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 인사를 싫어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떠올렸다는 사실은 언제나 고맙다. 그럼에도 나는 명절이 되면 1:1 문자나 카톡으로 의례적인 인사를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받는 것도 편하지는 않다. 이 고백은 차가움의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그런데 명절 첫날 아침,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한 통, 두 통, 열 통. 알림은 짧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생각은 짧지 않다. 지금 읽어야 하나. 바로 답을 해야 하나. 비슷한 문장으로 답해도 될까. 혹시 빠뜨린 사람은 없을까. 답장이 늦으면 오해하지 않을까. 메시지는 따뜻하지만, 판단은 냉정하게 쌓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고맙다”를 느끼기 전에 “어떻게 처리하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나처럼 액셀러레이팅을 하고, 컨설팅을 하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연락처가 수천 개가 넘게된다. 그런 경우 명절 첫날 수백 개의 인사가 도착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그것은 더 이상 감정의 교류라기보다 동시다발적 이벤트의 폭주에 가깝다. 각각은 진심일 수 있다. 그러나 전체는 시스템 부하다. 나는 그 구조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나의 자율성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나는 휴식을 소중히 여긴다. 휴식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호출하지 않는 상태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런데 명절 첫날은 그 휴식이 가장 집단적으로 깨지는 날이기도 하다. 알림은 나를 다시 호출 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나는 다시 판단해야 하고, 응답해야 하고, 관계의 균형을 계산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가 주고받는 이 인사는 정말 관계일까, 아니면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집단적 의례일까?
명절 인사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프로토콜이다. 달력이 특정 날짜를 가리키면 우리는 거의 동시에 비슷한 문장을 보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그 문장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정겹다. 그러나 그 형식은 놀라울 만큼 균일하다. 관계의 깊이와 무관하게 거의 동일한 강도로 발송된다. 나는 그 균일성이 마음에 걸린다.
관계는 본래 비균일하다. 어떤 관계는 깊고, 어떤 관계는 얕다. 어떤 관계는 자주 만나고, 어떤 관계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 그런데 명절이라는 날은 그 모든 차이를 평평하게 만든다. 우리는 마치 동일한 거리에서 서 있는 사람들처럼 같은 문장을 교환한다. 그 평평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관계의 밀도가 흐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얕음 그 자체가 아니다. 부담이다. 관계가 부담으로 변하는 순간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답장을 미루게 되고, 표현을 다듬게 되고, 혹시 빠뜨린 사람이 없는지 목록을 확인하게 되고,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려 애쓰게 된다. 그때 관계는 교류가 아니라 관리가 된다. 관리가 시작되는 순간 자율성은 줄어든다. 자율성이 줄어들면 유연성도 줄어든다.
나는 사랑이 굳는 순간을 경계한다.
관계는 넓어질수록 관리의 유혹이 강해진다. 특히 공적인 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연결은 계속 늘어난다.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많은 사람과 협업하고,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넓이는 기회를 만든다. 그러나 넓이는 동시에 신호의 총량을 폭증시킨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느꼈다. 신호는 늘어나는데, 의미는 희석된다는 것을.
명절 인사가 고맙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모든 인사가 개별적 감정으로 체감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그때 나는 생각한다. 혹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부담이 되고 있지 않을까?
나의 한 통이 그 사람의 휴식을 깨고, 그 사람의 판단을 요구하고, 그 사람의 시간을 점유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방식을 바꿨다.
나는 1:1 의례 인사를 거의 보내지 않는다. 대신 페이스북에 인사 글을 올리거나 단톡방에 간단히 남긴다. 그 방식은 직접 호출이 아니다. 여기 인사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보세요, 라는 신호에 가깝다. 상대가 여유 있을 때 읽어도 되고, 읽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관계를 유지하되, 상대의 자율성을 점유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고객과 파트너, 직원과 주주에게는 다른 표현을 한다. 작은 선물을 보낸다. 생일을 챙긴다. 아무 이유 없이 문득 생각났을 때 연락한다. 그건 달력이 정한 날이 아니라, 관계의 밀도가 정한 타이밍이다. 나는 형식 대신 맥락을 택한다.
나는 관계의 넓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자산이다. 동시에 깊이도 중요하다.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어떤 협업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균형을 고민한다. 그러나 균형은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관계는 금세 피로해진다.
나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균형을 잡고 싶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관계, 형식이 없어도 존중이 유지되는 관계,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움직이는 관계. 나는 그런 구조를 선호한다. 명절 인사를 하지 않는 선택은 그 구조를 지키기 위한 작은 실험에 가깝다.
누군가는 서운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차갑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관계의 본질은 특정한 날의 문장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된 신뢰라는 것을. 달력은 관계를 환기시킬 수는 있어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명절에 문자 인사를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예의가 아니라 자율성이고, 형식이 아니라 관계의 밀도다.
명절이 아니어도 우리는 서로를 떠올릴 수 있다. 정해진 날이 아니어도 진짜 안부는 전해질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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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I Alchemist & Maestro 두드림(Two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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