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미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by 이남지 씀
‘분명 어릴 때는 마냥 행복했던 것만 같은데,
왜 지금은 ‘아,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박하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일일이 허락을 맡아야 하는 걸까?’


위에 적어 둔 생각들은 내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들었던 생각이다. 물론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도 혼자 사색에 잠길 때가 많긴 했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엔 ‘정말로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에 대한 생각이 유독 더 많이 떠올랐다.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항상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볼 때면 마냥 부럽기만 했고, ‘나는 왜 저렇게 웃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우울하고 외로워 보이는 것이 싫었고,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 내가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즐겁지 않을 때도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마냥 행복한 것처럼 지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면서 생활하니까 어떨 때 내가 행복했는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시험을 잘 봐서 행복한 감정이 들어도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한 것뿐일까? 나의 의지는 없었던 걸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타인에게 향하자, 나는 더 이상 삶에 의미를 잃어갔다. 어떤 일을 해도 즐겁지 않았고, 마치 로봇과 같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감정이 들었을 때, 나는 그 감정을 무시해버리고 싶었다. 나의 감정을 마주할수록 더욱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사라졌으면 했고, ‘기분전환’ 역시 필요했다. 그래서 잠시나마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내가 좋아하던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컬러링북’과 ‘캘리그라피’였다. 색연필로 컬러링북을 색칠하거나 좋아하는 가사를 캘리그라피로 적다 보면 가사에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고, 몰입되어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고, 힐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취미들은 곧 ‘자랑’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와, 잘한다.”, “금손이다.”하는 댓글이 달릴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뿌듯한 감정이 드는 것까지는 참 좋았지만, 갈수록 더 완벽하게 글씨를 적고 색칠해 나가려고 애를 쓰는 내가 문제였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문득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맞나’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심지어 컬러링북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다가, 게시글로 올리고 나서야 뭔가 하나의 과정이 끝마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묻어버리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은 내 것인데 그렇게 행복의 주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우선 내가 대체 어떨 때 행복했을까를 먼저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떨 때 행복했을까?’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 때


나는 몰랐던 것을 깨닫고 ‘아, 이거구나.’ 하고 배워 나갈 때 행복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었을 때는 뿌듯함이 너무 컸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행복’을 외면했던 이유는 예전에 단짝 친구에게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너는 친구보다 공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


그 당시의 나는 친구가 나에게 좋은 말만 해주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꽤 상처를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이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시선을 의식하게 된 첫 계기였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나를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생각할까 봐 겁도 났다. 다른 친구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자유롭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나만 저렇게 이야기할 용기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가 미워졌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공부하고 싶어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혼자 있을 때가 되어서야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너무 크게 신경을 쓰다 보니 너무 힘들었고, 내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꿈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기에, 거기서부터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찾아갔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내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이 한참 수능 공부를 할 때 나는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뭐든 될 수 있다고 믿었고, 희망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교내에 소논문 대회와 비전업 노트 대회가 열린다는 공고를 보고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가서 새벽 2~3시까지 자료를 찾아도 전혀 지치지 않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 결과 두 개의 대회에서 모두 1등 상을 탈 수 있었다. 교실로 올라가던 길에 봤던 벽에 붙어있는 내 이름을 봤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느꼈다. ‘아,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지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구나. 그래야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구나!’


마음을 표현할 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힘들 때마다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던 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다. 그때는 내가 ‘페이퍼 커팅 아트’에 한참 빠져있을 때였는데, 감사의 말을 캘리그라피로 적어서 액자에 담아 선물을 드렸다. 여러 페이퍼 커팅 아트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그리고 도화지의 색깔은 어떤 것이 좋을지 문구점에서 고르는 동안 마냥 행복했다. 등굣길에 액자를 신문지에 싸서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동안 선물을 받고 기뻐하실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물을 완성해서 드렸을 때, 선생님은 너무 감동적이라고 하셨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렇게 선물을 드린 후에 선생님께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 놓은 것을 봤을 때는 정말 벅차올랐다. 이처럼 나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감정들을 표현할 때 행복감을 느꼈다.


이렇게 쭉 돌아보니 잠시 잊고 있던 행복들에 대해서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느꼈던 행복을 회상해봤다면, 이제부터는 비교적 최근에 내가 어떨 때 행복했는지에 대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콘서트 & 팬미팅


신입생 때 나우리캠프가 끝나던 날, cheeze의 팬사인회에 당첨 되어 함께 셀카를 찍었다. 중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가수를 실물로 보다니! 정말 마냥 신기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cheeze가 단독 콘서트 「Short film」를 한다고 해서 예매를 했다. 음원으로만 듣던 노래를 라이브로 듣자 ‘아, 목소리 너무 좋다~! 내가 이 자리에 있다니!’라고 생각하며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콘서트 때 들었던 노래들의 순서를 되짚어보며 그대로 다시 듣기도 하였다. 그렇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기분이 좋았고 너무 행복해졌다. 그 해 겨울에 cheeze가 단독 콘서트 「Melting cheeze」를 또 한다고 해서 고민없이 바로 예매를 했고, 콘서트에 갔다. 이전 콘서트에서 한 번 들었던 노래였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들었다. Youtube ‘매직 스트로베리 사운드’ 공식 계정에 콘서트 영상이 올라왔는데, 시험 공부를 할 때마다 재생해서 들으면 콘서트에 다시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힘들 때마다 매번 듣곤 한다.





자신감 뿜뿜


내 대학생활의 터닝 포인트를 꼽아보자면, 그것은 바로 지금의 룸메이트를 만난 일이다. 바로 자기애가 넘치는 조이디(별명)이다. 기숙사 방에서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아, 왜 이렇게 못생겼지.’ 하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남지! 아니야~ 우리가 얼마나 예쁜데~.’라고 말해줬다.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정말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고, 남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 끙끙 앓곤 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용기를 내어 고민을 말할 수 있었다. 말하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친구와 공감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땐 같이 웃고, 친구가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을 때는 같이 화도 내주면서, 조금 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하고 나름대로 조언을 해주고 나면 뭔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가진 고민 탓에 생각이 많았을 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조언을 해줘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고마워요. 덕분에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을 해줄 때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은 것처럼 기운이 나곤 했다.



이렇게 숨겨진 행복을 찾는 ‘방법’은 매 순간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떨 때 행복한지 완전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의미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나의 ‘행복’을 완성해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나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뤘을 때 느끼게 되는 하늘을 나는 듯한 들뜨는 기분,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것과 행복에 대한 의미가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살다가 한 번쯤 ‘아,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개인마다 크기도 다르고,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도 다르다. 누구에게는 행복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소할 수도 있고, 어떠한 큰 목표를 성취하는 것처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무엇이든지 행복이 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그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가야 한다.



당신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오늘부터 살아가는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감정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만의 소중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에 대한 답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자기가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불행해지는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어떨 때 행복하지?’


우리의 하루 중 모든 시간이 행복할 순 없지만, 숨겨진 ‘행복’의 순간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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