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당>에서
25/8/16
때는 동대입구역에 내린,
지난여름의 일이다.
오래된 제과점인 만큼 <태극당>에 얽힌 추억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속초 사람인 나에게도 그런 추억이 하나 있다.
16년 전, 2010년의 나는 방황했다. 말 그대로 정처 없이 쏘다녔다.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으며 많은 고민 속에 헤엄을 쳤는데, 요즘 나온 책을 보니 걷기가 고민이 있을 때의 좋은 해결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걷는 일밖에 할 수 없어서 걸었는데, 그 덕에 지금은 좋아서 걷게 되었다.
당시엔 아이폰이 막 나와서, 친구가 그걸로 수강신청을 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때까지 LG에서 나온 터치폰을 쓰다가,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초기의 스마트폰 중 하나를 쓰게 되었는데, 밤에 누워서 웹툰을 보기에 좋았다. 즐겨보던 웹툰 중에 조경규 작가의 <오무라이스 잼잼>이 있었다.
한 회차를 다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화’ 버튼을 눌러 넘어가곤 했는데, <태극당>의 큼지막한 사라다빵에 대한 회차도 있었다. 루꼴라, 바질,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가 아니라, ‘사라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물이 빵빵하게 들어있어서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라다빵만큼 빵빵한 왕크림빵도,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는 모나카 아이스크림도 궁금해서 새해로 막 넘어간 겨울 아침에 <태극당>을 찾아갔다.
그맘때를 떠올리니 머릿속을 스쳐가는 단어들이 있다.
<오무라이스 잼잼>, <차이니즈 봉봉>은 조경규 작가의 만화
조경규 작가가 중국에 살 때, 마트에서 사다 구워 먹었다던 두툼한 중국 베이컨
<오무라이스 잼잼> 어느 회차에 나온 명동 ‘영양센타‘, 그곳 런치 세트
남산과 국립극장 동국대
명동의 게스트하우스와 자물쇠가 달린 개인 사물함.
밤 쇼핑을 마친 중국 여행객이 많았던 동대문의 찜질방
지금은 멀어진 단어들 속에 둘러싸여 걷고 또 걸었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16년 전의 내가 봐도 복고풍처럼 느껴지던 태극당 내부 인테리어.
그 후 2015년에 <응답하라 1988> 속 한 장면에 나오기도 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은 세대를 이어 이어지는 전통 있는 빵집이자, 현대에 만나볼 수 있는 레트로 콘셉트의 카페로 운영 중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입점해 있고,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본 사라다빵, 왕 크림빵을 하나씩 샀다. 그걸 들고 남산에 올라가 먹었다. 스치듯이 본 모나카 아이스크림이 궁금해서 나중에 한 번 더 갔다.
남산에 자물쇠를 거는 일이 한창 유행이었고, 잠실 롯데타워가 생기기도 전이었다.
다시 지난여름.
30대가 되어 오랜만에 찾은 태극당에서, 이제는 사라다빵이나 왕크림빵이 아니라 콘브레드, 오란다빵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가 국민학교 급식 때 먹었다는 옥수수빵 맛일까? 오란다빵은 속초에도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랑 비슷할까? 생각하면서.
사라다빵이다. 2010년에도 비싸다고 느껴졌는데(5천 원이었나?), 지금도 그렇다.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포장이 더 세련된 느낌으로 바뀌었다. 맛은 그대로다. 이제 투썸 플레이스에도 판다. 복고풍 버터크림 케이크도 투썸 플레이스와 협업해서 내놓았다.
줄 서서 계산했다. 직원 뒤에 보이는 소품들은 그 시절 그대로이지만, 계산 시스템은 여느 쇼핑몰과 다르지 않다.
영수증 필요하세요?
커피는 뒤쪽 카페에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모나카는 먹고 나머지는 집에 가져왔다.
그런데 태극당을 나서자마자 아쉬운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몇 개월 전에 처음 가보고 마음에 들었던, 나만의 장충동 오아시스 <커피빈 동대입구점>이 사라졌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굉장히 아쉽다. 서운하다.
하지만 바뀐 곳도 카페라고 하니 다음에 한 번 가보려고 한다.
겨울에 봤던 ‘신세계 남산’도 여전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고, 어쩐지 관심이 생겨 가봤던 ‘경동 교회‘도 보인다. 경동 교회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는데, 어째서 여기가 궁금해졌을까? 몇 년 지나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기도하는 사람의 손 모양이라고 한다. 겉에서 바라보니 정말 그렇다.
돌아가는 길 카톡 알람이 온 걸 확인했다. <태극당>은 확실히 미래에 도착했구나.
배가 고파져서, 동대문 apm 근처 ‘북촌 손만두’에 갔다. 흔한 체인점이지만 속초에는 없고, 여기도 마찬가지로 2010년 하면 떠오르는 곳이다.
공장제 면에 공장맛 육수, 특별할 것 없는 물냉면 한 그릇을 먹으며
언제 함흥냉면옥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