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오름>에서 순간이 쌓여야 미래가 되는 원리를 배우다
2026년 첫날, 뜨는 해는 보지 못하고 떠 있는 해를 보려 집을 나섰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저지오름>에 가기 위해 평화로를 달렸다.
한창 달리다 머리가 번뜩여 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상등의 규칙적 깜빡거림에 맞춰 심장이 요동친다.
큰일 난 것 같지만 소소한 의문이다. “집에 불을 끄고 나왔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은 탓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을 잊는 일이 반복된다.
‘건망증’으로 치부해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위중한 계기다.
한 시간 전 나는 분명 가방 메고 집을 나왔다.
머리는 일주일 뒤 어느 먼 곳에서 열릴 세미나 장소를 떠올리고 있다.
세미나 장소 불은 분명히 켰으나 지금, 이 순간 내 방의 불을 껐는지 모르고 있다.
평화로 위를 달리고 있다.
운전대 잡은 왼손과 기어를 잡은 오른손, 앞을 향한 내 눈은 평화로에 없다.
시공간을 마구 건너뛴다.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세미나 장소에서 심한 비난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몇 년 후 내가 무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지, 그때는 고급차를 타고 있을지,
그때도 타인에게 욕먹고 있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시야에 평화로가 사라진 순간, 날카로운 트럭의 경적 소리가 시야의 적막을 찌른다.
깜빡이 없이 옆 차로에 끼어들었다.
시야에 평화로가 들어온다. 지금 이 순간으로 핸들을 다시 돌렸다.
‘미래’라는 이름의 욕망을 부풀린다.
몇 년 후, 더 큰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고 싶다.
더 큰 지면과 화면에서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찬사를 받고 싶다.
몇 년 후, 내 이름의 책을 몇 권 더 출간하고 싶다.
몇 년 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싶다.
욕망을 이루려면 ‘지금 이 순간’의 성취를 한 장씩 쌓아야 한다.
내일 예정된 라디오 방송을 무사히 끝내야 한다.
며칠 후 열리는 어느 강연을 무사히 끝내야 한다.
몇 주 후 마감하는 논문이 무사히 저널에 게재돼야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지금 ‘말’ 해야 한다. 지금 ‘글’을 써야 한다.
지금 ‘만나’야 한다. 지금 ‘사랑’을 나눠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도 외면한 채 오지 않은 미래를 맘대로 상상하며 걱정한다.
미리 우울해하고 미리 상처받고 미리 그만두려 한다.
지금 이 순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과감히 뛰어넘는 모험을 감행하며 스스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자기 파괴적인 역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하고 있다.
2026년 다짐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
지금 이 순간, <저지오름>에서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불어오는 바람, 감싸는 햇살을 온전히 즐기자.
미래는 없다. 지금 이 순간만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쌓일 때 거대한 세월의 서적이 편찬된다.
일 년 후 지금 이 순간에 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