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그리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게
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 나는 내 삶에 대해 가장 자신 있던 시기였다. 실패를 두려워하기엔 어렸고, 무엇인가 이루어 내겠다는 패기도 넘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은 '나의 시간'을 순식간에 멈추게 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털이란 털은 다 빠져버린 채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병원 밖의 세상은 마치 다른 행성 같았다. 그리고 '나의 시간'은 멈췄는데 세상의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의 시간과 맞춰 살아가던 때의 나는 세상의 중요한 일부라 생각했다. 오직 '자아'라는 앵글에 비친 세상만을 보고 살아가던 시기였기에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세상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털이 없는 인간으로 털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병원 밖 세상을 바라보니 그동안 큰 착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시간'은 고장 나 멈춰 있는데도 세상의 시계는 여전히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 당장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세상에 흘러넘치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왜 하필 내가 병에 걸렸을까라는 울부짖음에서, 나라고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내가 중심이었던 나의 사고가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향하였다. 지금 당장 사라져 세상의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미약한 인간이었을지라도 나를 기억해줄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내일 당장 끝이라고 하여도 기억할 추억을 만들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였다. 세상이 있어 내가 있었고, 그 세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꼭 죽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처럼, 살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인지 항암치료를 마치고 완치되었다. 다시 털 있는 사람으로 세상의 시간에 맞춰 살아온 지 이제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5년의 나의 삶은 다시 현실이었다. 치료를 받고 난 뒤 사람다워질 때까지 생긴 공백의 시간은 오로지 스스로 다시 쫓아가야만 하는 세상 시간과의 간격이었다. 취업을 하기에도 공백의 시간은 걸림돌이 되었고,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도 잦은 좌절로 한 풀 꺾였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온 현실이 혹독하였던 건 아니었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전에 생각하지 못한 직업이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더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살아가다가도, 그 고통을 잊게 만드는 행복한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말이다.
덤으로 다시 사는 삶이어도 삶이란 현실에 가끔 지치곤 한다.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다시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라며 YOLO족이란 달콤한 꿈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세상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려 한다. 세상이 있어 내가 있었고, 그 세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언젠가 다시 내게 찾아 올 세상과의 이별의 순간에 그래도 함께여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