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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 Aug 18. 20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鐵) 이야기_1

영화 <인생>을 보다가 든 생각

토법고로


   위화(余華) 원작소설을 거장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이 연출한 1994년 영화 <인생>은 1940년대 국공내전부터 50년대 대약진운동, 60년대 문화대혁명까지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푸구이(거유葛优 분)라는 전직 한량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1994년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거머쥐며 장이머우 감독의 세계적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재확인시켰다. 근래 이 감독이 <그레이트 월>같은 우스운 영화로 퇴보한 것이 안타깝다.

   <인생>(원 제목은 活着, 즉 '살아간다는 것'이다.)은 위화의 원작소설도 명작이거니와, 수많은 사람의 피로 점철된 대륙의 현대사를 신파도 비분강개도 아닌 해학으로 풀어내어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다.


   영화에서, 감동과는 별개로 천상 쇳밥 먹은 쇠쟁이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푸구이의 마을에 등장한 DIY 용광로, 이름하여 토법고로(土法高爐)다.

마을 사람들이 푸구이의 그림자극 공연을 보러 앉아있는 옆에서 제철공들이 토법고로 작업을 하고 있다.

   고로라고도 하는 용광로는 암석(철광석)을 녹여 암석에 함유된 철분을 추출하는 가마이고 토법은 전통 기술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의 야철(冶鐵) 가마는 한나라 시대에도 있었으니 과연 토법이다. 19세기 청나라 양무운동 때 이미 근대식 제철소를 건설한 바 있는 중국이 시대를 거슬러 2천년 전 기술을 소환한 것이다. 인민의 힘으로 강철을 직접 생산하자는 의욕은 넘쳤으나 녹여서 의미 있을만큼 쇳물이 흘러나올 철광석은 그리 흔하지 않다. 게다가 공산당 정부는 철광석을 채굴 공급하고 제련한 철을 용도에 맞게 정련하는 종합적 생산 시스템에는 관심 없었다.

   중국 전역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토법고로에서 녹인 것은 철광석이 아니라 우선은 고철, 그 다음에는 멀쩡한 철 제품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철기를 만든 중국이 20세기에 그 시대보다 낙후된 기술을 보여준 셈이다. 서양인들은 이 토법고로에 Chinese Backyard Furnace라는 기막힌 이름을 지어주었다.


   영화에서 부엌살림까지 털어가자 푸구이의 아내 지아전(궁리巩俐 분)이 밥을 어떻게 해먹느냐고 항의한다. 이 때  촌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우리 공산주의가 밥 굶길까봐?"

   위화 원작에서 토법고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 특유의 구라 본능이 이 장면에서 번득인다. 드럼통에 쇠붙이를 넣고 녹이려다 쇠붙이보다 드럼통이 먼저 녹겠다고 누군가가 지적하여 사람들이 낙심하고 있을 때, 푸구이의 아들 요칭이 아이디어를 낸다. 드럼통에 물을 붓고 끓이면 된다! 마을 사람들은 과학자 났다고 칭찬하고 쇠를 '끓이기' 시작한다. 몇날 몇일 끓인 끝에 쇳덩어리가 만들어진 것은 물이 졸아들어 드럼통이 녹은 덕분이었다.


   잘 만든 영화는 스틸컷 한장에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인생>은 무척 잘 만든 영화다.

   위, 영상 캡쳐 사진을 보자. 현실이라면 이런 그림은 그려지기 어렵다. 소음과 먼지와 열기로 가득 찬 철공장에서 그림자 연극이 가당키나 할까? 영화에서 공연을 보는 남녀노소는 쇠 만들어지는데 별 관심 없고 불가마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 역시 이쪽을 볼 생각 없다. 이 장면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희대의 삽질이라는 대약진운동. 그러나 운동은 운동대로, 민중은 저녁별 같은 삶을 찾았고 찾아냈던 것이다. 10여년 뒤 그 '혁명'이 있기 전까지는.


   어쨌든, 토법고로에서 '생산된' 철은 누구나 짐작하다시피 아무 곳에도 쓸모 없는 쇳덩어리였다.

