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이남지 씀

문득 눈을 감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피하려고 애를 써 봐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쉬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해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끝냈을 때 돌아오는 건 보상이 아니라 다음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스스로가 부족한 것을 느끼는 순간마다 더 숨이 막힌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주변에서 인정을 해주고 칭찬해준다.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된다. “다음엔 못하면 어떡하지.” 단순한 운이 아닌 나의 실력임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오늘도 실험을 하다가 갑자기 어제 확인한 결과가 안 나오는 것 같아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그 장비를 고장 내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고장 났으면 어떻게 말하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고 마음 쓰는 시간이 늘었다. 지금도 내일 있는 미팅을 걱정하고 있다. 이 걱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만 싶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나를 인정해주고 싶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데, 하루 중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순간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피하게 된다. 그동안 너무 지쳐왔던 걸까. 나의 하루에 설레는 감정이 피어 날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올까.


이곳에서 벗어나게 되면 나는 덜 힘들까.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이제 너무 벅찬 것 같다. 그저 내가 나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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