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나 총각무김치가 너무 시어서 찌개를 끓여도, 볶아도 맛이 없을 정도가 되면 엄마는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갔다. 신맛은 양념에서 나왔던 것이니, 양념이 씻어내고 물에 우려서 신맛이 없어진 배추와 총각무는 짠맛이나, 감칠맛도 같이 사라졌다.
우린 김치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멸치를 냄비 밑에 깔고 썬 김치를 얹은 후에 자작하게 물을 붓는다. 그 위에 들기름을 적당히 두른 후 약불에서 가열하면서 물이 부족하면 더 붓고, 싱거우면 액젓이나 소금을 더하면 그만인 조리법.
이렇게 끓인 김치에는 멸치와 들기름의 맛이 배었고, 적당히 물러 있었다.
어릴 때는 이맘때 상에 오르던 이 반찬이 맛있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은 시어버린 김치만 보면 생각난다. 김치 본연의 맛과 영양가는 다 빠지고, 섬유질만 남았을 이 음식은 내 몸에 별다른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맛이 그리워서 이맘때쯤이면 만들어서 먹는다.
대보름 전날, 엄마는 어김없이 오곡밥과 나물반찬을 저녁상에 올렸다. 우거지와 말려두었던 취나물을 삶아 볶고, 말린 호박과 가지도 물에 불려 볶았다. 그 외에도 고사리나물이나 무를 채 썰어 들기름에 볶은 무나물도 있었다. 기름에 지지거나, 간장을 넣고 조린 조기와, 북어 머리로 국물맛을 낸 후, 두부와 콩나물을 넣은 심심한 된장국도, 김도 빠지지 않았다. 밥에 든 콩을 일일이 골라낼 정도로 싫어했던 내가 오곡밥을 맛있게 먹었을 리 없다. 땅콩이나 호두, 밤 같은 부럼은 좋았지만, 대보름 음식은 싫었다.
그랬던 내가 오곡밥을 제일 좋아한다. 콩, 팥, 쌀, 찹쌀, 좁쌀이면 벌써 오곡인데, 밤을 좋아하는 나는 깐 밤도 잔뜩 넣는다.
직접 말리지도 않고, 시장에서 파는 말린 나물류를 사다가 만드는 데도 손이 많이 간다. 말렸다 불리거나 삶아서 만든 나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보름이면 그냥 지나지 않고 한 두 가지는 꼭 만들어 먹는 편이다. 두부와 콩나물을 넣은 된장국도 빠뜨리지 않는다.
설 전날, 엄마는 소고기를 덩어리째 삶았다. 지금 추측해 보면 양지머리, 그중에도 치맛살 정도 되는 부위가 아니었을까 한다.
큰 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꽤 오랜 시간 끓였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찔러보아 한 번에 쑥, 수월하게 들어가면 고기가 충분히 무른 것이다. 고기 덩어리는 솥에서 꺼내 식힌 후, 결대로 찢었다. 고기국물은 따로 두고 찢은 고기는 마늘과 후추, 그리고 국간장으로 무쳐두었다.
설날 아침, 고기국물에 적당히 불린 떡국떡을 넣고 끓이다가 다진 마늘과 파를 넣어 완성한 떡국에 황백 지단과 고기를 얹어서 먹는다.
고기무침에 들어간 생마늘이 풍미를 돋우고, 국간장 맛이 밴 채로 뜨거운 국물에 젖어 부드러워진 고기를 떡과 씹자면 맛있어서 꿀떡꿀떡 넘어갔다.
결혼을 하고 보니, 어머니 떡국은 엄마의 그것과 달랐다.
소고기는 결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작게 잘라 마늘과 후추, 국간장과 참기름 그리고 조미료를 넣어 버무려 잠시 둔다. 물을 조금만 붓고 팔팔 끓이다가 고기가 익었다 싶으면 물을 더 붓고 끓여 국물을 완성한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듯이 해서 건진 떡국떡을 넣고 끓여 대접에 푼 후, 깨소금과 김가루를 고명으로 얹어 완성한다.
소고기를 최대한 잘게 잘라서 조리를 하니 소고기의 부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조리 시간이 짧아지니 가스도 적게 들 것이었다. 한 번 데친 떡으로 끓인 떡국은 국물이 맑아서 깔끔했다.
처음 어머니의 조리방식을 접하고 나는 가히 문화충격이라고 할 수 있을 느낌을 받았다. 조리 시간의 단축, 고기를 잘게 썰어서 적은 양의 고기로 최대한의 고기 국물맛 내기, 떡을 데쳐 맑은 국물 유지하기. 여기에는 합리성과 절약이라는 두 가지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 방식의 떡국을 끓였다. 떡국뿐만 아니라 고기가 들어가는 국물요리는 거의 같은 방식으로 조리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머니 식의 떡국은 어릴 적 내가 먹던 떡국의 맛과는 달랐고, 그런 사실을 발견할 때는 무언가 부족하고, 마음이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엄마의 떡국 끓이기 방식을 채용했다.
고기의 부위를 따져서 구입해야 했고, 덩어리 소고기를 무르게 하느라 가스나 전기가 더 들었을 것이고, 냄비 뚜껑을 열고 고기를 찔러보는 나의 품도 늘었으며, 불린 떡을 바로 국물에 넣고 끓여서 국물이 쉽게 걸쭉해졌다. 만두를 같이 넣기보다는 떡만 넣고 끓였으니,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은 떡국이 밋밋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경제적인 면으로나, 조리시간으로 보거나 상대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있는 이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렇게 끓인 떡국에서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준 그 맛이 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그렇게 만들면서 “엄마가 이렇게 했었지” 하며 자연스레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정말 안 계시게 되면, 엄마를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방식을 더 고수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