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오아시스

<구) 커피빈 동대입구역점> 에서

by Julie



24/12/10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는 ‘홍천 휴게소’에서 10분간 쉰다. 속초로 돌아오는 밤 버스는 건너뛸 때가 많지만,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의 절반정도 위치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로 갈 때는 홍천(서울) 휴게소에 들르고, 내려올 때는 홍천(양양) 휴게소에 들르는데 각각 다른 매력이 있다. 돌아올 때 아직 밝은 오후 햇살이 남아있는 시간이라면, 휴게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촌 풍경이 멋지다. 바다만큼 숲도 깊고 푸르다는 느낌을 준다.


서울로 올라갈 때는 오전 9시 무렵 홍천 화촌농협 하나로마트에서 하는 로컬매장이 문을 연다. 속초에서 아침 8시 넘어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를 타면, 홍천 휴게소에 들렀을 때 열려 있을 것이다.

오전 9시 31분 홍천 휴게소(서울 방향). 이 시간에 휴게소에 도착한 걸 보니 8시 30분 버스를 탔었나 보다. 속초에서 홍천 휴게소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자,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전력질주! 휴게소 오른편에 있는 로컬 매장으로 달린다. 몇 번 둘러본 결과, 관심이 가는 물건은 두 가지다. 홍천에서 만든 약과, 그리고 홍천 한우로 만든 육포.


‘춘희 약과’와 ‘순옥 약과’ 두 가게의 여러 가지 약과를 팔고 있는데, 이 날은 옥수수 가루가 들어간 춘희약과를 골랐다. 아쉽게도 홍천 한우 육포는 품절이다. 자동차를 타고 와서 여유 있게 매장 구경을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다시 버스로 복귀했다.

3분 정도 남겨두고 버스에 올라탔다. 10분간 쉰댔는데, 인원 체크가 끝나니 칼같이 출발하시는 기사님. 뛰어오길 잘했구나.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에 좀 졸다가 문득 눈을 떴다. 50분쯤 달려 서울까지 거의 왔는데,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늘 지나는 얕은 언덕의 자전거도로 너머로 한강이 보인다. 멀찍이 테크노마트, 워커힐 호텔이 보이면 곧 내릴 때가 됐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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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반에 속초에서 출발, 홍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10시 40 분쯤에 동서울에 도착했다. 순탄하게 막힘없이 온 편이다. 터미널 앞 횡단보도를 건너 강변역 화장실부터 들렀다. 아무래도 터미널 화장실보다는 쾌적하다.


서울에 가는 날은 미리 메모장에 세워둔 계획대로 움직인다. 즉흥적인 면만 있는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J?


일단은 명동에 갈 거라서, 2호선을 타고 을지로 입구로 향했다. 지하철이 뚝섬에서 한양대역으로 움직일 때, 작은 하천과 움직이는 차들, 짧은 쉼표 같은 바깥 풍경이 마음에 든다. 언제라도 쳐다보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시선이 겹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기도 한 것 같다. 뭐, 예전엔 지하철 무가지를 읽던 게 핸드폰으로 옮겨간 것뿐이니까.( 2010년에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공짜 신문을 보던 풍경이 생생하다. 그 신문의 내용은 마치 요즘 ai가 읽어주는 가짜뉴스 같은 느낌이었다. 다 읽은 신문은 좌석 위 선반에 올려두고 하차하곤 했다.) 삶에 때때로 바다가 필요한 이유는, 서로의 시선이 겹치지 않는 탁 트인 장소라서가 아닐까. 부대끼며 마주하기보다 여유를 갖고 같은 지점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니까.

을지로 입구에서 슬슬 걸어 다시 지하의 명동역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꼭 가보고 싶은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동역에 델리만주 1호점이 있는데, 1호점인 만큼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갔다. 전에도 명동역에 간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델리만주 가게를 의식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어느 역에선가 우연히 마주치면 ‘아, 배고플 때 델리만주 가게랑 닭갈비 가게 앞은 지나가면 안 돼.’하고 생각했을 뿐.


사실 델리만주라는 걸 사 먹어 본 것도 처음이다. 워낙 익숙해서 몇 번 먹어본 줄 알았다. 옥수수모양 빵 속에 뜨끈한 슈크림이 들어있는 붕어빵 사촌 격인 풀빵이었다. 처음 먹어봐서 다른 델리만주랑 어떻게 다른지 비교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급을 접했으니, 앞으로 다른 곳의 델리만주에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델리만주 봉투를 들고 다시 땅 위로 올라갔다. 명동교자도 오랜만에 다시 먹어보고 싶어서 목록에 적어두었다. 사람이 많았고, 시키자마자 계산부터 하는 시스템이 특이했다. 면 리필이 되는 것 같은데 잘 몰라서 못 먹은 게 아쉬웠다. 다 먹고 곧 새로 연다는 신관도 구경했다. 칼국수 몇 그릇을 팔아야 명동역 앞에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걸까?

