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난 큰 창을 등지고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다.
덧창의 익숙한 나무 격자 장식이 부드러워 보인다. 방 대부분을 차지하던 덩치 큰 이인용 침대를 빼고 나니, 일인용 침대 두 개를 놓을 빠듯한 공간이 생겼다. 패드나 간단한 엄마 옷 같은 것들로 채운 플라스틱 오단 서랍 두 조组는 한쪽 구석에 얌전하게 서 있다. 미닫이 옷장에는 엄마 옷이 있다. 하나같이 유행 지나고, 색이 바래고, 늘어지고 한 것들이다. 이건 편해서, 저건 시원해서, 그리고 따뜻하다며 즐겨 입었던 옷들이다. ‘언니랑 같이 가서 샀었는데’, ‘이거 엄마가 제일 잘 입던 여름옷이네’ 하는 사연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다.
이 방에 오면 나는 열어서 뒤진다. 꺼내보기도 한다.
“하, 이걸 아직도 안 버렸네?” 하지만, 사실 이건 나만의 추억 찾기 놀이이다.
“엄마!”
부르면 잠시 떴던 눈은 스르르 감겼다.
“아유, 난 왜 이렇게 졸린지 몰라.”
졸음은 항우 장사도 못 이긴다더니,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올리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엄마는 오른쪽 어깨를 아래로 하고 모로 누으려고만 했다. 그런 자세는 결국 극심한 오른쪽 어깨 통증을 가져왔다.
“이렇게… 몸을 좀 돌려봐요. 오른쪽으로만 누워 있으니 어깨가 그렇게 아픈 거야.”
“엄마, 눈 좀 떠봐요. 낮에 이렇게 자니까 밤에 잠이 안 오지.”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는 내 목소리가 컸나 보다.
“미안해…”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요?” 되물으며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는데 “미안하다…” 하는 말이 또렷하다.
그때까지 간신히 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냄비 밥 밥물처럼 훅 하고 끓어 넘쳤다. 들썩이는 그 감정에 마음의 뚜껑이 열리고 그만 쩽그렁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엄마가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 위로한답시고 겨우 끌어올린 한 마디는 비명에 가까웠고, 나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하구나, 자식이든 누구에게든 다 미안하구나.
그 소리에 거실에 있던 아버지도, 주방에 있던 *보호사님도 놀라서 방으로 달려왔다.
엄마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그토록 마음을 다잡았건만…이 무슨 짓이람.
얼른 티슈를 두어 장 뽑아 눈물을 닦았다.
멋쩍어서 “안 울려고 했는데, 엄마가 기어이 나를 울리네, 참“ 하면서 엄마 탓을 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하던가.
말하고 보니, 맞다. 다 엄마 때문이다. 옛날부터 텔레비전 보면서도 툭하면 소맷자락을 끌어당겨 눈가를 꾹꾹 누르던 엄마를 닮은 때문이다.
엄마, 내가 미안해. 이제 잔소리 안 할게.
재작년쯤부터 엄마는 웃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웃음을 잃었다. 표정이 굳어 버렸다.
내가 가도 옛날처럼 반가워할 줄도 몰랐고, 베란다에서 과일을 꺼내다 주며 깎아 먹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게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이제 엄마가 웃지를 못해… ” 하고 언니한테 말하곤 했다.
*보호사님의 소개로 방문 간호사를 모신 적이 있었다.
재활병원에서 집으로 온 후로는 재활을 할 방법이 없었다. 엄마가 안정되어서 다행이었지만 혹 다시 걸을 수 있는 적은 가능성마저 놓치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상태가 상태이니만큼 간호사분도 아주 간단하고 초보적인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팔을 들어 올리게 하고, 몸을 이쪽저쪽으로 움직여보게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통증을 호소했고, 간호사는 그분대로 치료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굳어진 몸은 작은 움직임도 힘겨워했다. 그래도 그분의 도움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다리를 아래로 내려뜨린 채, 아주 잠깐씩 앉아 있기는 했다. 혹시 수술한 고관절 부위가 잘 못 되기라도 할까 봐 우리는 엄두를 못 내던 일이었다.
간호사분이 “어머니, 아리랑 좀 불러 주세요 “ 한다.
엄마가 노래를 할 수 있다고?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지켜봤다. 의구심만큼 큰 기대 때문에 바짝 긴장한 채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오오~”
엄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립싱크였다. 슬픈 립싱크. 기운이 없어서 목소리는 안 나왔지만, 입모양으로는 가사가 정확했다. 엄마는 잠시 아리랑을 즐겨 부르던 젊은 어느 날의 자신이 되기라도 한 걸까. 멀고도 긴 시간을 건너온 아리랑은 지워지지도, 희미해져 있지도 않았다.
얼마나 열심히 불렀던지 진땀이 나고, 촉촉해진 눈가가 반짝였다.
우리는 손뼉을 쳤다.
그 순간 엄마가 어렴풋이 웃었다.
웃었다!
웃어요! 또 웃어봐요, 엄마.
엄마가 웃은 게 신기하고 좋았다. 나도 웃었다.
울렸다 웃게 했다 하는 엄마와, 울었다 웃었다 하는 나는 아마도 추억을 만드는 중인가 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