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 팀워크가 있었네. “
나는 작은오빠에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것은 어쩌면 고백 같기도 했다.
엄마가 수술하고 며칠 지났을 때, 엄마를 보고 나오다가 병원 현관에서 작은오빠와 우연히 마주쳤다.
마침 이른 저녁을 먹을 때는 되었을 시간이라, 나는 오빠에게 밥을 먹고 엄마한테 가도 되지 않느냐고 했고, 우리는 병원 정문을 나와 조금 걷다가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인테리어가 깔끔한 그곳은 돈가스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고, 오빠는 안심을 나는 등심 돈가스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엄마 수술 경과며, 다른 형제들 얘기를 했다. 오빠와 둘이서만 밥을 먹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맏이인 언니는 나, 그리고 나보다 두 살 많은 작은오빠하고는 나이차이가 많다. 나는 큰 오빠하고도 여섯 살 터울이 진다. 언니와 큰오빠, 두 사람의 생활 범위나 시간은 우리하고는 달랐다. 같이 놀 일도, 먹을 것을 두고 싸울 일도 별로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언니는 취직을 했고, 큰오빠는 한창 공부하기 바쁜 고등학생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공사다망 公私多忙 했다. 집에는 엄마, 작은오빠, 나 이렇게 셋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팀워크라는 말이 생각났는지 모른다.
여름방학이면 나는 종이인형 옷을 만들어 입히거나, 선풍기가 돌아가는 대청마루에 엎드려 집에 돌아다니는 아무 책이나 잡지들을 뒤적였다. 한낮이 되면 태양에 달궈진 공기가 마치 시원한 곳을 찾기라도 했다는 듯, 열린 대청문을 통해 밀려들었다. 그러면 더위를 피해 방으로 갔다. 시멘트 바닥 위에 정사각형의 종이장판을 이어서 바르고, 그 위에 니스칠을 한 방바닥은 서늘했고, 땀이 나도 살에 달라붙지 않았다. 심심해지면 반 친구들 집 앞으로 가서 이름을 불렀다. “00야, 노올자.” 공원이나 체육시설도 없는 동네라서 한여름 더위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배회하다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얼음과자 하나씩 사서 먹으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만남의 마무리였다.
오빠와 ‘한바탕’이라는 놀이를 자주 했다. 여름 놀이로는 이만한 게 없었고, 놀이 동무로서도 오빠만 한 상대가 없었다. 우리 둘 중 누가 만든 이름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면서도 매우 감각적인 작명이었음을 인정한다. 대청마루를 내려서면 시멘트를 발라서 표면이 매끈한 꽤 큰 토방(마땅한 명칭을 못 찾아서 편의상 이렇게 부른다) 있었다. 거기 서서 위를 올려다보면 반투명의 플라스틱 지붕이 얹어져 있어서 해가 있는 동안에는 환했다. 놓여있던 신발을 다른 곳으로 치우고, 마당 수도꼭지에 연결한 호스를 끌어다 놓고 물을 틀었다. 그러면 호스가 살아나기라도 하듯 움찔거리다가 물을 토해냈고, 물이 닿는 곳부터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면적이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전체가 같은 색으로 통일되면 바닥은 더 맨질맨질해졌다. 바닥이 준비됐다 싶으면 뒤로 걸어간다. 거기서부터 달려오다가 토방이 시작되는 곳에 멈춰 섰다. 두 발 간격을 벌려 뒤쪽다리에는 힘을 주어 중심을 잡고, 앞쪽 다리는 상대적으로 힘을 뺀 채 방향을 잡는다. 상체를 틀고 비스듬히 뒤로 젖히면 달려오던 힘을 받아 미끄러지면서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스릴이란! 재미있어서 토방 길이가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둘이 번갈아가며 이렇게 하다 보면 발과 다리뿐 아니라 물이 튀어서 옷도 젖어버렸다. 한바탕 놀고 나면 더위가 견딜만해지고는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는 벌써 중년이었다. 위로 두 아이를 키워놓고, 폴짝대는 아직 어린 두 남매를 보는 것이 기쁨이고 활력이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사방을 물바다로 만들고 나서, 젖은 옷이며 수건 나부랭이의 빨랫감을 던져놓으면 어김없이 엄마의 잔소리가 들렸다.
오빠가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한바탕 놀이를 하지 않았다. 두 해 후에는 나도 중학교 진학을 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각자 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누지 않는 비밀이 늘어갔고, 오빠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지금은 올케언니하고 더 많이 연락한다.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얘기하는 것도 편하고, 관심 있는 일도 비슷해서 잘 통한다. 어느 집이나 성별이 다른 형제자매는 사춘기의 벽을 넘으면서 다 우리처럼 데면데면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각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느라 바쁘면 멀어지기는 하겠지.
그래도 같이 했던 여름이 저렇게 발랄하고 찬란한데, 우리는 한 팀이었는데, 조금 더 친하게 지내도 되지 않우?
언제고 또 고백해야 하나보다.
“오빠, 그때 한바탕 진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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