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중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의 새끼가 털이 붉고 뿔이 반듯하다면,
비록 제사의 희생으로 쓰지 않으려 하더라도,
산천의 신이 어찌 그를 버리겠는가?”
<논어>
오늘의 문장은 한번 스윽 읽어보니, 좋은 의미 같다. 선생님이 중궁이라는 사람에 대해 내리는 평가로, 그를 얼룩소의 새끼에 비유해 칭찬한다. 얼룩소라서 제사에 제물로 올리지는 않겠지만, 뛰어난 점이 있다면(털이 붉고 뿔이 반듯함) 언젠가 빛을 보게 될 거라는 말일까.
그렇다면 얼룩소는 제사에 왜 안 쓰는 것이며, 제사에 희생되지 않는 것이 소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얼룩소’로 시작되는 문장을 검색했더니, 아래 홈페이지가 나왔다.
여기 나온 내용을 보니, 얼룩소는 제사에 올리기에 귀하지 않다고 여겼다. 털이 붉고 뿔이 반듯한 소를 더 귀하게 여겨서, 제사 때 제물로 올렸던 거다. 글 아래 역주를 보니, 중궁이라는 사람의 아버지가 신분이 미천하고 별 볼 일 없는 자이지만, 그에게서 태어난 중궁은 훌륭한 성품을 가졌기에 후에라도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해석이 된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모은 책이다. 위 문장에서 선생님이란 공자를 의미한다.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중궁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오늘의 좋은 일) 파스쿠찌에서 스탬프를 모아 무료 커피 한잔을 받았다. 아낀 돈으로 며칠 전에 맛있게 먹었던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티라미수를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