쇳덩어리를 옮기며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


고로


   일본 규슈 기타규슈(北九州)시 가고시마본선 철도 스페이스월드 역에서 보면 일본제철 야하타(八幡) 제철소의 고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하타 제철소 히가시다 제1고로. 1972년 가동을 중단하고 현재 고로를 중심으로 사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역 이름이 스페이스월드(スペースワールド驛)인 것은 바로 옆에 그 이름의 테마파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월드는 1990년에 개장하여 2017년까지 27년간 적자에 시달리다 사라졌지만 역 이름은 아직 살아 있다. 우주 항공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으로, 는 2009년인가 2010년 즈음에 아내와 초등학교 다니던 딸아이와 함께 놀러갔었다. [자탄]이라는 이름의, 수직(91도)으로 내리꽂히던 롤러코스터가 기억에 생생하다.

   고로에 붙어있는 [1901] 명판은 가동을 시작한 연도다. 일본 최초의 근대식 제철소의 첫번째 고로로서, 1972년까지 70년여 세월 쇳물을 쏟아내다 현재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역사적 기념물로 보존되어 있다. 1901 명판도 그 때 붙었다. 오늘날 우리가 포항과 광양, 당진 등 제철소가 있는 지역을 지날 때 저 멀리에서도 볼 수 있는, 높이 100미터가 넘는 고로의 위용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시대로서는 경천동지할 초대형 구조물이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고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추출하는 용광로에 높을 고(高)字를 쓰는 '고로'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도 이렇게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외관 때문이다.

   앞서 중국도 비슷한 시기에 제철소를 건설했다고 했는데, 정확히 말해 일본보다 10년 이상 앞선 1890년, 지금의 우한 지역이었다. 다만 이 제철소는 현재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경북 포항에 대한민국 최초로 고로가 건설된 것이 1972년이었으니 이웃 나라들이 얼마나 앞섰는지 알 수 있다.


   1901년이면 마크로니 무선 전신의 대서양 횡단 송신이 성공한 해다. 이 해, 미국 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어 시어도어 루즈벨트 부통령이 승계했으며 대한 제국의 제주도에서는 이재수의 난이 일어났다. 청일전쟁 16년 뒤고 러일전쟁 3년 전이다. 50년 남짓 전에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일본이 개항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 도쿠카와 막부가 무너졌다.


   우리는 흔히 동양 3국의 역사에 단단한 오해를 한다. 19세기에 중국이나 일본이나 조선보다 군사력이 조금 강했을 뿐 국가 수준은 도토리 키재기였는데 요행히 서양 문물을 일찍 접하여 순식간에 치고 올라갔다는 오해다. 당연히, 전혀 그렇지 않다.

   청나라는 서양 세력의 침탈과 뿌리깊은 부패, 황실의 막장 행각으로 자멸하기 전 18세기에 이미 산업혁명 직전까지 간 과학 기술 강국이었고 전세계 무역의 주축이었다. 에도 시대의 일본은 세계 최대 은(銀) 생산국이었으며 시민사회 형성 부분만 빼면 동시대 유럽 자본주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서구 부르주아지처럼 상인 계급이 사회의 실세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주식회사, 외환, 신용거래, 선물거래, 심지어 일본의 경우 지역화폐까지,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와 다른 점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한 잠재력이 있는 국가는 어떤 계기가 주어졌을 때 급속히 강대국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1901년'생각이 많아진다. 무슨 얘기 하다 말았지? 아, 고로!

   내 글쓰기는 앞으로도 내내 이런 식일 것이다.

   고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우리는 왜 일찍 근대화를 못했을까? 이 주제로 수많은 한국인이 수많은 침을 튀겨 왔는데 나도 한마디 보태자면, 조선은 가난해서 그랬다. 가난해서 근대화 못하고 나라가 넘어갔으며 가난해서 사회 질서를 성리학 따위에 의존했다.

