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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 Nov 21. 2022

 나사(screw)에 관한 잡다한 고찰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주변이 논 뿐인 허허벌판에 있었다. 큰길까지 도로가 나 있기는 했으나 전라도 말로 해찰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논 사이 농로로 다녔다. 등교는 바빠서 멀쩡한 길로 다녔지만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농로와 논두렁이기 일쑤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할 필요 없다. 논바닥에 어찌 그리 재미거리가 끊이지 않았을까? 풀 한포기도 매일 처음 보는 것이었고 지렁이 한마리에도 걸음을 멈추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가방에 메뚜기도 잡아넣었다. 메뚜기는 집에 가서 아궁이 장작불에 그슬려 먹으면 별미였다. 논두렁에 심은 자운영 뿌리 밑을 파면 질 좋은 찰흙이 나왔고 그걸로 오후 시간은 완벽히 채워졌다. 큰 도시 아이들은 미술시간 찰흙도 문방구에서 산다고 들었다.

   그러나 논길에서 가장 시선을 붙들어 맨 것은 도랑에서 논으로 물 퍼올리는 일이었다. 발로 구르는 물레방아, 내 글 톱니바퀴에 관한 잡다한 고찰_1에서 보는것 같은 물자세(무자위)가 흔한 때였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으므로 물자세 작업이 퍽 재미있어 보였고 농부 아저씨가 화를 낼 때까지 그 옆에서 지켜봤다. 물자세보다 재미있던 건 커다란 원통 모양으로 생긴 양수기였다. 그것을 경운기에 싣고 와 한쪽 끝을 도랑에 박고 반대쪽의 바퀴를 경운기 엔진에 벨트로 연결한다. 잠깐의 지루함을 참다 보면 양수기가 돌아가면서 도랑의 물이 콸콸 논으로 쏟아져 올라왔고 날은 금세 저물었다.

이런 양수기였다.

   이런 방식의 양수기가 지금은 농사에 거의 쓰이지 않는듯 하다. 위 사진도 겨우 찾아냈다. 미래에 기계 엔지니어가 될 소질이 있었는지 나는 그 원통형 양수기의 내부구조를 보리라 마음먹고 도랑물에 들어가기도, 그것이 실린 경운기를 쫓아가기도 했다. 어떤 경위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것은 원통 안에서 커다란 나사가 돌며 물을 퍼올리는 스크루식 양수기였다.

나선식 양수기의 내부. 사실은 스크루 컨베이어 사진이다.


   나선식 양수기는 동력을 이용한 인류 최초의 펌프(pump)다. 이 양수기의 발명자는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of Syracuse, BCE 287? ~ BCE 212?)로 알려져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 몸을 풍덩 담갔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알았다(Eureka)'고 외치며 알몸으로 거리를 뛰어다닌 분이다. 적분 개념을 최초로 적용하여 원주율(π)을 계산한 수학자였고 천문학자이자 여러가지 발명품을 남긴 공학자였다.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는 톱니바퀴식 주행거리계가 그의 작품이다. 2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편에 선 죄로 시라쿠사가 로마의 침략을 받을 때는 각종 신무기를 만들어 조국을 지키기도 했다. 투석기를 제작했고 거대한 지렛대 끝에 매단 갈고리로 로마군의 배를 뒤집었다 하며 거울 수십개를 이용하여 로마 군함에 불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의하자면 로마가 2년이 넘도록 약소국 시라쿠사를 함락하지 못한 것이 거기 이르키메데스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 할머니라면 그렇게 쓰실만하다.


   고대의 기록이나 시오노 나나미가 쓴 아르키메데스의 영웅담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서술도 있고 이론상 가능하기는 하나 로마군이 바보만 모아놓은 오합지졸이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있기 힘든 이야기도 있다. 연의물이라 생각하고 읽으면 될 것 같다.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


