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주며, 그래서 무엇을 얻는가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대개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상당수는 꽤 단순하다.
그 사람이 지금 나에게서 무엇인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정보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인맥일 수도 있고, 판단일 수도 있고, 어떤 결정권일 수도 있다.
혹은 그냥 내가 가진 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찾으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을 줘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대가로 나는 무엇을 얻게 되는 걸까.
이 세 가지가 명확하면 사실 크게 문제가 없다. 사람 사이에는 원래 이런 구조가 있다. 이걸 아주 어렵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거래다.
우리는 흔히 거래라는 말을 너무 차갑게 생각한다.
돈이 오가는 일에만 붙는 말처럼 느낀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거래 위에서 돌아간다.
시간을 주고 도움을 받는다.
정보를 주고 기회를 얻는다.
노력을 주고 신뢰를 얻는다.
형태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찾았을 때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제공하는지, 그래서 내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
이 구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종종 거래는 존재하지만 나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거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거래보다 조금 더 편안한 관계도 있다.
우정이다.
우정이 있는 관계에서는 계산이 조금 느슨해진다.
매번 따져 묻지 않는다. 당장 손익을 따지지도 않는다.
어떤 부탁은 그냥 들어주기도 한다. 어떤 도움은 그냥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우정은 거래를 없애지 않는다. 우정은 거래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 뿐이다.
서류를 쓰지 않아도 되고, 매번 협상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조건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뿐이다.
그래도 거래는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시간을 내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고 누군가는 기회를 얻는다.
다만 그 과정이 조금 더 자연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착각한다.
우정이 있으면 거래가 사라진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거래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덜 의식할 뿐이다.
그리고 이걸 헷갈리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떤 관계에서는 나는 계속 주고 있는데 상대는 계속 받기만 한다.
처음에는 괜찮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런 구조가 계속 반복되면 결국 한쪽만 닳아간다.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닳는다. 시간도 닳고 에너지도 닳고 감정도 닳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상태가 된다.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정말로 너덜너덜해진다.
걸레처럼.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관계는 무엇인가. 거래인가. 우정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사실 셋 다 괜찮다.
거래도 괜찮고 우정도 괜찮고 둘이 섞여 있어도 괜찮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야 한다.
거래는 거래라는 것.
이걸 모르면 사람은 쉽게 소모된다.
그리고 한번 소모되기 시작하면 회복하는 데 꽤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을 너무 계산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구조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사이에서 너덜너덜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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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I Alchemist & Maestro 두드림(Two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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