   우리는 옛 한반도가 굶주림이 일상화된 땅이라 배웠다. 그런데 농토와 농업인구 수로 보면 절대로 굶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1960년쯤 직업별 인구조사를 보면 경제활동인구 중 농어업 종사자가 70%에 육박했는데, 이를 토대로 추정하면 조선 시대에는 성인 열에 아홉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양반층의 수탈 때문이었을까? 조금만 머리를 쓰면 이도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농산물은 세세년년 쌓아둘 수 없고 올해 소출이 나오면 지난해 작물은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바로 바로 처리해야 했다. 수출한 것도 아니니 생산된 먹을거리는 나라 안에서 어떻게든 돌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많은 백성이 먹지 못했다는 건 농업 생산성이 지극히 낮았기 때문이라는게 보다 합리적인 해석이다.

   배가 불러야, 그리고 많은 사람이 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어야 비로소 도구와 장치도 개발하고 사업도 투자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고 나면 성리학으로 땅땅 조지기보다 사람을 모아 기업을 만들고 무역을 하는게 계급 이익 보전에 유리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를 안타까와 할 필요만은 없다. 70년이나 뒤늦게 시작하여 지금 우리가 이루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다시, 고로.

   고로는 영어로 Blast Furnace, 말하자면 열풍(熱風)을 불어넣는 가마라는 뜻이다. 그 대략적인 구조는 그림과 같이 매우 단순하다.

고로의 대략 단면도. 사진은 포스코 뉴스룸에서 따왔다.

   우선 상부로부터 원료가 투입된다. 원료는 철광석과 코크스(cokes)의 혼합물이다. 철광석은 암석 그대로 투입하지는 않는다. 암석을 잘게 부수어 균일화한 뒤 고온으로 소결(sintering) 처리한 덩어리를 쓰며, 이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녹는점이 암석마다 다르고 심하면 녹지 않고 떠다니는 암괴가 발생할 수 있다. 코크스는 유연 성분의 석탄(coal)을 타지 않을만큼 고온에서 가열하여 휘발성을 제거한 탄 덩어리로, 매우 단단하고 연소 온도가 높으며 균일한 열량을 갖는 연료다. 코크스와 원광석의 혼합 고체에 불을 붙이고 1200도에 달하는 열풍을 주입하면 철광석은 녹게 되며 비중의 차이로 용융 액체는 아래로 흐른다. 그 액체를 출선구로 배출시키면 우리가 원하는 쇳물이 얻어지는 것이다. 용융된 액체는 철과 암석 성분이 섞여 있지만 비중과 응고점의 차이에 의해 분리된다. 

   고로 본체는 단순히 말해 내화벽돌 바깥을 철피로 두른 형태다. 고로 상부의 거대한 파이프는 연소 가스를 배출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 가스는 제철소 다른 공정에서 연료로 사용된다. BFG라는 명판이 붙은 배관을 제철소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Blast Furnace Gas, 고로가스다. 고로에서는 보수작업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1년 내내, 1분도 쉬지 않고 상부로는 고상(固狀)의 원료가 투입되고 하부로는 쇳물이 흘러 나온다. 만일 어떤 사정에 의해 고로가 정지했다면, 그래서 용융된 광석이 굳어버렸다면 그 고로는 다시는 쓸 수 없고 해체 방법은 오직 폭파 뿐이다. 달리 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고로는 일정 수준, 대략 50% 이상의 철분이 함유된 광석을 원료로 써야 하고 소결과 코크스라는 선행 공정이 필요하다는 숙명적 단점이 있다. 따라서 고로를 대체할 설비에 아주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 푀스트알피네(VoestAlpine) 제철소에서 개발한 코렉스(COREX;Coal Ore Reduction)법은 철광석과 무연탄 공히 분말 상태로 투입할 수 있고, 이를 더 발전시킨 포스코(한국)의 파이넥스(FINEX)는 보다 저품질 철광석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단점과 모든 극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고로의 생산성을 능가할 공법은 없다.


   고로를 건설하고 맨 처음 불을 붙이는 일을 화입(火入)이라 하는데, 제철소 최고의 이벤트다. 최고 경영자와 정재계 귀빈이 직접 불 붙이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첫 쇳물이 흘러나오는 순간에 건설에 참여한 기술자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화입식은 보통 화(火)요일에 하며 도저히 여의치 않으면 금(金)요일에 하기도 한다. 다른 요일은 절대로 날을 잡지 않는다. 물론 한국과 일본 한정이다.


   고로라는게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토법고로라고 안될건 없지 않아?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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