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십팔 세 <14. 그 옛날 엄마와 나는>

by 지우




한참만에 갔는데도, 엄마는 왜 그동안 그렇게 안 왔냐고 하지 않고 오히려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경우에 빠지는 법 없는 엄마의 인사치레이다.

우리 다섯 명 점심 회동 후에 큰오빠는 일이 있다며 먼저 가고 우리는 같이 엄마한테 갔다. 네 명이 가니 집이 갑자기 활기를 띤다.

엄마 식사 준비를 참견하고, 남아있는 약 종류와 수량을 세어보고, 아버지가 부르는 바람에 거실로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하니 방문이 수시로 열렸다 닫혔다 한다.

식사는 병원밥처럼 된 지 오래이다. 죽을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질게 한 밥에, 달걀부침을 잘게 다져서 얹고 세 가지 반찬은 곱게 갈았다. 가끔은 엄마가 좋아하는 짭짤한 어리굴젓을 다져 넣어 밥을 비비기도 한다.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잘 안 되는 엄마를 위해서 국물류는 필수다. 소고기 뭇국, 미역국, 시금치 된장국 등 여러 종류의 국을 거쳐 요즈음엔 제철 재료인 매생이와 굴을 넣어 끓인 국을 잘 드신다. 식사 후에는 소화제를 꼭 챙긴다.

식사가 끝나면 잠시 침대를 세운채로 엄마를 앉혀두고, 뜨거운 물에 적신 거즈 손수건을 가져다가 엄마 입부근을 닦아준다. 일부러 힘을 주어 싹싹 문지르면, 내가 장난치는 것을 알고 엄마가 웃는다.


작은오빠가 사 온 드라이 샴푸로 덥수룩한 엄마 머리를 감기고 나서 빗질을 해주다가, 엄마 머리를 잘라주자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착수! 옷장을 뒤져 보자기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엄마 등 쪽으로 가게, 다른 한 장은 앞자락으로 오게 교차해서 묶었다. 제일 잘 드는 가위를 찾아와서 내가 자르기 시작했다. 수십 년 남이 내 머리를 만져주기만 했지, 내가 남의 머리를 어떻게 해 본 적은 딱히 없다. 미용실 가는 것을 성가스러워하는 남편을 위해 이발기로 뒷목께 머리를 짧게 밀어본 적이 있기는 했다. 그나마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런 내가 망설임 없이 서걱서걱 자르기 시작했다. 가위가 잘 들어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가늘어져서인지 잘 잘렸다. 몸에 더 붙어있어 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가려움증으로 엄마를 괴롭히던 머리카락을 무찌르듯 잘라냈다. 미용실 드나들면서 본 것은 있어서, 먼저 자른 머리카락 일부를 잘라야 할 머리카락과 함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듯이 잡은 후, 그중 짧은 머리카락 길이에 맞춰 잘랐다. 이런 식으로 자르다 보니 얼추 태가 나는 것도 같다. 나는 자르고 언니는 미진한 부분을 알려 주었고, 뒷목께 머리는 가위를 바짝 대고 자를 수 있는 대로 짧게 잘랐다. 시원하고 깔끔한 상고컷 흉내를 내고 싶은 예술혼이 내 안에서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했다. 작은오빠는 진공청소기를 들고 와서 잘라져 나간 머리카락을 수시로 빨아들였다.

엄마는 평생 파마를 해 본 적이 없다. 말을 잘 듣는 곱슬머리인 데다 어느 미용실을 간대도 만들어내지 못할 굵고 자연스러운 컬을 타고나서, 잘 자르기만 해도 사람들이 머리 어디서 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 머릿결을 나는 왜 안 닮고, 조금만 자라도 뻗치는 직모인 것인지. 파마하는 것이 영 귀찮은 요즈음엔 엄마의 곱슬머리가 부럽다. 올백으로 넘겨 빗어준 머리를 보더니 언니가 한 마디 한다. “엄마 그렇게 하는 거 싫어해, 남자 같다고. 머리카락 앞으로 좀 드리워야지. “ 우리 엄마는 천생여자다.


방 문 앞에 못 보던 액자가 하나 있다.

누렇게 뜨고, 바래서 회갈색쯤인, 흑백사진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몇십 년 전 사진 네 장이 들어있다.

그중 왼편 위쪽에 있는 사진은 아마도 누군가의… 맞다, 할아버지의 환갑잔치 때인가 보다. 조부모님, 우리 부모님, 둘째 작은 아버지 내외와 두 아이, 아직 미혼이어서 혼자 서 있는 셋째 작은 아버지, 결혼했을 때인지 아닌지 모를 두 고모. 작은 집 할머니.

중앙에 상이 놓여있고, 상 왼쪽에 할아버지 오른편에 할머니, 왼편 뒤쪽에 서있는 키 큰 남자는… 아버지이고, 그 옆에 한복 차림의 키가 아담한 아낙은 우리 엄마다! 엄마 옆으로 국민학교 학생이었을 언니와 큰오빠가 앞뒤로 서 있고, 엄마 치마폭 앞쪽으로 아직 어린 작은오빠를 세웠다. 털모자를 씌워 양옆 끈을 턱에서 솜씨 껏 묶고, 유난히 두툼한 옷을 입힌 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카메라 쪽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그 아기는 나다. 사진사가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큰소리를 내거나 했을 터이니 어린 나는 그게 신기해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 할아버지와 내가 띠가 같고, 육갑조차 같으니 사진 찍을 때 나는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였다. 어린 나를, 엄마 품에 안겨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사진 속 할아버지 나이대가 되었고, 엄마는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계신다. 엄마, 나는 이때 안 울었어, 내가 입은 옷은 누가 사줬어, 왜 나한테만 예쁜 털모자를 씌웠어, … 엄마한테 꼬치꼬치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알고 싶은데. 엄마는 말을 못 한다. 더 많이 물어볼걸, 알아둘걸, 기억해 둘걸.


사진을 찍어서 우리 가족방에 전송했다.

“엄마 어디 있게? “

바로 답글을 달아준 사람은 역시 남편이다.

“**이는 아기 때 제일 예뻤구나! “

“그렇지? 내가 봐도 너무 귀엽고 예쁜데?”

잠시 후 딸이 등장한다.

“엄마, 근데 웰시코기 같아. “

“웰시코기? 왜, 그렇게 귀여워? “

한껏 기대하면서 딸의 답을 기다린다.

“팔다리가 짧아 “

딸의 장난에 또 당했다.

“떼끼! 아기들은 원래 그래. 너도 그랬어.”


딸한테 웰시코기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실실 웃음이 난다.

사진 속 엄마가 너무 젊고 고와서, 그런 엄마가 나를 꼭 안고 있어서.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