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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Dec 25. 2021

<삽니다 아바이마을>화이트 크리스마스

왜 폭설이 내리고 그래

 눈이 온다는 소식은 들었다. '속초 날씨'를 치니까 주말에 눈 모양 그림이 걸려있었다. 주말이면 크리스마스잖아? 화이트 크리스마스 될 수도 있겠는데?


 작은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폭설 크리스마스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내내 이상하게 조용하더니 마당이 온통 하얗다. 김장 배추 절일 때 소금 치는 것처럼 눈이 내린다.


 서둘러 창고에서 녹색 쓰레받기를 꺼내왔다. 봄, 여름, 가을에는 현관 쓰레기를 받는 용도로, 겨울에는 눈 삽으로 요긴하게 쓰고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집에 눈 치울만한 도구라고는 이 쓰레받기 하나가 전부다!


 이사 오면서 오래된 눈 삽을 두 개 다 버리고 왔다. 눈 쌓이는 속도를 보니 2년 전에 두고 온 그 눈 삽 생각이 난다.


 어쨌든 창고에도 못 갈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녹색 쁘띠 눈 삽 하나를 챙겨 현관에 두었다.

 새벽 1시.

집집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배달하고 계실 시간지만 개의치 않고 깨어있는 나. 누워서 핸드폰을 보면서도 바깥이 슬슬 걱정되고있다. 대문 앞에 길만 낼까?


결전의 시간이 왔다. 웃음이 날 정도로 마당에 눈이 수북하다.

 속초는 원래 눈이 많은 곳이다. 해마다 눈을 치우며 알게된 것은 두꺼운 장갑을 껴도 젖으면 손이 시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무장갑을 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무장갑 안에 땀이 난다.


 윗부분을 먼저 공략했다. 쁘띠 눈 삽으로 위에 쌓인 눈을 훌훌 털어내고 본격적으로 바닥까지 긁어 눈을 퍼냈다. 거북이 걸음으로.

 어떻게 어떻게 대문까지는 왔는데, 이제 큰길까지 가보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큰 길은 제설차량이 한 번 지나갔는지 눈이 조금 덜 쌓였다. 그래 가보자!


 그 전에 깨끗한 눈에 한 번 누워봤다. 하늘을 보고있으니 얼굴에 누가 굵은 소금을 뿌리는 것 같다. 갑자기 엄마가 문열고 불러서 얼른 일어났다.


 누웠다 일어난 자리는 눈이 뭉쳐서 무겁다. 괜히 누웠다. 쓰레받기로 퍼내다가 지치면 눈사람도 만들다가 어찌저찌 길을 내긴 냈다. 집에 들어가려고 보니 치운 자리에 다시 눈이 쌓이고 있다. 그래도 안치운 것보단 아침에 덜 힘들거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모두가 잠든 밤.

세상이 조용하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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