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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 Nov 08. 2022

톱니바퀴에 관한 잡다한 고찰_2

   톱니바퀴에 관한 잡다한 고찰_1에서 이어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라쇼몽>(羅生門)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의 같은 제목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고 작가의 또 다른 단편 <덤불 속>의 내용을 편집해 넣은 영화다.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한국에서는 많이 읽힌 작가도 아니고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선후배 작가들에 비해 인지도도 떨어지지만, 일본에서는 다이쇼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일본 문학의 최고봉 중 한명으로, 그의 이름을 기리는 아쿠타가와 상(賞)이 제정되어 있을 정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35세의 나이로 수면제를 대량 삼키고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단편 <톱니바퀴>, 일본어 제목 하구루마(齒車)다. 그의 자살 원인은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였는데, 소설 <톱니바퀴>를 읽어보면 마치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보내는 구원 신호를 보는듯하다. 안소니 홉킨스에게 아카데미 최고령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2021년 영화 <더 파더>가 치매 환자의 눈으로 본 일상을 더할 나위 없는 디테일로 묘사했다면 1927년의 소설 <톱니바퀴>에는 신경쇠약자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 가슴 섬뜩할만큼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열차를 타고 어느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했다가 피로연이 열린 호텔에서 하루 묵으며 소설을 쓰고 집에 돌아오는데, 그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나'는 만나는 사람들, 주고받은 대화,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 이미지를 강박적으로 연결시킨다. 레인코트를 입은 사내를 연이어 목격하고, 호텔 사환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all right이란 단어가 머리에 박히고, 때마침 조카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매형의 죽음을 알고, 그래서 all right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매형이 레인코트를 입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러면서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환상을 본다.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반투명의 톱니바퀴였다. 나는 이런 경험을 전에도 몇 번인가 한 적이 있었다. 톱니바퀴는 차츰 그 수를 늘여서, 내 시야를 절반이나 가려버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잠시 후에는 사라져버리는 대신 이번에는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안과의사는 이 착각(?) 때문에 몇 번이나 나에게 담배를 줄일 것을 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톱니바퀴는 내가 담배를 피울 줄 몰랐던 20년 전에도 보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톱니바퀴> 中)


   소설의 화자 '나'는 작가 자신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신경쇠약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세상에 알린 글이 <톱니바퀴>라 한다. 작가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그의 불안한 신경은 흔히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정사와 문학적 고뇌에 시달리기 훨씬 전, 심지어 작가가 되기 전부터 이미 내면에 잉태되어 있었다. 담배를 피울 줄 몰랐던 시절, 즉 세상에 찌들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의 영혼은 톱니바퀴처럼 일상의 아귀를 딱딱 맞추는 강박 사고와 싸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모 의학정보 사이트에 의하면 강박사고는 "원치 않는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 심상 또는 충동이 지속적으로 거듭하여 파고드는 현상"이라 한다. 소설 <톱니바퀴>를 읽으면서 강박사고에 대해 생각하고, 그러다 한 영화가 떠올랐으니, 론 하워드 감독의 2001년 영화 <뷰티풀 마인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게임이론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수학자 존 내시(John Forbes Nash, 1928~2015)를 모델로 하고 있다. 2001년만 해도 빼어난 미남자였던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존 내시는 여러 모로 사차원 천재였다. 젊은 나이에 수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그는 MIT 교수로 재직중에 첩보 기관을 위해 일하게 된다. 2차 대전 때 앨런 튜링이 영국 정보부에서 했던 일처럼 내시도 소련의 암호 해독에 매달리는데, 한창 때에 그만 조현병이 발발해버린다. 천재 수학자의 마음의 병은, 영화에서 묘사한대로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이미지에서 누구도 보지 못할 패턴을 찾아내기를 반복하면서부터였다. 잡지에서 암호로 된 메시지를 보고 자동차 번호판에서도 음모를 읽어내고 소련 스파이의 감시를 알아채고, 그러면서 강박사고로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중, 존 내시가 잡지에서 읽어내는 소련 암호 메시지

   수학이란 게 본질적으로 무질서에서 패턴을 찾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다가 미쳐버리는 것은 영화적 표현일 뿐,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음악에 몰입한다 해서 일상의 소음이 음악으로 들리는 병이 생기지는 않지 않은가? 천재는 정신병에 취약하다는 고정관념은 그야말로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고, 내시는 원래 정신병 소인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 강박사고가 병으로 발전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존 내시도 병을 얻기 전 톱니바퀴의 환상을 보았을까?