   나선식 양수기도 아르키메데스가 독창적으로 개발했느냐 하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아르키메데스의 양수기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의 물 퍼올리는 장치를 개량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고대 7대 불가사의는 아르키메데스와 거의 동시대인 기원전 2세기 무렵 그리스의 시인 안티파스로스가 처음으로 꼽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그 시대보다 몇백년에서 1천년 이상 오래 된 건축물들이다. 아르키메데스보다 최소 400년이나 앞선 기원전 7세기경, 구약성서에선 앗수르의 산헤립이라 하는, 앗시리아의 센나케리브 왕의 기록에도 나선식 양수기가 등장한다. 설형문자 해독 결과 청동으로 나선을 주조하여 정원에 물을 퍼올렸음을 의미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나선으로 액체를 이송하는 개념은 아르키메데스 훨씬 이전부터 고대 지중해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아르키메데스의 발명으로 굳어지게 된 것은 플리니우스(CE 24~74), 시칠리아의 디오도로스(생몰연대 미상) 같은 후대 작가들이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고대의 저술가들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때 오늘날처럼 실증주의에 딱히 연연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시칠리아의 디오도로스는 기원전 5세기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오스 1세 휘하에 대규모 학자 그룹이 있었으며 이 '싱크탱크'에서 투석기가 발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투석기가 언제부터 전쟁터에 등장했는지 안다면 이는 어림 반푼도 없는 이야기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영웅의 이야기에 출처불명의 온갖 이야기를 갖다붙이거나 기원을 알 수 없는 신문물의 창작자로 그 인물을 내세우는 일이 고대에는 거리낌 없었다. 그것이 글쓰기도 쉽고 대중에게 보다 잘 어필하기도 했다. 현대의 작가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특히나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위인전은 툭하면 원전보다 부풀렸다.


   서사가 있는 인물을 실체보다 멋있게 채색하는 일은 근현대의 기록자들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Augusta Ada King, Coutess of Lovelace, 1815~1852)에 바쳐지는 열광이 그 한 예(例)다. 인류 최초의 프로그래머라는 찬사의 이면에는 그녀의 수학 실력이 그저 그런 정도고 수학문제 풀이 알고리즘을 그녀가 창시한 것도 아니며 그나마도 차분기관 연구비 조달에 골몰하던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1791~1871)가 일일이 지도했다는 팩트가 존재한다. 배비지로서는 사교계의 스타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후학들이 그녀를 수학여신이자 원조 프로그래머로 추앙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엄청난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미남자로 유명했던 낭만파 시인 바이런 남작(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이었고 그녀 또한 당대의 미인인데다 그 시대에 희귀했던 '수학하는 여성', 거기다 한창 아름다울 나이(37세)에 세상을 떴으니 여신이 되기에 완벽하다. 아버지는 문과, 딸은 이과. 아버지는 영혼의 프로그래머, 딸은 기계의 시인. 라임도 딱딱 맞아서 사실이 어땠는지 따지고 드는게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


   나사(screw)는 원통 주위에 나사산(thread) 판 기계 요소다. 원통 외측에 나사산을 가공한 것이 숫나사, 내측에 가공한 나사가 암나사다. 영어로도 male/female thread다. 암수 동물의 생식기에서 착상한 이름인듯 하며, 참 짓궂은 이름붙이기라 하겠다. 숫나사에 돌리기 좋게 대가리를 붙인게 볼트(bolt), 볼트와 결합되는 암나사를 너트(nut)라 하는데 드라이버로 돌리는 작은 나사류는 볼트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나사라고 부르는데 어디까지가 볼트고 어디서부터가 나사인지 명확한 정의는 없다.


   나사의 용도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체결, 둘째 전동. 체결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 체결을 말하고 전동이란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변환시켜 물체를 이송하거나 직선방향 힘을 발생시키는 작용이다. 그 외 배관용 나사가 있는데 체결용이면서 밀봉(sealing)용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양수기는 나사의 전동 기능을 활용한 장치라 하겠다. 이는 수천년동안 원형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스크루 컨베이어란 이름으로 산업 현장에서 액체나 분말 이송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인류는 나사를 개발한 후 매우 오랫동안 거의 전동용으로만 사용했다. 스크루 컨베이어 말고도 나사의 추력(推力)을 이용한 프레스가 고대로부터 제작되어 내려왔다. 내 글 대장간에서 압연기까지_2에 보여드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도 나사 프레스를 응용한 기계다.

   나사의 체결 기능은, 나사가 처음 발명된 시기를 생각하면 기이할 정도로 뒤늦게, 중세 이후에나 쓰이기 시작했다. 화승총의 공이를 나사로 조립했고 기사들의 판금 갑옷에도 나사 이음이 들어갔다. 그러나 나사를 사용한 부품 체결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자주 분해해야 하는 부품이 아니면 리벳(rivet)으로 이음하는게 보통이었다. 나사의 압도적인 체결 능력을 활용한 시기가 그토록 늦고 선뜻 쓰지 못했던 이유는 제작하기가 지독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나사산 가공 자체가 옛날 기술로는 어려웠으니 한술 더 떠서 숫나사와 암나사의 나사산이 일치하도록 가공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볼트와 너트를 조립해 본 분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나사의 지름이나 나사산의 크기와 나사산의 간격(pitch)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르면 조립이 되지 않는다. 억지로 힘을 주어 조이면 나사산이 닳아 상하거나 심하면 나사가 부러진다. 나사의 규격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에 나사가 얼마나 애물단지였을지, 그렇다고 안쓸수도 없고 참 난감했을 것이다.

