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눈을 번쩍 떴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큰손자인 것을 확인하자, 침대를 올려달라고 한다.
요즈음은 밥도 잘 안 먹고, 누가 말을 걸어도 눈도 안 뜨고, 입도 꾹 닫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힘을 낸다.
손자랑은 도란도란 얘기도 잘한다. 그럴 때 엄마 눈빛은 은방울꽃처럼 초롱초롱하다.
엄마의 손자 사랑은 유난하다.
그 애틋한 핏줄을 처음 받아 안던 때의 엄마를 기억한다. 엄마는 손을 떨고 있었다. 마치 세상 가장 존귀하고 여린 무엇인가를 받들듯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두 손을 벌렸다.
“우리 엄마는 이상해. 다른 엄마들은 손자보다 자식을 먼저 챙긴다는데…” 하는 언니 말이 맞기는 하다.
나한테도 그랬다. 어쩔 때 엄마는 나보다 우리 아이들을 더 챙겼다. 사위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통화를 할 때면 너는 어떠냐, 잘 지내냐는 건성이고, “ㅇ서방도 잘 있지? 다 괜찮지?” 하고 묻고는 했다.
이건 몇 년 전 작은오빠의 전언이다.
엄마가 우리들 넷이 다 불쌍하다고 했단다. 불쌍하다고? 우리가?
그랬다. 엄마는 우리를 불쌍해했다.
언니는 이래서 불쌍하고, 큰오빠는 저래서 불쌍하며, 작은오빠는 이래 저래서 불쌍하고 또 나는 저래 이래서 불쌍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뭐 불쌍할 사유가 되나, 픽하고 콧방귀를 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게 내 몸 어디, 정확하지는 않지만 목구멍이나 명치쯤 걸려 영 내려가지를 않는 거다. 우리가 불쌍한 이러저러한 엄마의 근거를 되새김질하다가 나는 가슴이 저릿해졌다. 남들은, 혹은 피를 나눈 형제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우리의 속사정을, 속상함을, 통틀어 말하면 아픔을 엄마는 다 보고 있었다. “에이, 뭐가 힘들어,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이지. 그런 일까지 일일이 속에 두면 어떻게 살아”하고 접어 두었던 것들을, 엄마는 그냥 보고 지나치치 않았구나. 엄마는 염려하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엄마는 손자녀들, 사위들 그리고 며느리들이 불쌍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저 ‘사랑하고’, ‘고맙고’, ‘애쓴다’ 고만한다.
“네가 몇 살이여?” 하고 물을 때, “나? 00살이지, 엄마”하고 대답하면 “아이고, 징그러워” 한다. 왜 이렇게 오래 사냐며 당신을 탓한다. 엄마가 살아온 만큼 자식 넷이 살아가는 이런저런 모습을 보면서, 더 오래, 더 많이 속도 끓였을 거면서. 말없는 지지를 보냈을 거면서.
방에 들어서면 작은오빠는 모자를 벗고 머리를 엄마한테 들이민다.
모자에 갇혀있던 머리카락이 쏟아진다. 흰머리가 대부분인 머리카락은 숱이 적다.
엄마는 그 머리를 쓸어 올려주는 시늉을 한다. 엄마가 기운이 있을 때는 “어허, 머리 좋다!”하는 말과 함께이다.
이건 엄마와 작은오빠 둘만의 의식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이렇게 서로 만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런 표시이다.
그 모습을 보고 떠올렸다. 지금 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그리고 깊이로 엄마와 만나는구나. 자기 삶의 모양새대로 엄마를 느끼는구나. 추억하고, 가여워하고 혹은 서운했던 날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삶의 일부였음을, 지금도 내 몸을 세우고 관통하고 있는 피와 살이 되었음을 안다. 그 모든 시간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엄마가 통화를 끝내면서 “사랑해” 하면 그제야 “네, 나도”하고 품앗이 인사를 하던 무뚝뚝한 딸이었다. 엄마 얼굴을 더 쓰다듬고, 뺨에 입 맞추고, 안아주고 손을 주물러주자. 곁에 우리가 있어서 엄마는 결코 외롭지 않음을,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