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에게 배우다
혈기가 있는 존재라면
사람부터 소, 말, 돼지, 양, 곤충,
개미에 이르기까지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다 같습니다.
어찌 큰 것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것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규보 [이와 개의 목숨은 같다] 중에서
이규보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한자로 ‘이 슬’, ‘개 견’, ‘말씀 설’을 쓰는 <슬견설>에 오늘의 문장이 나와있다.
이야기는 손님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일종의 우화 성격을 지닌다. 손님이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누군가 개를 때려죽이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이야기를 전하며, 마음이 아파 앞으로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자 나는 자기가 목격한 다른 사례를 빗대어 이야기한다. 누군가 이(벌레)를 화롯불에 태워 죽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파, 앞으로는 이를 잡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손님은 자신을 놀리느냐며 화를 냈다.
그에 대한 대답이 위 문장이다. 작든 크든, 인간에게 쓸모가 있든 없든 생명이라면 모두가 똑같이 귀하다는 것이다. 일력에 다 실리지 않은 뒷부분에 중요한 부분이 나온다.
당신은 물러가서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라.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봉황처럼 큰 상상 속의 새)과 같이 보라.
그런 후에야 나는 비로소
당신과 함께 도를 말하겠다.
판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갖추라는 말 같다.
집 앞 전봇대에 며칠 전부터 까치가 집을 짓고있다. 어쩐지 마당 여기저기에 나뭇가지가 늘어나더라니, 까치가 부리로 물고 가다가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오늘은 창문 너머로 집 짓는 모습을 지켜봤다.
까치 부부 중에 한 마리가 유독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이쪽이 남편 같다. 어디론가 날아가서 부리에 나뭇가지를 하나씩 물고 돌아와서는, 전봇대에 지지대 역할을 할만한 곳을 찾아 하나씩 쌓는 중이다. 그러다 나뭇가지를 떨어트리면, 갸웃? 하며 내다보는 엄마 까치와 아빠 까치의 머리 둘.
바로 아래 떨어진 건 수직으로 날아오르기 힘드니까 줍지 못할 줄 알았는데, 똑똑하게 해결했다. 우선 수직하강해서 나뭇가지를 물었다. 바닥에서 도약해 우리 집 지붕 난간에서 도움닫기를 했다.
그렇게 무사히 둥지로 돌아왔다. 계속 지켜보니 바닥에서 수직 상승도 할 수 있었다.
둥지에 쓰인 나뭇가지만큼 아래에도 나뭇가지 수북하게 쌓여간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찡했다. 오늘 까치에게 킵고잉 정신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