   연관짓기 같은 강박적 사고를 스스로 인지하고 떨치려 애쓰다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쿠타가와처럼 신경쇠약이 된다. 강박적 사고가 불합리하지도 않고 스트레스는커녕 더 몰입하는 증세가 존 내시같은 조현병이다. 가령 우리 사회에는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 속 얼굴에서 비슷한 인상의 북한 고위층의 얼굴을 찾아낸다거나 사재를 털어가며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엄밀히 말해 정신질환이다. 그들의 눈 앞에도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을까? 혹은 머리에서 톱니바퀴가 하나 빠져 있을까?


   기계 매거진의 글이므로 잡설은 여기까지. 본격 기어 이야기를 해야겠다.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끼리는 기어 또는 치차라고 하지 톱니바퀴라 하면 이상한 시선을 받는다. 일본 기계쟁이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하구루마'라고 잘도 말한다. 하(は)는 이빨, 구루마는 수레인데 수레바퀴를 뜻하기도 한다. 즉, 하구루마는 우리 말로 톱니바퀴다. '하구루마'를 오히려 기어라는 영단어보다 더 많이 쓰는것 같다. 기계 용어를 한국 엔지니어들은 번역어가 있어도 가능한 한 발음도 안되는 원어로 말하려 하고 일본 친구들은 일본어가 있으면 원어 일본어 편한대로 쓴다. 우리는 휠(wheel), 그들은 호이루 또는 샤링(車輪), 우리는 베어링(bearing), 그들은 베아링구 또는 지쿠우케(軸受け)다. 중국은 원어를 써서는 아얘 대화가 되지 않는다. 영어로 된 기계 용어를 음차하지 않고 죄다 중국어를 만들어 쓰기 때문에 기어, 휠, 베어링이라고 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한다. 중국 글자의 취약점 때문인데, 외국어를 음차해서 중국 글자로 표기하면 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음이 아니고 뜻으로 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벤저스를 복수자연맹, 록밴드 퀸을 황후악단이라고 눈물겹게 옮겨 쓸수밖에 없다. 그룹 너바나(Nirvana, 니르바나)는 열반(涅槃)악대라지 아마?

복수자연맹 종국지전 (Avengers; Endgame) 포스터


   간혹 외래어의 중국 글자 표기를 뜻으로 해석하여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90년대 즈음에 환빠들을 중심으로 유포되었던 청나라 왕조 신라 기원설이 한 예(例)다. 무려 박사학위를 가졌고 책도 여러권 쓴 역사학자가 가세하면서 좀 더 그럴듯하게 되어 사람들을 낚았는데,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와 그 자손들의 성이 애신각라(愛新覺羅)인 것은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자는 뜻이라는 학설(?)이다. 소설 <톱니바퀴>를 방불케 하는 연상작용으로 누르하치의 먼 조상이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라고도 했다. 당연히 근거 없는 뇌피셜이다. 愛新覺羅는 청 왕가의 성 '아이신기오로'를 한자로 쓰면서 한족의 발음으로 가장 유사한 글자를 쓴 표기일 뿐이다.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데 新과 羅 두 글자를 띄울 이유도 없고 애시당초 고유 문자가 있던 만주족은 이름을 한자로 쓰지도 않았다. 이러한 팩트의 반격을 받고도 국뽕 그득한 그 학설은 꽤 오랫동안 맹위를 떨쳤다.


   또 잡설이다.


   기어의 치형(tooth profile)은 전편에서 살펴본 회화적 이미지에서는 직선으로 표현하지만 실제 기계에서 쓰이는 기어 이빨 형상은 정교한 곡선이다. 가장 이상적인 치형은 원이 구를 때 원주상의 한 점의 궤적인 사이클로이드(cycloid) 곡선으로, 사이클로이드 치형은 접촉하는 이빨과 이빨이 서로 구르듯이 맞물려 이론상 미끄러짐(slip)이 0이다. 그러나 가공상의 난점 때문에 차선책으로 인벌류트(involute) 곡선을 많이 채택하는데 이는 원주에 감긴 실을 풀어낼 때 실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이다. 기어 치형의 원리와 왜 그러한 곡선을 써야 하는지 설명하자면 수십 페이지를 수식과 도형으로 채워야 하므로 브런치에서는 그저 기하학적 고민이 응축된 결과로 탄생한 아름다운 곡선이라고만 해두겠다.

기어 사이클로이드 치형. 이높이 대략 중앙을 지나는 피치원의 외측과 내측 각각으로 작은 원이 굴러가는 궤적의 일부를 딴 치형이다.

