 기준으로 환원
효과: 다음 결정의 속도 증가
자산명: (예) 제안서 구조 v1
용도: 언제 쓰는가
구성: 핵심 항목 5~7개
주의: 실패/주의 포인트
최신화: 날짜·담당
목적: 경험을 검색 가능하게
효과: 재사용률 상승
입력: 언제 시작하는가
단계: 1~5 단계
산출: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
체크: 실수 방지 항목
목적: 사람 의존도 감소
효과: 반복 비용 감소
이 세 가지가 프로젝트마다 최소 1개라도 남으면, 성실함은 즉시 자산으로 전환된다.
지속가능성으로 넘어가는 첫 신호는 매출이 아니다. 설명 비용이다.
같은 설명을 덜 한다
같은 질문에 문서로 답한다
회의 시간이 짧아진다
설명 비용이 줄어든다는 건, 조직 내부에 기준이 생겼다는 뜻이다.
거절은 결과가 아니다. 상태다.
거절의 근거를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나중에”가 아니라 “아니다”라고 말한다
거절해도 다음 달이 불안하지 않다
이 상태는 비전이 아니라 비용 감각에서 나온다. 돈을 벌어본 조직만이 거절할 수 있다.
먹고사니즘의 반복은 소모다. 지속가능성의 반복은 설계다.
반복 요청 → 템플릿
반복 판단 → 기준
반복 실수 → 체크리스트
반복을 만날 때마다 무언가를 남기는 조직은 이미 전환 중이다.
지속가능성은 추가가 아니라 제거로 시작한다.
아래는 실무에서 효과가 컸던 Stop List 예시다.
방향을 설명할 수 없는 협업
재사용 자산이 남지 않는 외주
단가만 낮추는 제안
일정만 당기는 요청
“이번만”이 세 번째 반복되는 일
Stop List는 분기마다 갱신한다. 갱신이 안 되면, 전환은 멈춘 상태다.
지속성장은 목표가 아니다. 선택권의 부산물이다.
선택권의 징후는 다음과 같다.
일정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고객 유형을 제한할 수 있다
가격을 스스로 정한다
실험을 실패로 기록한다
이 신호가 없는데 성장을 논하면, 그 성장은 사람을 갈아 넣는 확장이 된다.
“조금만 더 벌면 정리하겠다” → 정리는 먼저다. 수익은 뒤다.
“지금은 가릴 때가 아니다” → 가릴 수 없으면, 기준을 먼저 만든다.
“성실하면 언젠가 남는다” → 남는 것은 설계된 성실함뿐이다.
이 글의 목적은 동기부여가 아니다. 경계의 기준을 남기는 것이다.
이 성실함은 내 방향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남의 목적을 대신 수행하는가
먹고사니즘은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헛된 방향으로의 성실함은 통과 대상이 아니다. 그건 중단 대상이다.
전환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질문, 기준, 축적을 통해 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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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I Alchemist & Maestro 두드림
- Orchestrating AI, systems, and human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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