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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경험이 뇌에 남기는 흔적

위협과 결핍이 뇌 발달을 어떻게 바꾸는가

by 두드림

어린 시절의 경험이 뇌에 남기는 흔적


— 위협과 결핍이 뇌 발달을 어떻게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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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겪는 경험은 단순한 기억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 경험은 뇌의 배선, 즉 신경회로의 구조와 기능을 실제로 바꾸어 놓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역경(adversity) 은 뇌의 민감한 영역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평생의 정서와 인지 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2014년, Katie McLaughlin과 동료 연구자들은 방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어린 시절 역경을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개념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위협(threat)결핍(deprivation) 입니다. 이 모델은 지금도 발달정신의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널리 인용되는 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두 가지 축: 위협과 결핍


McLaughlin 팀은 모든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을 똑같이 묶는 대신, 성격이 다른 두 가지 경험을 구분했습니다.


위협(Threat): 아동이 신체적·정서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입니다. 학대, 폭력, 따돌림, 두려운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결핍(Deprivation): 아동이 적절한 자극이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험입니다. 언어·놀이·학습 기회의 부족, 부모의 방임, 사회적 상호작용 결핍 등이 대표적입니다.


두 가지 경험 모두 아이의 뇌를 바꾸지만, 영향을 받는 뇌 회로는 다릅니다.


위협은 경보와 조절 회로를 바꾼다


위협적 경험은 특히 편도체(amygdala)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을 변화시킵니다.


편도체는 위험 신호를 빠르게 감지하는 ‘경보 장치’입니다. 반복된 위협 환경에서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잉 반응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불안, 과각성, 위협에 대한 편향적 해석이 늘어납니다.

전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의사결정을 이끄는 ‘조율자’입니다. 그러나 위협이 반복되면 이 영역의 제어력이 약해져, 편도체가 보내는 경보 신호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합니다.


즉, 위협은 아이가 “세상은 위험하다”는 회로를 과도하게 학습하도록 만듭니다.


결핍은 학습과 기억 회로를 바꾼다


반대로, 결핍은 해마(hippocampus)두정엽(parietal cortex) 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해마는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기록 장치’입니다. 자극이 부족하거나 돌봄이 결핍되면 해마의 발달이 지체되고,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두정엽 피질은 언어, 주의, 작업기억 등 고차원 인지를 다루는 ‘작업대’입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교육적 자극이 부족할 때 두정엽의 발달이 늦어지고, 인지 기능 전반이 취약해집니다.


즉, 결핍은 아이가 “세상은 배울 게 없는 곳”이라는 신호를 받게 만들며, 인지적 성장의 기초를 약화시킵니다.


더 이르면 더 크게, 더 오래면 더 깊게


McLaughlin 연구팀이 강조한 또 하나의 교훈은 시기와 기간입니다.


발달 초기에 겪을수록 영향은 더 큽니다. 뇌 배선이 한창 형성되는 시기에 역경을 경험하면 구조적 차이가 크게 남습니다.

오래 반복될수록 흔적은 더 깊습니다. 단기적 경험보다 지속적·반복적 경험이 더 큰 누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 종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현상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운명은 아니다


이쯤 되면 한 가지 걱정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평생 어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나요?”


연구자들은 분명히 말합니다. 아니라고.


뇌는 평생 변할 수 있는 가소성(plasticity) 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 따뜻한 돌봄, 사회적 지지, 풍부한 학습 경험은 뇌 회로를 회복시키고 성장의 길을 다시 열어줍니다. 실제로 방임을 겪었던 아이들이 양질의 돌봄을 받으면서 인지와 정서 기능을 회복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습니다.


즉, 역경은 분명히 흔적을 남기지만, 그것이 곧 운명은 아닙니다.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


McLaughlin 팀이 제시한 그림은 한 장으로 요약합니다.


위협(threat) 은 편도체–전전두엽 축, 즉 경보와 조절 회로에 영향을 줍니다.

결핍(deprivation) 은 해마–두정엽 축, 즉 학습과 인지 회로에 영향을 줍니다.

그 영향은 빠를수록, 오래될수록 커지지만, 보호적 환경과 개입을 통해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모델은 오늘날 아동 발달 연구, 임상 개입, 정책 설계에까지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Katie A. McLaughlin, Margaret A. Sheridan, Hilary L. Lambert (2014).

Childhood Adversity and Neural Development: Deprivation and Threat.

Annual Review of Clinical Psychology, 10: 28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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