   그러나 설계자가 일일이 치형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치형은 이빨 크기별로 완전히 표준화가 되어 있어서 설계자는 치형의 윤곽은 고사하고 이빨 자체도 그리지 않는다. 기어의 전체적인 크기, 즉 바깥지름과 피치원(이높이의 대략 중앙을 지나는 원), 이뿌리원을 도시하고 치형곡선 종류와 모듈(module)이라 하는 표준화된 이빨 크기 및 잇수만 적어주면 제작자가 그 숫자만 보고 가공을 하는 것이다. 사실 원지름도 필요 없다. 치형 종류와 모듈, 잇수만 주어지면 피치원지름, 바깥지름, 이두께, 이의 간격(pitch) 모두 계산으로 다 나와버린다. 기어 이빨에 대한 기본적인 용어는 아래 그림을 참조하시라. 모듈이란 이빨의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로 미터계 표준 기어에서는 1, 3, 6 같은 정수(整數)고 밀리미터 단위를 갖는다. 표준 치형에서 이끝높이(그림에서 '어덴덤'으로 표시)가 모듈과 숫자가 같고 인접한 이빨 사이의 거리 즉 원주피치는 모듈의 2배다.

기어 이빨의 기본 용어

   치형과 이빨 각 요소의 관계식은 국제 표준이므로 제원만 일관성 있게 주어지면 한국에서 만든 기어와 과테말라에서 깎은 기어가 맞물려서 이론상 문제 없이 돌아간다. 호환성 개념이 가장 빛나는 기계요소가 바로 기어, 톱니바퀴다.


   기계 요소의 호환성(compatiblity) 문제가 본격 대두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기다. 그러나 이미 수천년 전부터 인류는 호환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구현하려 시도해 왔다.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수레의 폭, 지금 식으로 말해 윤거(輪距)를 6척으로 통일시켰다. 도로 중앙부 수레바퀴가 지나는 부위가 한결같으니 그 부분의 땅이 단단히 다져져 포장도로 같은 효과를 냈다. 이 규격에서 벗어나는 수레는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고대 로마는 표준화와 호환성의 최선진국이었다. 고대 지중해 세계 최강의 전투군단인 로마군은 병사에 호환성을 부여했다. 제정 시대에 상비군 체제가 되기 전에는 필요에 따라 시민군을 모병했고 지휘관도 수시로 바뀌었지만 로마군은 모든걸 규격화하여 언제 어떻게 군대를 조직해도 즉각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 병장기의 규격을 통일하고 검술은 물론 밀집대형에서 칼 뽑는 법까지 똑같았다. 상황별로 하루 이동 거리도 정확히 매뉴얼에 따랐고 숙영과 점령지에서의 약탈까지도 매뉴얼에 따라 질서 정연했다.

로마 군인. 병장기는 보직별로 규격화되었다. 칼(글라디우스)은 오른쪽에 차고 오른손으로 뽑는게 독특한데, 왼손의 방패에 간섭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천년 전에 이미 호환성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18세기에 근대적 기계 혁명이 일어난 사실에 비해 그러나 기계 부품의 규격화가 제대로 정착된 시기는 놀랍게도 지금부터 100년쯤 전인 20세기 초엽에 이르러서다. 1901년에 영국 공업협회(British Standard Institute; BSI)를 필두로 1917년 독일 공업협회(Deutsches Institut für Normung; DIN), 1918년 미국 공업협회(American National Standard Institute; ANSI)가 속속 결성되다가 국제 표준화 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가 출범한 것이 2차대전 후인 1947년이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부터 2백년간 기계를 어떻게 만들었단 말인가?


   기어와 나사와 베어링 규격이 제멋대로면 기계 공업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시대 선배들도 알고 있었다. 호환성 확보를 위한 표준화는 처음에 즉각, 그리고 꽤 오랫동안 기업별, 기계 분야별로 이루어졌다. 적어도 영국의 철도는 그들의 규격에 따라 대량 생산된 부품을 썼으며 미국의 선박은 또한 그들만의 규격을 마련하여 부품을 만들어 썼다. 기계 산업의 규모가 오늘날에 비하면 훨씬 작아서 그렇게 해도 문제는 없었다.

   공업 규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일원화 되어갔는데, 어떤 권위가 등장하면 그 권위를 중심으로 그 바닥에서 규격이 통합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보일러와 발전설비의 경우 미시시피강의 증기선 폭발을 계기로 1880년 결성된 미국 기계공학 협회(Americal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ing; ASME)는 현재까지도 전세계 해당 분야 공업규격에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다.


