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일력 3/4

설악산에 눈

by Julie
가난한 집에서 정갈하게 마당을 쓸고,
가난한 여자가 예쁘게 머리를 빗네.
못난 선비가 늘그막에 도를 들었으니,
그저 졸렬함으로 자신을 닦고자 하네.

소식
<가난한 집에서 정갈하게 마당을 쓸고>


처음엔 이게 뭔 소린가 했다. ‘소식’이라고 검색하니 소식좌 같은 연관 검색어가 뜬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이 사람!

잘 알지는 못해도 많이 들어본 ‘소동파’의 본명이 ‘소식’이라고 한다. 감 잡았어. 중국 고전 문학에서 따온 것이로구나. 구글과 바이두(중국 네이버)에도 쳐보기로 한다.


구글은 전 세계에서 쓰는 사이트라, 한국어로 검색하면 한국어로 만들어진 콘텐츠만 나온다. 영어나 중국어(한자)로 바꿔 검색해야 그 나라에서 만들어진 글이 검색된다. 어찌어찌 찾다 보니 이 책이 나오네?

마침 민음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1~2년 사이 유행했던 ‘오십에 읽는 논어’ 시리즈에서 본 듯 익숙한 표지. 확실한 건 책을 찾아봐야 알겠지만, 검색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봤다.


貧家淨掃地(빈가정소지),
가난한 집이 깨끗이 쓴다 땅을

貧女淨梳頭(빈녀정소두).
가난한 여자가 깨끗이 빗질한다 머리를

下士晩聞道(하사만문도),
못난 선비가 늦게 깨우쳤다 도를

聊以拙自修(요이졸자수).
옹졸한 자신에게 의지해 익히다


어릴 때 한자 공부하듯이 직독직해 해봤다. 下(아래 하) 자를 써서 下士(아래 하, 선비 사)라고 표현한 것은 글쓴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 못난 나 같은 놈’ 같은 소리다.


채근담은 한자로 쓰인 문장을 해석한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위 문장의 뜻을 대략 살펴본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쓸고 닦고, 아무리 가난한 여자라도 단정히 빗질하면 화려하진 않더라도 기품이 배어 나온다(이 부분이 생략됐음). 이 못난 선비가 늦게라도 그 부분을 깨우쳤으니, 옹졸한 스스로에게라도 의지해 익혀나가야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위축되어 살다가 작은 것부터라도 해보자고 결심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추가 1)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동양고전 슬기바다 총서> 시리즈 특별 보급판 6권 ‘채근담’

도서관에서 ‘채근담’이 있나 찾아보는데, 민음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있었다. 2015년에 출간된 책인데 값이 4천 원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책이 이보다는 비쌌던 것 같은데. 고전이라 저작권이 소멸됐고, 10권 세트로 판매하고, 무엇보다 출간 20주년 특별 보급판이라서 이래저래 값이 저렴하게 책정된 것 같다.


오늘의 문장을 찾아보려고 슬렁슬렁 넘겨보는데, 앞부분엔 ‘전집 채근담’이, 뒷부분엔 ‘후집 채근담‘이 수록되었고, 마지막에 한자로 된 원문이 실려있다. 숫자가 매겨진 짧은 글을 모은 책이라, 하루 하나씩 보면 좋을 것 같다. 책 표지 뒷면에 ‘서양의 탈무드와 쌍벽을 이루는 동양의 최고 지혜서’라고 홍보문구가 쓰여있는데, 딱 이 말대로다.


이 책 56쪽에 오늘의 문장이 적혀있다. ‘전집 채근담’의 84번 글이다.

가난한 집도 청소를 깔끔히 해놓고
가난한 여인도 머리를 깨끗이 빗으면,
비록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기품은 고상하고 우아하다.

그러하니 선비가 한때 곤궁과 실의에 빠진다 한들
어찌 자포자기하겠는가?

220쪽엔 원문이 한자로 실려있고, 아랫부분에 간단한 한자어 풀이도 되어있다. 민음사 일력에 실린 구절과는 약간 다르다.




+추가 2)


한자로 된 원문 마지막 두 구절에서 ‘만문’, ‘졸수’를 따와 ‘만문졸수’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조술도라는 사람이 ‘만물졸수’의 의미를 담아 ‘만곡’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리고 1790년에 경북 영양군에 정사(학문을 가르치는 집)를 지으면서 <만곡정사>라고 적힌 현판을 달았다. 요즘으로 치면 <만곡쌤 논술학원> 같은 게 아닐까?


이름의 호로 쓸 만큼 위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채근담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시대를 관통해서 배울 점이 있는 책인가 보다. 그게 바로 ‘고전’의 의미라고 한다.





정월대보름이자 새 학기, 3월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어제는 흐리고 비가 살짝 내렸다. 밤 사이 그 비가 눈이 되어 설악산을 살포시 덮었다.

마침 하늘도 선명해서 하얀 산능선과 대비가 되는 멋짐 아침! 미세먼지는 당연히 ‘좋음’이다.

델피노 <더 엠브로시아> 카페에서 보면 멋지겠다.

맑아도 하늘은 매일 다른 모습이다. 맑고 쨍한 가장 좋아하는 (막바지) 겨울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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