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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 Aug 25. 20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鐵) 이야기_2

영화 <인생>을 보다가 든 생각

   전편에 이어 철 이야기를 계속한다. 별개의 내용이 아니고 글이 길어져 나눈 것 뿐이다.


야철지


   내가 1993년부터 2020년까지 살았던 경남 창원시에서는 해마다 야철제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린다. 전날 불꽃놀이와 초청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열리고 하루동안 여러 공연과 전시, 시민 걷기대회, 미술과 서예 대회 등 각종 문화행사가 시내 곳곳에서 개최된다. 흔한 지역 축제중의 하나다. 그런데 축제 이름이 좀 생뚱맞지 않은가? 야철(冶鐵)은 광석에서 철을 골라내고 불순물을 솎아내는 일, 즉 철 제련이다. 미역이나 고추, 아니면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딴 다른 지역 축제와는 어딘가 위화감이 있는 이름이다.


   1973년 11월, 창원시 성산구 외동에서 조개무덤(貝塚)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패총 위에 통일신라시대 성곽이 뒤섞인 복합 유적이었는데, 발굴 중에 유적 아랫부분에서 예상 외의 고대 철가마 흔적, 곧 야철지가 튀어나왔다. 발굴 층으로 보아 적어도 기원전 1세기 가야 유적임에 분명했다.

발견 당시의 성산패총 야철지와 당시 신문기사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정립되기 이전에 변한 및 마한에서 한반도 최초의 철기가 생산되었다는 건 이미 학계의 정설이었다. 삼국지(정사)등 중국의 사서에도 한반도 남부에서 난 철이 왜와 남방에까지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창원에서 발견된 야철지는 학술적으로 막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곳은 창원 국가산업단지 부지, 그것도 한복판이었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중화학 공업 육성을 골자로 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돌입할 때였다. 전국가적 역량을 결집하여 전국 요소에 조성한 국가산업단지는 지역별로 다른 클러스터로 설계되었는데 가령 경북 구미는 전자, 대구는 섬유, 포항 철강, 울산 조선 및 중화학, 여수/여천은 석유화학 같은 식이었다. 그리고, 창원은 기계공업 단지였다.

   당시는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관심이 있다 해도 개발 이데올로기에 밀려 보존 목소리 내기가 힘들기도 했다. 창원은 고대도시 치고는 문화유적이 매우 적은데, 아마도 개발 속도전에서 불도저 밑에 깔려 사라진 문화재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국가산단 조성 사업을 시찰하러 온 박정희 대통령에게 문화재 관계자들이 이 철가마를 창원 기계 산업단지의 상징으로 삼을 것을 건의하였고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한다.


   창원공단 부지에서 옛날에 철을 생산했다는 사실은 풍수지리적 해석도 낳았다. 부산의 한자가 가마솥 부(釜)인 것은 거기 동래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창녕 부곡면(釜谷面)에도 유명한 부곡온천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부곡온천은 1970년대에 발견되었고 부곡이라는 지명은 그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는 것이 포인트다. 옛 사람들이 온천의 존재는 몰랐지만 땅의 기운을 살펴 땅 이름에 釜자를 붙였고 후손들이 온천을 발견한 뒤에야 선인의 안목에 탄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창원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창원이란 땅은 쇠의 기운이 있어서 옛적에는 흙을 끓여 쇠를 만들었고 2천년이나 지나서는 쇠를 깎아 기계를 만드는 곳이 되었다는 건데, 믿거나 말거나 하기에는 참 그럴듯했다.

  고대 유적이 한 도시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까지 학문적 가치와 동양철학적 의미찾기 중 어느 쪽이 크게 작용했을까? 모르긴 해도 후자가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야철지가 포함된 고대 유적은 개발을 피해 현재 창원 공단 한가운데에 섬처럼 떠 있고 사적 240호 [성산패총]으로 지정되어 있다. 야철 축제가 열리는 4월 1일은 건설부고시 92호로 창원 산업기지 개발구역이 지정된 날이다. 해마다 야철제 때는 창원시장과 지역 지도급 인사들이 성산패총에서 제사를 올리고 성화를 채화한다.

(※ 창원, 마산,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된 2010년 이후로는 통합일인 71일에 개최되고 있다.)

2022. 6. 30. 제 31회 야철제 전야제


   풍수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긴 하다. 시골 집짓기는 물론이고, 한국인의 주된 주거공간인 도시의 공동주택에도 풍수가 있다. 가구와 인테리어 배치를 잘 하면 집에 좋은 기운이 들어오고, 벽에 걸 그림도 재물을 불러오는 그림이 있다고 한다. 이걸 말이라고 하나? 하지만 풍수를 비웃을 사람도 다른 비과학적 믿음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우주에도 기운이 있고 태어날 때의 천체 운행이 현재직장이나 부부 금슬에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 같은 것들이다. 현재의 고단한 삶은 주민등록상의 이름을 바꾸면 개선될 수 있다고도 한다. 믿는 본인 외에는 해가 없는 일이니 구태여 태클을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상한 믿음은 인류가 역사를 이어가는 한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고, 신봉자들도 그 외에는 정상적 지능과 지성을 갖고 있다.