   공업 규격을 좌우하는 권위는 시장 지배력이 있는 기업에게도 부여된다. 내가 꼬마 엔지니어였던 1990년 전후에 신기한 현상을 하나 목격했다. 2000년 즈음에 부도나서 사라진 크레인 전문기업 B사의 영향력을 실감한 일인데, 그 회사의 도면번호가 업계에서 표준으로 통하고 있었다. 한국공업규격(KS)도 커버하지 못하는, 일일이 설계 제작해야 하는 부품들을 대기업도 아닌 직원수 200명 남짓의 중견기업이 표준화 해버린 것이다. B사의 인위적 작용 없이도 시장이 그 기업의 권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던 기억이다. 사라진지 오래지만 B사의 이름은 아직 남아있긴 하다. 명성을 추앙하여 그 이름을 쓰려는 회사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기어의 경우 전세계 공업규격을 지배하는 표준은 미국 기어 제작자 협회(American Gear Manufacturers Association; AGMA)에서 나온다. 1916년에 설립된 이 협회는 현재 450여개 회원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매년 학회와 기어 엑스포를 개최하여 기어에 관한 최신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AGMA의 기술 정보는 회원사가 아니라도 개방되어 있어서 나도 AGMA 규격을 붙잡고 압연 감속기 기어 강도 해석에 몇날몇일 몰두했었다. 지금이야 전산 해석 툴(tool)이 하도 발달하여 일일이 계산할 필요 없지만.

미국 기어 제작자 협회(AGMA) 로고


   치형을 그릴 일도 없고 외형 치수와 이빨 제원만 주면 제작자가 다 해준다고 설계자가 날로 먹는건 아니다. 기계 요소 중에 기어만큼 어려운 부품도 없다. 감속기 하나 선정하는데 여러날 머리만 쥐어뜯는 일이 흔하다. 감속기(speed reducer)는 모터의 속도를 기계에 맞게 증감하면서 기계에 동력을 전달하는 장치로서 대개 맞물리는 여러 쌍의 기어로 이루어진 기어계(gear train)다. 자동차에 반드시 들어가는 변속기(speed transmission)가 감속기의 일종이다. 한국 승용차의 90%를 차지하는 자동변속기는 유체 커플링이지만 과거 수동변속기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에는 '기어를 바꾸다'가 '변속을 하다'와 동의어였다.


   감속기로 대표되는 기어 트레인이 어려운 이유는 서로 상반되는 여러 조건을 하나의 장치로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어 강도에 초점을 맞추면 모듈이 큰 기어를 써야 한다. 모듈이 크면 기어 사이즈가 커진다. 기어 사이즈가 커지면 중량과 관성이 증가한다. 관성이 증가하면 가속력을 얻기 위해 모터 마력을 더 키워야 한다. 관성 증가는 또 모터 속도 제어에 치명적이다. 감속기가 자리하는 공간 여유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감속비도 맞추고 강도도 만족하고 사이즈도 많이 증가시키지 않으려면 감속기 효율을 높혀야 한다. 이것은 정밀 기어를 쓰면 된다. 그런데 한국 기술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어 정밀도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 기술로 가능한 범위라 해도 정밀도를 한단계 올릴 때마다 기어 제작비는 몇배씩 폭증한다. 기어 강도 한가지만 생각하려 해도 사용 조건에 따라 굽힘강도와 면압강도, 어느쪽이 우선이냐가 또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어느 하나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모든 조건을 골고루 만족시킬 기어 스펙을 결정하기 위해 녹슨 머리로 계산을 반복하고 수십장의 도면을 그린 끝에 결론을 얻는 것이 기어 설계다. 고마력 대형 감속기의 경우 기계와 모터, 감속기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장기간 숙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 설계 단계에서 감속기 메이커를 오라 가라 하면서 기술자료도 교환해야 하는데 감속기(대개는 중소기업) 업체는 이를 비포어 서비스(before service)로 받아들이고 적극 협조하는게 보통이다. 문제는 그러다가 스펙이 확정되어 막상 발주해야 할 때는 공정거래법상 그 업체에 특전을 줄 수도 없고 업체 자료를 발주 사양서에 포함시킬 수도 없다. 도맷금의 법 적용에 '유도리'가 절실하지만 완고한 문과 출신들을 설득하기는 불가능하다.

조립중인 대형 감속기




   톱니바퀴에 관한 잡다한 글을 끝마치면서 노래 한곡 듣기로 하자. 일본의 국민밴드 미스터칠드런(Mr. Children)의 2003년 곡 쿠루미(くるみ)다. 아래 뮤직비디오는 나온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볼때마다 가슴이 촉촉해진다.


   1분 15초 정도에 나오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今 動き出そうとしている

   (지금 움직이려 하고 있는)

  歯車のひとつにならなくてはなぁ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希望の数だけ失望は増える

   (희망의 수만큼 실망이 늘어가지)

  それでも明日に胸は震える

   (그래도 내일에 마음이 설레)

   「どんな事が起こるんだろう?」

   ("어떤 일이 일어날까?")

   想像してみるんだよ

   (상상해 보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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