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집을 구하다.
2019. 12. 21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진 것도 아닌데, 여기에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온통 푸르고 파란 이 동네가 내 것이 된 듯 느껴진다.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주소는 아바이마을, 아바이 순대를 먹으러 가는 바로 그 동네다.
이사 갈 동네가 청호동 아바이마을이라고 하면, '잉?'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살기 팍팍하고 어려운 느낌이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바이마을'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실향민'이다. '아바이'는 이북 말로 '아버지'를 뜻하고, '아바이 순대'도 이북 음식이다. 주인 없이 노는 땅이 척박한 이 곳 모래톱 뿐이라, 전쟁 끝날 때 까지 임시로 살려던 것이 수십년이 지났다. 수도 시설이며 교통이며 불편한 것 투성이라, 청호동에 살던 사람들의 고생담이 흔하게 전해진다.
생계를 위해 명태와 오징어를 잡고, 손질하고 말려 팔았다. <속초 시립 박물관>과 <아트 플랫폼 갯배> 에 가면 전시된 자료들을 통해 예전의 생활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오며 가며 보니, 주말에는 갯배를 타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속초 중앙 시장에 들렀다, 아바이마을 구경을 하는 게 코스인 듯 했다.
여기에 살면 전주 한옥마을에 사는 사람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좋을 때도 있고, 사람이 많이 오면 불편할 때도 있고, 좋은 풍경에 감흥 없어지는 때도 있겠지만...
새로운 동네에서 살 생각을 하니, 신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여름엔 아무도 없을 때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와야지. 매일 해 뜨는 걸 보면서 하루를 시작해야지. 이사갈 집 옥상에 빨래를 널고, 삼겹살도 구워 먹어야지. 이참에 인조 잔디도 깔아볼까?
매일 아침 바닷가에 나가 요가를 하고, 또 달릴거야.
낚시 해 본적은 없지만, 사람들 틈에 끼어서 밤 낚시도 해볼까?
밥 먹고 매일 저녁 산책을 나서야지.
한 번도 살아 볼 생각을 못했던 동네에서 살게됐다.
나는 물을 건너 집으로 간다.
호수를 건너 바다를 건너,
해가 떠오르는 그곳이
이제부터 내가 돌아갈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