판금 투구. 면갑은 자주 분해할 필요가 있어 나사로 조립했다.


   산업별로, 국가별로 어느정도 표준화가 이루어진 산업혁명 이후에도 중구난방인 나사 규격을 통일시키기는 요원했다. 누구나 자기네 규격을 고집했고 설사 합의가 이루어진다 해도 기존에 제작되었던 기계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유럽 전선에 투입된 미군 군용기의 정비를 영국 기술자들에게 맡겼으나 제대로 손도 대지 못했다고 한다. 나사 규격이 달라서였다. 영국도 당시에는 미국처럼 인치 체계인 것까지는 같았으나 나사에 대해서는 영국이 직경x피치라는 정통파 규격인데 반해 미국나사는 1인치당 나사산 수로 표시하는 독특한 규격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로도 조립이 되지 않는게 나사다. 기계 부품의 규격 통일을 위한 국제 표준화 기구가 결성된 때가 1947년이니, 기나긴 기계의 역사를 생각하면 한참 늦은 시기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나간 때가 1980년대 전반,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가 되기는 80년대 말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현장에선 여러 나사 규격이 충돌했다. 새로 만드는 기계의 체결용 나사는 당연히 KS 규격에 따라 미터나사를 썼으나 현장에서 돌아가는 기계는 미국에서 수입된 것도 있고 출신지를 알 수 없는 골동품도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돌렸다. 인치계라도 미국나사 영국나사가 다르고 나사산 각도가 60도인것, 55도인것이 있어서 기계를 하는 사람은 각국 나사 규격을 통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문화충돌도 일어났다. 인치계 나사의 피치는 1/32인치(약 0.8mm) 단위인데 이걸 나이드신 분들은 일본어로 통했다. 5/32인치는 고부(五部)나사, 4/32(=1/8)인치는 욘부(四部) 나사라고 하는 식이다. 아무리 나사 규격을 잘 안다고 해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걸 어찌 알겠는가. 낡은 규격을 낡은 방법으로 부르는 분들이 젊은이들 공고 나와서 그것도 모른다고 한탄하셨다.


   지금은 나사 규격을 KS 미터나사 외에는 거의 알아둘 필요가 없다. 인치계 나사는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일상에서 인치 파운드를 쓰는 미국 메이커들도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미터법을 쓰는 현실에 굴복한 것 같다. 오늘날 미국에서 수입하는 설비는 미터법으로 설계 제작되어 있다. 십년쯤 전에 미국 인디애나 주의 한 제철소에 압연 레벨러를 납품한 적 있는데 치수는 모두 밀리미터, 부품 100%가 ISO 국제규격이었다. KS가 ISO와 똑같으니 제작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체결 용도의 나사가 어느정도 표준화 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사를 기피하던 분야가 건축이다. 1855년 헨리 베서머(Sir Henry Bessemer, 1813~1898)가 제강법을 개발하여 철강이 대량 공급되고 철골을 사용한 초고층 건물이 속속 지어지기 시작한 때가 1880년대부터였으니 충분히 나사를 쓸 수 있던 시기였다. 규격이 제멋대로라 해도 건축용으로 주문하면 수만개의 볼트 너트를 공급받을 수 있었는데도 오랜 시일이 흐르도록, 20세기 중반에 이르도록 철골 건축은 대개 리벳으로 부재를 이음했다. 리벳은 21세기인 아직까지도 철골 이음에 일부나마 사용되고 있으니 나사에 무슨 원한이 있는걸까? 리벳은 한쪽에 대가리가 가공된 핀을 구멍에 끼우고 망치로 때려 압착시키는 부품이다. 시공이 쉽지 않은 이 리벳을 오랫동안 고집해 온 이유는, 건축 전공이 아니어서 사정은 알기 어려우나 나사의 고질적 문제점인 풀림 때문이 아닌가 한다.