   창원의 쇠냄새 나는 풍수지리를 보면 알듯 때로 이상한 믿음은 과학적 논리보다 사회에 더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보다는 훨씬 유해한 믿음에 집중해야 한다. 과학의 언어를 차용하여 유포되는 비과학적 헛소리, 예를 들어 백신 음모론, 기후변화 음모론, 고압선 전자파 괴담 같은 것들 말이다.


   창원 성산 야철 유적은 한반도에 산재한 야철지들(남한 지역만도 40여개) 중의 하나다. 창원과 인근 고성의 고대 가야 유적부터 조선시대의 가마까지 다양하나 그 원형이 보존된 곳은 거의 없다. 가장 최근(19세기로 추정)이어서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는 야철 가마는 경주 건천읍 용명리에서 발굴된 쇠부리터로, 현재 충북 음성 철박물관에 이전 보존되어 있다.

   사진을 보자. 흙으로 쌓은 가마가 길다란 언덕 모양인 것은 원료 운반의 편의 때문일 것이다. 원료는 철광석과 목탄이다. 중앙에 위치한 가마에 철광석과 숯을 재어 넣고 불을 붙인 후 뒤쪽에서 풀무질로 가마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가마 하부로 쇳물이 흘러 나온다.

충북 음성 철 박물관 야외에 실물 전시된 조선시대 쇠부리터(上)와 그 모형(下). 모형의 중앙부는 가마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절개하였다.

   다른 그림을 보자. 이것은 유럽으로 철기가 전래된 BCE 1200년 경부터 중세까지도 쓰였던 철가마, 블루머리(bloomery)다. 얼개와 사용법은 한반도의 가마와 다른점이 없다. 그뿐인가? 독자들도 한눈에 알아보셨듯 현대의 고로와도 본질적으로 같다. 당연히, 대약진운동의 토법고로가 이 블루머리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블루머리(bloomery) 외관과 단면도. 지역별로, 시대별로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있으나 얼개는 같다.
대약진운동 당시의 토법고로



제강(製鋼)


   고로에서 나온 쇳물이 식은 철을 선철(銑鐵;pig iron)이라 한다. 선철은 불순물 때문에 곧장 사용할 수 없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로 출선구에서 쇳물에 섞여 흘러나오는 광물 성분과 코크스의 재(灰), 용제로 투입하는 석회 등의 찌꺼기를 슬래그(slag)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제거 가능하다. 문제는 철과 화학 결합된 원소들이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산소(oxygen)다. 철의 성질에 영향을 주어 적당량 꼭 필요한 다른 원소들과는 달리 산소는 반드시 완전 제거되어야 한다. 산화철을 다른 말로 하면 녹(iron rust)이기 때문이다. 철광석에 함유된 자연 상태의 철은 거의 산화철인데, 철과 화학 결합한 산소는 사실은 고로에서 대부분 제거된다. 고로는 용광로인 동시에 거대한 환원로인 것이다. 철광석과 함께 투입되는 코크스는 탄소 덩어리로서, 연료 연소로 산소를 소모하고 탄소가 산화철에서 산소를 빼내어 일산화탄소로, 다시 이산화탄소가 되어 날아간다.

   이 환원법은 블루머리를 사용하던 철기시대 초창기에 이미 개발되었다. 야철 가마에 철광석과 함께 투입한 연료가 생나무가 아니라 목탄(charcoal)인 이유다.

블루머리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

   고로의 환원 과정으로도 제거되지 않고 산화철 속에 남아있는 산소는 이후 공정에서 용융철에 알루미늄이나 철-망간 합금(페로-망간;Fe-Mn), 철-규소 합금(페로 실리콘;Fe-Si)을 투입하여 끝까지 걷어낸다.

   

   철강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원소는 탄소(carbon)다. 탄소는 철강에 반드시 필요한 원소고 철강의 기계적 성질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소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확히 원하는만큼만 철 속에 존재해야 한다. 선철의 탄소 함량은 지나치게 높아서 이를 다음 공정에서 원하는 만큼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탄소를 제거하고 함량을 조절하는 공정을 제강(製鋼)이라 한다.


   여기서 잠시, 지금까지 철 또는 철강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지금부터는 철강의 종류를 큰 분류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철강은 탄소의 최종 함유량에 따라 주철과 강철로 나누어진다.

   탄소 함량 2~6.67%인 철을 주철(cast iron)이라 한다. 형틀에 녹여 붓는 용도의 철이다(주조;casting). 탄소 6.67%라는 것은 이론상 쇳덩어리가 완전한 탄화철일 때의 함량으로, 이런 철은 현실적으로 쓰일 일이 없어 주철의 실질적인 탄소 함량은 대략 4.5%가 한계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주철 제품은 아마도 옛날 가마솥일 것이다. 가마솥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것처럼 주철은 단단하고 열에 강하고 복잡한 형태도 만들 수 있으나 깨지기 쉽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대장간에서 불어 달구어 두들겨서 무엇을 만들지도 못한다. 물론 현대 기술로 여러 합금원소를 첨가하여 상당한 인장력을 갖게 한 주철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굽히거나 펼치거나 용접할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탄소함량 2% 미만, 현실적으로 약 1.5% 이하인 철이 강철(steel)이다. 명칭에 대해서는, 기계나 금속 계통에 있는 사람치고 강철을 강철이라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모두가 강(鋼)이라 하며 앞으로 내 글에서도 문맥상 필요하지 않으면 강철 대신 '강'이라는 이름을 쓸 것이다. '철'이라는 명칭은 선철과 주철에 한한다.

