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쉼을 가졌음에도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그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지 정확히 리스트를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계속 맴도는 것이다.
작년 말부터 시작해서 나의 연구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기존에 하던 물질을 활용한 실험을 마무리하고, 이제 새로운 후보군을 찾아 연구를 이어가야 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되었다. 일단 참고 논문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으로 리스트를 노선에 정리하고, PPT에 내가 테스트해 볼 만한 후보 물질을 리스트업 했다. 그러고 나서 3가지를 주문하고 배송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연말 휴가 전에 모든 계획을 끝마치고 쉬기 시작했기 때문에 길게 쉰 다음에 다시 출근하면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 다시 오피스에 출근했을 때, 자꾸 다른 일을 하고만 싶었다. 얼른 퇴근해서 쉬고 싶다는 마음만 계속 지속되었다. 일찍 퇴근해서 여유를 즐기다 보니 또 밤이 빠르게 다가왔다. 잠에 들기가 싫어서 새벽 5시에야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너무 피곤해서 휴게실에서 2시간 정도를 잤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곤한 상태를 만든 이유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내가 미워졌다.
그러다가 같은 연구실 선배가 요즘 잘 되어가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나의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의 말에 나는 "그렇다."라고 답했지만, 그 선배는 요즘의 너를 볼 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래는 실험을 엄청 열심히 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 실험실에도 안 가고 오피스에 앉아만 있고, 퇴근 시간도 빨라졌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무기력한 이유는 연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배와 이야기하다 보니 나는 연구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잘 해내고 싶어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서 나아갈 방향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막막했던 것이었다. 그 선배는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도와준다고 했고,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새로 구매한 물질의 반응 메커니즘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고 했다.
요즘 무기력이 계속되고 출근해서 연구자로서의 삶보다 퇴근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머릿속이 복잡하였는데, 그 누구보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있고 그만큼 잘 해내고 싶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가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 지더라도, 조금씩 나에게 쉬는 시간을 주면서 남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중에 이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