명동에 간 김에 명동성당 앞에 있는 ‘우리농’에 갔다. 성당에서 하는 유기농매장이다. 그즈음 유기농 매장에서 현미유 대란이 일어났는데, 양이 부족해서 매장에 1~2개 입고되는 걸 사려고 손님들이 오픈런을 하기도 했다. (25년 여름, 현재는 입고 자체가 안되고 있음) 반가운 현미유가 있어서 하나 구입했다.(현미유는 식용유 대용으로 사용한다. 포장 겉면에는 샐러드유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적혀있다. 걸쭉한 질감의 기름)


엄마가 새로운 물건을 탐색하는 동안, 나는 배낭을 앞으로 끌어안고 쌓여있는 유기농 물건들을 가방으로 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구경했다. 성당 바로 앞이기도 하고, 생산되는 물건들도 전국의 성당 관련 업체에서 만든 것들이다. 홀로 와서 제각기 물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손님들도 어쩐지 성당에 온 김에 들른 느낌을 풍긴다.


명동에서 볼 일을 마치고 슬슬 걸어 안국역으로 갔다. 북촌에 있다는 멋진 마카롱을 사러.

미완성 식탁

‘미완성 식탁’이라는 시적인 가게 이름에 호기심이 생겨서, 서울 갈 일이 있을 때 가보려고 생각해 두었다.


외국인 여행객이 줄을 길게 서있는 예쁜 카페를 지나(나중에 찾아보니 런던베이글과 같은 회사에서 하는 곳이었음), 평범한 가게 앞을 지나다 보면 동네 골목길이 보인다. 여기가 맞나? 생각하며 골목을 빙글 돌았더니, 의외의 장소에 마카롱 가게가 있었다. 염두에 두고 있던 특별한 디저트는 다 팔리고 없어서, 마카롱 2개만 사서 나왔다. 한창 유행했던 뚱카롱이 아닌 작은 크기였다.


오후 2시 반. 다시 안국역이다. 4호선을 타고 한 번에 동대입구역으로 갈 거다. 한 번 쉬어갈 타이밍이 됐다.


역시 인사동, 북촌이라 그런지 외국사람이 많이 보였다. 세계 배낭여행 중인지 자기 몸의 반만 한 배낭을 멘 외국인들이 지나갔다. 배낭에 매달린 슬리퍼가 달랑거렸다. 사람들로 가득한 4호선을 잠시 타고 내렸다.


목적지는 역 앞의 명물 ‘태극당’

이 아니라 ‘커피빈 동대입구점’이다.(이제는 구. 커피빈 동대입구점이 되었다.)


반려동물 목줄을 걸 수 있는 고리


커피빈 동대입구점은 반려동물 친화 매장이다. 동네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지, 입구에 사료그릇이 놓여있었다.

바깥에서 보면 평범한 상가건물 같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별개의 주택 2채로 연결된다. 한옥 느낌의 인테리어라서 편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고,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페 바로 앞이 동국대인데, 거기 근무하는 분들도 담소 나누러 많이 오실 듯했다. 확실히 상권 주변에 규모 있는 회사가 있으면, 손님은 확보가 된다.

눈치싸움 끝에 어렵게 한 자리 잡았다. 안국역에서부터 깨질까 조심해서 들고 온 마카롱을 맛봤다.

컬리 멤버십으로 받은 아메리카노 1+1 쿠폰을 썼다. 마카롱은 기본에 충실한 맛있는 맛이었다.


한동안 쉬었다. 그리고 숙소 체크인을 위해 길을 나섰다.


이 동네 지하철역 이름이 동대입구역인 이유는, 역에서 나오면 바로 동국대가 있기 때문이다. 국립극장과 동국대는 남산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살짝 오르막을 올라야 갈 수 있다. 남산 전망대로 가는 전기버스도 수시로 오간다.


국립극장에서 길 건너 맞은편에 신라호텔과 장충 체육관이 있다. 아빠한테 들었던 수많은 옛날이야기 중에 장충 체육관에서 복싱선수를 꿈꾸며 운동하던 십 대 시절 이야기도 있다. 복싱선수로 성공해 돈 많이 벌어서 동생들 공부시키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그 꿈을 피워내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다시 장충 체육관에서 길을 건너면, 유명한 장충동 족발 골목이다. 십 년도 더 전에 족발을 먹으러 왔었는데, 크게 특색이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족발 골목 맞은편이 커피빈 동대입구점과 태극당 빵집이다. 이 장소들이 장충체육관 앞 사거리에 빙그르르 둘러 모여있다.

그런데 못 보던 사이에 장충동 족발골목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있었다. 뭐 하는 곳이지?

12월이라 건물 로비에 멋진 트리 장식이 있어서 들어가 구경했다. 1층에 카페가 하나 있긴 한데, 위층은 공개된 장소가 아닌듯해서 찾아보니, 신세계 그룹의 연수원 같은 곳이었다.


임직원을 위한 공연이 열리거나 대규모 회의를 하는 장소라고 한다. 신세계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길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린 오후.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커피빈 동대입구역>에 간 날이 되었다. 마음이 편해서 좋아하는 동네에, 종종 들르고 싶은 카페가 생겨서 더 좋았는데. 이제 그 카페 자리엔 다른 가게가 생겼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