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래전부터

by 이남지 씀

얼마 전에 좋아하는 일들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의 이야기를 세상 밖에 내뱉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네이버 블로그라는 서비스가 처음 나왔을 때에 엄마에게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다시 찾아보니 2003년, 지금으로부터 벌써 20년 전이다.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하고, 좋아하는 분야의 카페를 직접 개설하고 다른 온라인상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의 나는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갖는 조그마한 일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마냥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또 다른 소통의 길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학교 때는 태블릿이나 아이패드가 없었음에도 마우스로 손글씨를 적고, 포토샵으로 효과를 주곤 했다.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배워본 적은 없지만 그 소소한 취미가 이어져 지금은 책의 디자인을 직접 하고 있다. 미술 시간에는 ‘캘리그래피’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나는 10명의 친구에게 줄 크리스마스 엽서를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동네 문구점에서 붓펜을 사서 빈 공책에 글씨를 적곤 했고,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지칠 때 캘리그래피를 적곤 한다. 또 하나의 흥미는 손글씨 폰트였다. 손글씨 폰트를 제작해 주는 블로거이신 ‘어비’님을 통해 ‘어비 찌풍딩체’, ‘어비 가을빛체’, ‘어비 남지은체’를 제작하였고, 파란연필카페에 여러 번 도전하여 운영진 선택으로 ‘연필 이제리체’를 제작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온글잎이라는 사이트에서 ‘온글잎 투이디’, ‘온글잎 남지체’, ‘온글잎 투이디’를 제작하였다. 사실 사용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만 나의 손글씨가 폰트로 제작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참 다양했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 북디자이너, 웹디자이너, 연구원. 이 중 벌써 4가지의 꿈을 이뤘고, 연구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그 꿈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내거나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일을 할 때 몰입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심심할 때 자꾸 손이 가는 일들,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바쁘게 마치고 늦은 밤에 시작하더라도 몰입할 수 있는 일들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중에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 살펴보면 아예 보이지 않거나 아주 희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나의 마음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만든 방법이었다. 그러니 자꾸 딴 길로 새는 것만 같고,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들어도 조금만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자.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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