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특별한 시간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기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기회의 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은 언제였을까.
특별한 시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기회하면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나의 대학교 3학년 2학기일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기간이 특별한 시간이자 기회였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졸업요건은 현장실습이었다. 방학에 4주 정도 진행하는 단기 현장실습과 학기 중에 4~6개월 동안 진행하는 장기 현장실습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주변의 친구들은 단기 현장실습으로 졸업요건만 채우고자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기왕 가는 거 6개월 동안 가고 싶어서 장기 현장실습을 도전했다.
장기 현장실습을 IPP(Industrial Professional Practice)라고도 불렀는데, 교내 IPP 센터에는 학과별로 담당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처음에 그 선생님과 면담을 신청하고, 이력서를 작성해보고 회사를 몇 개 추려서 학과장님께 서명을 받으러 갔었다. 그 학과장님은 내가 1학년 때 일반화학 수업을 들었단 교수님이었다. 나를 기억하셨는지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내가 들고 간 신청서를 보시더니 “남지가 집이 대전이었나?”라고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왜 대전에서 현장실습을 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가니?”라고 물어보시며 교수님이 대전에 아는 박사님이 있다고 하시면서 한국화학연구원 박사님께 연락을 하셨다.
너무 떨떠름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미래에 국가연구원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학교 현장실습 기업 목록에는 한국화학연구원이 없어서 기업을 등록하는 절차부터 거쳐야 했다.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박사님께 연락하시고, 또 IPP센터 선생님께 교수님 번호를 알려드려서 연락이 되었다. 그렇게 난 한국화학연구원에서 6개월 동안 장기 현장실습을 하게 된다. 내가 그 랩실에는 첫 장기 현장실습생이었다. 매달 입력해야 하는 출석부와 실습일지 등 박사님은 낯선 시스템이 많았음에도 잘 도와주셨다.
그렇게 나는 미세먼지 저감용 활성탄 연구를 도와서 진행하게 되었다. 활성탄이라는 것도 몰랐고, 그 활성탄을 만드는 피치라는 재료도 몰랐던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매번 미팅 때마다 새롭게 배우는 건 너무 많았고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다가 박사님께서 1 저자 논문을 적어보자고 하셨다. 국문지였긴 하지만 새롭게 연구를 진행해야 했고, 어떤 조건으로 실험을 할지와 어떤 분석을 진행할 지부터 정해야 했다. 매일같이 논문을 수정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설을 세우고 해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완성한 걸까 싶었지만, 나는 내 첫 논문을 장기 현장실습 동안 투고하게 되었다.
사실 그 시간에는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다 보니 많이 서툴렀고, 사람 간의 관계도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퇴근해서 많이 울기도 하고 힘들어했지만 나에겐 소중한 기회이자 시간이었다. 논문을 썼다는 성과를 인정받아 장기 현장실습 최우수상과 장학금을 받았고, 교내 발간지에도 나의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다. 거기에 적혀있던 문장이 생각난다.
“기회는 자력으로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우연찮게 찾아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것을 부여잡는 일일 텐데 많은 이들이 굴러들어 온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잦다. 이남지 학생은 그렇지 않았다. 현장실습 도중 찾아온 논문 제안이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텐데도 그는 기회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연구원을 꿈꾸던 나에게 연구원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하였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연구라는 것을 느낀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 입시 때도 장기 현장실습의 경험은 연구경험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카이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