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일력 1/3

보일러 01 에러

by Julie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보름달의 정취에 빠졌던 전날과 달리, 3일은 혼란의 파도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갔다.


집에 왔는데 보일러 온도조절기에 반갑지 않은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름하여 ‘01 에러’. 숫자 01이 반복적으로 깜빡이는데, 지난 몇 해의 경험을 통해 이 숫자는 곧 ‘점화 불량’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점화불량’이란 무엇이냐? 보일러를 못쓴다는 말이다. 불꽃이 튀질 않는다는 말이다. 기름이 가득 있어도 쓰질 못한다는 그런 말이다. 3일은 토요일. 엊그제가 새해 첫날 빨간 날이었고, 오늘은 주말인데 서비스센터 하려나? 막막해지는 오후.


일단 유튜브에 검색을 해본다.


아 예 저는 시골 교회에서
목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이 방법으로 약 십여 회가량
보일러를 수리한 바 있습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시는 구세주의 음성을 따라, 광전판을 꺼내 그을음도 닦아보고, 전원도 껐다 켜보고, 콘센트도 뺐다 끼워본다. 웅- 돌아가는 듯싶다가 곧 멈춰서 다시 깜빡이는 숫자 01. 울고 싶다.

한 시간가량 혼자 씨름하다가, 집주인분께 연락. 바로 해결을 해주시기로 했지만, 다음날 아침은 되어야 수리기사님이 오실 수 있다. 밤새 식어가는 방 안에서 전기장판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냈다.


다행인 건,

아침엔 영하권이었던 기온이 영상권으로 훅 올라온 데다, 며칠 동안 따듯한 날씨가 이어질 예정이었다는 것.


보일러가 고쳐졌다는 연락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훈훈한 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궁해봐야 귀한 줄 안다고 했다. 당연함으로 치부하고 난방비 걱정만 했던 지난날에 반성하며, 보일러가 있는 삶에 무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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