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십팔 세 <13. 따스한 손>

by 지우



나는 눈은 생명의 단추다라고, 나직이 중얼거려 보았다. 나를 평생 담고 다녔을 어머니 눈동자 단추,
나를 닫고 세상을 닫을 단추, 그렇지만 내 눈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저 작은 단추.

-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저 - 중에서



우리끼리만 따로 만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언제 밥이나 같이 먹자는 언니의 발의가 한참 전에 있었고, 뒤늦게야 실행에 옮긴 사람은 나였다.

이월 초, 일요일 점심으로 날짜와 시간을 맞추었고, 장소는 부모님 집 부근 한 식당으로 정하고, 예약을 해뒀다. 모임 끝나고 엄마를 보러 가기 편리해서였다. 아버지도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으나, 그냥 집에서 드신다고 하길래 나중에 포장을 해서 가져가기로 했다.


식당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도 나였다.

큰오빠는 매주 일요일 점심에 엄마한테 다니러 오는데, 이날엔 오전에 미리 들렀다 오겠다고 했고, 그러느라 식당 예약시간에는 늦었다. 언니랑 형부는 집이 멀어서 그렇고, 작은오빠도, 아무튼 다들 늦었다.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뜨끈한 국물요리를 먹으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팔십을 바라보는 형부, 칠십 중반으로 가고 있는 언니, 칠십을 바라보는 큰오빠. 여기서는 그래도 작은오빠와 내가 젊은 축이다. 옛날엔 명절에 다 같이 만나면 아이들 자라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눈길이 가고, 한참 하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들에게 용돈 조금씩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 나니 이런 낙이 없다. 대신 우리 서로의 여위고 굽은 어깨, 늘어가는 흰머리, 주름살만 눈에 들어온다.


식사 후에는 한적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따뜻한 라테와 아메리카노를 달달한 초콜릿 쿠키에 곁들여 마셨다. 엄마 상태와 아버지, 그리고 주간 요양사분 이야기 등을 하다가 언니와 큰오빠가 본론을 꺼냈다. 모두 알다시피,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으며,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엄마를 병원에 모셔야 하니, 그럴 때는 어느 병원이 좋겠느냐는 것. 고령의 환자를 선뜻 받아줄 병원은 많지 않을 거였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고 싶지 않고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분명 닥칠 일이고, 그렇다면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경험자인 형부 말로는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했어도, 막상 큰 일을 당하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닥쳐서 허둥지둥하게 된다고 했다.

집에서 편안하게 끝까지 모시고 싶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럴 경우에는 절차가 매우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범죄 가능성 때문에 경찰의 조사가 끝난 후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조사라는 것이 유가족이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인격적이라는데 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는 유족들이 원한다고 해서 집에서 돌아가시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 지인의 경우에도 아버지가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시는 바람에 119를 불렀고, 그 과정에서 호된 곤욕을 치렀었다.


모두 담담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았다. 다소의 이견이 있기는 했다. 모두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다 나처럼 착잡했음을 안다. 이것은 우리가 치러내야 할 의무이다. 그것도 잘 치러야 한다. 팽팽히 당겨 겨우 평면을 유지하고 있는 이 의식의 장막은, 귀퉁이 끈 하나가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가기라도 하면, 평평한 면은 구겨지고 결국 후다닥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게 된다. 장막 뒤에 숨죽이고 있던 감정들이 지탱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적어도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온 힘을 다해 이 끈들을 부여잡고 있다. 장막이 사라지고 난 후 우리의 모습이 지금 앉아있는 얼굴과 겹치지 않게 자꾸 생각을 털어냈다.


“엄마!”

엄마는 나를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쇠약해진 엄마의 눈은, 작아질 대로 작아진 눈은, 머리카락 성성하고 주름진 얼굴의 막내딸을 단박에 구분한다.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면 응답하는 저 눈빛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절박한 행복인가.

이불속을 더듬어 손을 잡는다. 내내 속에 있던 엄마의 손은 내 손보다 훨씬 따뜻하다.

밖은 영하 십이 도. 추운 날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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