   강철은 현대 문명의 기반이고 우리가 누리는 거의 모든 것들의 뼈대와 외관을 이루고 있다. 강의 종류는 탄소 함량을 제 1 기준으로 하고 그 외 망간, 규소, 니켈, 크롬, 몰리브덴 등 여러 원소의 조성과 함량에 따라 수천가지에 달하며,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제철소에서든 새로운 강종이 개발되고 있다. 내가 기계 만드는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듣도 보도 못한 강이 지금 현장에서 제법 쓰이는 것을 보면 첨단 신기술 못지 않은 철강계의 진화 속도를 느끼게 된다.


   강은 탄소 함량에 극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기계 제작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기계구조용 탄소강재 SM45C는 탄소함량 0.42~0.48%, 인장강도는 569MPa 이상이다. 같은 계열 한단계 위 SM50C는 탄소함량 0.47~0.53%로 불과 0.05% 많은 정도인데도 인장강도는 608MPa 이상으로 7% 가까이 높다. 그러니 0.1% 차이라면 다른 강종이라 해도 좋을만큼 큰 차이가 난다.

   철강 3천년 역사는 탄소와의 싸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만든 최초의 철은 선철이나 주철이 아닌 강이었다. 기원전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에는 철광석을 완전 용융시킬 정도로 고온 가열하지 못했다. 최소 1400˚C 이상으로 가열해야 선철이 흘러나올 수 있으나 초기의 블루머리에서 나온 금속은 반쯤 녹은 철에 슬래그가 뒤섞인 괴련철(塊鍊鐵)이었다. 이 괴련철을 부수어 슬래그를 털어내고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단야鍛冶라고 한다.) 철 부스러기가 덩어리가 되고 덩어리를 얇게 펴면 표면에서 탄소가 기체로 승화한다. 쇳덩어리 내부 탄화철 상태로 존재하는 탄소는 확산에 의해 표면으로 배출되고 이 무지막지한 노동의 결과로 철은 탄소 함량이 낮은, 나아가 원하는만큼 낮은 강이 된다. 물론 탄소의 존재를 알 리는 없었다.

   가열 기술의 발달로 점차 블루머리에서 선철이 얻어졌다. 선철을 주조하면 힘들여 두드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원하는 형상을 얻을 수 있었으나 무기, 농기구, 기타 충격이나 굽힘 하중을 받는 용도로는 부적합했다. 그래서 하부 출선구로 흘러나온 용융철은 주철로 사용하고 그보다 위에서 녹다가 말고 굳은 괴련철을 두들겨 강을 만들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블루머리는 고로로 진화하고 선철 생산량도 많아졌다. 이에 선철을 핸들링할 방법이 각 문화권에서 등장했는데, 고대 가장 발달했던 중국이 주장하기는 기원전 2~5세기, 유럽은 중세에 접어들면서 선철을 산화철 부스러기와 섞어 녹지 않을만큼, 대략 900˚C 정도까지 가열했다.(선철 용융점은 1140˚C 내외다.) 이 온도에서 탄화철의 탄소는 표면으로 배출되어 산화철의 산소와 결합한다. 산화철을 탈탄제로 쓴 것이다. 비로소 괴련철을 두드리지 않아도 강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매우 불균일해서 단야법을 병행해야 원하는 물성을 얻을 수 있었다.

스웨덴 엥겔스베리 제철소(Engelsberg Ironworks). 구식 고로와 수차로 작동되는 단야 프레스를 갖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월이 더 흘러서는 선철을 용융시켜 용탕을 휘저었다. 이른바 초강법(炒鋼法;fining)이다. 용융상태를 장시간 유지할 정도로 가열 기술이 발달한 다음이었다. 서양의 근대 이후, 중국은 중국 주장으로 기원전 2세기 전한 때부터 용융철을 휘저으면 주철이 강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탕 표면으로부터 탄소가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다. 헨리 코트(Henry Cort, 1741~1800)란 사람이 개발한, 용융철을 진흙 반죽하듯이 기계로 젓는 퍼들링(puddling)법으로 영국은 스웨덴에서 수입하던 막대한 양의 질 좋은 강을 '국산화'하고 산업혁명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성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어 보였다. 여전히 철강 생산에 엄청난 노동력과, 덤으로 엄청난 석탄 연료를 갈아넣으면서도 대량생산은 요원했다.


   그러던 1855년, 획기적인, 그야말로 인류 역사를 바꾼 발명이 등장한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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