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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소방관 Feb 17. 2023

엄마를 위해, 아기를 위해

그림 이야기로 서로의 마음 치유하기

육아는 사랑이에요.

하지만 육아가 힘든건 부정할 수 없어요.

정말 힘들 땐 열불도 나고 눈물도 나요.

감정적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그 순간을 위로하고 마음을 다독여주면 엄마도 아기도 웃을 수 있어요.




오늘은 첫째와 낮잠 문제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동안은 별일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오늘 둘째랑 낮잠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몸이 하나인 엄마는 첫째 재우다가 둘째 재우고 바빴어요. 방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첫째의 낮잠 분위기 마저 깨졌네요. 낮잠을 안 자면 분명 저녁 시간을 힘들어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칭얼거릴 거라 낮잠은 짧게라도 꼭 재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화내면서 말하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도 안 통했어요. 세시부터 시작한 전쟁이 네시가 지나도록 안 끝났죠. 마지막엔 울며불며 잠자겠다고 하는 첫째를 엎어서 재우는데 둘째가 보행기를 잘 타다가 갑자기 안아달라고 울었어요. 결국 다 포기.


"아가들아. 엄마 지금 너무 힘들어. 너희들이랑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잘 놀아"라고 말하곤 조금이라도 기분전환되게 샤워하고 환복 했어요. 하지만 화산 폭발 일보직전인 저의 감정은 그리 쉽게 식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마음 다스리는 게 머리로는 되는데 감정이 안 따라주네요"라고 위로받고자 문자를 보냈어요. 답은 왔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못했어요. 왜냐하면 이건 제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될 감정 문제이니까요. 오! 그런데 이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마음 다스리기'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졸려하는 둘째를 재운 후 첫째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어요. 그리고 저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엄마] 이주나, 시계가 3시가 되면 우리 책 두권 읽고 자는 거라고 약속했잖아(그림참고). 이주니 책 재미있게 읽으라고 토끼펜도 줬잖아. 그리고 이주니 누웠을 때 엄마가 앞에 있어줬고 나중에는 어부바도 해줬어. 그런데 이주니가 엄마 약속 안 지켜주고 계속 힘들게 해서 엄마가 이렇게 눈물이 났어 (이때부터 이주니가 흐느껴 울기 시작해요).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이만큼 넘쳤고 엄마 마음은 깜깜해졌어. 너무 깜깜해서 하난도 안보였어. 눈물이 계속 나고 힘들어서 이주니랑 이서가 집에 있는데도 엄마는 자동차를 타고 아주 멀리멀리멀리 있는 산으로 가고 싶어. 이 산은 아주 깜깜하고 달도 떴어. 그리고 엄마랑 이주니랑 이렇게 웃으면서 노래로 부르고 책도 읽었는데 이제는 싫어. 너무 힘들어서 안 하고 싶어.

[첫째] (눈물 뚝뚝 흘리면서) 그럼 아빠가 있어야 돼요

[엄마] 그럼 아빠랑 이서랑 지내도 돼? 엄마는 없어도 돼?

[첫째] (눈물 콧물 계속 흘리면서) 한 번만 자고 와요

[엄마] 이 깜깜한 산에 가면 집에 안 올 거야. 오래오래 안 올 거야.

[첫째] (더 크게 울면서) 안 그럴게요.. 엄마.. 잘 들을게요..

[엄마] 정말 엄마 약속 지켜줄 거야?

[첫째] (울음이랑 섞인 목소리로) 네..

[엄마] (이주니 안아주면서) 알겠어. 고마워 이주나. 엄마가 이주니 많이 사랑해. 그럼 우리 엄마(그림) 더 울지 말라고 반짝반짝 색으로 색칠해 줄까?

[첫째] (편안해진 표정으로 빨간색 색연필을 집으며) 이걸로 할래요

[엄마] 그래. 엄마 더 울지 않게 얼굴도 색칠하고 까만 마음도 반짝반짝 색칠하고. 엄마 멀리 가지 않게 뿌붕이도 색칠하고 산도 색칠해 주자. 다른 색 또 골라도 돼

[첫째] (검은색을 고르며) 이걸로 할래요

[엄마] 그러자. 이서랑 이주니 집도 색칠해 주자. 엄마는 반짝반짝 노란색을 고를게

[첫째] (노란색 색연필을 집으며) 제가 할게요

[엄마] 이제 엄마 눈물 안나 이주나. 엄마 마음도 안 깜깜해 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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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림 이야기가 끝났어요. 제 마음은 봄이 온 것 같았어요.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고 향기가 나는 꽃들이 피었어요. 언성 높여서 화냈던 몇 분 전 상황과 비교하니 불과 물 같았네요. 3살 아들에게 화내고 타일러봤자 알아들을 나이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들의 마음을 열어볼 순 없지만 아기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아가들과 대화하고 싶을 땐 이 방법이 좋겠어요~


혹시 저와 같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육아맘이 계시다면 이 방법 한번 시도해 보세요! 엄마의 마음 가짐도, 육아 방식도 달리질 수 있어요


미국 유학 4년 반

눈물 콧물 흘리며

영광스럽게 받은 Art Therapy 졸업장이

드디어 이렇게 빛을 바라네요

이 순간을 위해!

제가 그 고생을 하며 다녀왔나 봅니다

 

고맙다, 20대의 나에게

고마워, 내 아들

 

그리고 남편은..

퇴근 후에 오늘 있었던 이 일을 얘기해 주니 눈물 또르륵 했어요.. 왜 우냐고 웃으며 넘겼지만 그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고마워요, 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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