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말쯤이었나 보다. 하루는 엄마가 내가 만든 가지 볶음을 맛나게 드셨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채 썬 가지와 다진 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물을 조금 붓고 더 끓인다. 가지가 흐물흐물할 정도로 물렀을 때, 굴소스로 간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날 엄마는 평소 좋아하는 병어조림을 제쳐두고 “이게 더 맛있다!”며 서툰 젓가락질을 했다. 흔히 아이 입에 밥 들어가면 내 배는 저절로 부르다고들 하는데, 꼭 내가 그랬다. 엄마가 잘 드시니 마음까지 흐뭇했다.
며칠 후, 언니가 “내일 엄마한테 갈 건데, 엄마 뭘 잘 드시는지 아이디어 있으면 좀 말해봐 “하고 대화방에 올렸길래, ”내가 우리 엄마 입맛은 잘 알지. MSG를 좋아해 “라고 대답했다. 걱정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웃고 지나가자고 한 소리만은 아니었다. 무슨 수를 쓰던 엄마의 식욕을 돋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엄마가 식사 진짜 안 하시네. 눈도 안 떠. 상태 안 좋아. 맥이 아주 불규칙하고 숨이 많이 차네.”
“손자가 매년 세배 왔었다고 세뱃돈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다고 하네.”
“일주일이 다르게 엄마 상태는 안 좋아지고 있음.”
“식사하시는 걸 가족이 좀 봐야 해.”
“주무르고 손톱 자르고. 침대 청소함. 누구든 오면 무조건 주물러야 할 듯. 약하게 “
“엄마 모습 보니 마음이 아프네.”
“체온이 낮고 맥박은 80회 내외. 밥 한 댓 수저 드셨어요.”
“ㅇㅇ아 효도했다. 너 와서 할머니가 얘기도 많이 하셨어.”
“엄마가 잠시 눈 떴음.”
“밤낮이 바뀌고, 씹는 걸 잊어버렸어. “
“오늘 새로운 요양사님 오는 날인데, 몸살 나서 못 간다니 누가 좀 들러봤으면 좋겠다. “
“엄마 상태는 양호한 편. 묻는 말 다 대답하고.”
대화방에서는 요즈음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엄마의 상태와 사진을 공유하고, 중요한 결정 대부분을 이 방에서 하고 있으니, 굳이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엄마 돌봄 형제자매 협의체‘ 정도가 되겠다.
순수하게 우리 동기간들끼리 감당을 하자는 뜻에서 배우자들은 포함하지 않고 네 명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작은오빠가 형부를 초대했고, 형부는 이 방의 유일한 ‘배우자’이며, 다섯 번째 성원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형부는 특별한 분이다. 한 마디 과장 없이, 맏사위가 된 그날 이후로 처가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섰고, 집안 대소사는 빼놓지 않고 챙기려고 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반백년이 되어가니 그간 쌓인 정으로 보면 친 형제와 다를 바 없다. 이 방에서 형부는 별로 말이 없다. 정 필요하다 싶을 때만 한 마디씩 한다.
이 침묵을 ‘모든 결정은 자식인 자네들의 권한이며, 나는 최선을 다해 돕겠다 ‘는 의미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당연히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형부는 수시로 “잘해드려.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떠나시고 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어. 이상하게 해가 갈수록 더 그리워. 좀 더 잘해 드릴 걸. 많이 아쉽지”라고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 병시중을 혼자 다 들었으면서도 자책하고 후회한다. 형부는 우리의 귀감이다.
나의 지인네도 사 남매였다. 막냇동생이 출퇴근을 하면서 부모님을 돌봤다고 한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자 형제자매 간에 쌓였던 감정에 재산 상속문제가 맞물리면서 분쟁이 생겼고, 편이 갈라지면서 대립했다. 크게 한 번 다툰 후 막냇동생은 연락을 아예 끊었다고 한다. 그때 지인은 많이 괴로워했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지만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이 특별히 탐을 낼 유산이라고는 만들지 않았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익 앞에서 속절없이 우애가 무너지는 것도, 물불 가리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흉폭해지기까지 하는 것이 요즘 세태라고는 하지만, 막상 내 가족, 형제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두렵고 슬픈 일이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젠가 부모님은 떠나고, 형제자매는 남는다. 끈끈한 우애까지는 아니어도, 부모님이 그리울 때 추억하는 일마저 같이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서로 등 돌리고 남이 된다면, 아니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면 그것은 각자의 상처이자, 또 다른 상실이다. 부모님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형제자매와도 잘 지내기. 무엇이든 균형을 잡으며 사는 일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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