리벳 이음한 철골

  

   건축이나 교량의 철골은 용접으로 이음하지 않는다. 부재와 부재의 접합은 리벳이나 볼트, 즉 핀(pin) 방식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떤 힘이 철골(steel structure) 전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든 각각의 부재(member)는 단순 인장, 단순 압축 하중을 받는다. 그러나 부재와 부재를 용접으로 이음하면 그 부재는 인장, 압축과 함께 휨이나 비틀림 같은, 보다 작은 힘으로 큰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하중을 받게 된다. 용접열에 의한 변형도 용접이 금기시되는 이유다. 철골은 쌓아 올리면서 피아노선을 내려 수평 수직을 잡아나가야 하는데 용접 변형은 예측이 되지 않고 교정할 방법도 없다.

   철골은 거대 구조물이다. 리벳은 일정 직경이 넘어가면 불에 달구어 두드려야 하는데 리벳을 쌓아놓고 달구는 화로를 철골 여기저기에 설치하기도 쉽지 않고 철골이 올라감에 따라 옮기기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열로에서 리벳공에게 리벳을 "던졌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리벳을 집게로 잡고 휙 잡아 던지면 리벳공이 바가지 같은 걸로 리벳을 받아 즉시 구멍에 끼우고 리벳해머로 두들겼다. 오래 전 리벳공에게 들은 얘기로 20층 높이 정도는 던져 올리고 바가지로 받기를 껌을 씹듯 했다고 한다. 빗나가면 아래에 있는 작업자 머리에 뜨거운 총알이 떨어지므로 한번도 실수가 없어야 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가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지금은 철골 주(主)부재는 TC 볼트, 보강부재는 육각볼트 너트로 조립한다. TC 볼트는 Tension Control의 약자인데 장력 조절 볼트라고 번역하지 않고 그냥 TC 볼트라 부른다. 혹은 TS 볼트라고도 한다. 토크시어(Torque Shear) 볼트인데 여기서 토크는 회전력, 볼트의 경우 볼트머리를 잡고 조이는 힘이다. 이 TC 볼트는 토크를 측정하지 않아도 일정한 토크조일 수 있게 되어있다.

TC 볼트의 체결 방법

   TC 볼트는 머리가 둥글어 공구로 잡을 수 없는 대신 볼트 끝부분에 핀테일(pintail)이 붙어 있다. 전용 공구로 핀테일과 너트를 동시에 잡고 너트를 조인다. 핀테일이 비틀림 응력에 의해 파단될 때까지 조이면 규정된 토크에 도달한 것이다. 혹은 달리 말하면 조이는 힘이 규정된 토크에 도달하면 핀테일이 부러진다. 이렇게 하면 동일 규격의 볼트는 모두 똑같은 힘으로 조일 수 있게 된다. 규정된 토크로 조였는지 토크렌치 들고 검사할 필요도 없고 제대로 조이지 않아 나사가 풀리는 사고도 방지된다.


   볼트 머리와 너트의 형상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육각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외형이 둥그런 볼트 너트를 잡고 돌릴 방법은 없으므로 반드시 각형(角形)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사각이 되면 공구를 90도 간격 딱 네 방향에서만 잡을 수 있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8각 이상이 되면 스패너에 조금만 힘을 줘도 볼트 대가리의 각진 모서리가 뭉개질 것이다. 그 타협점이며 제작하기도 용이한 형상이 6각이다. 볼트에 따라서는 머리에 L자형 렌치를 꽂아 돌릴 수 있는 홈이 나 있기도 한데 그  또한 육각이다. 육각이 구멍이 되면 머리를 작게 할 수 있고 공구를 힘있게 돌려도 외경 육각 머리보다 뭉개지지 않아(공구가 뭉개졌으면 뭉개졌지) 일반 육각머리 볼트보다 좀더 강도 높은 나사 머리에 채택되고 있다. DIY 가구나 자전거, 자동차에서 많이 보셨을 것이다.

정식 명칭은 육각소켓헤드 볼트. 보통 렌치볼트라고 부른다.

   

   가전제품이나 가구, 집안 여기저기 없는 곳이 없는 작은 나사류나 흔히 피스라고 부르는 나사못을 분해 조립하는 기구는 드라이버다. 아무리 기계와 담을 쌓은 집이라도 드라이버 한개씩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사람에게 드라이버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누가 운전을 한다는 소리인가 궁금해 할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스크루드라이버(screwdriver)라고 해야 한다.


   현장에서 정비를 할 때 나사가 풀리지 않으면 불쾌지수 높은 여름날 안전모가 심심치 않게 박살이 난다. 공구를 억지로 돌리면 육각 대가리 모서리가 뭉개져 더는 돌릴 수 없게 되거나 재수없으면 볼트가 박힌 채 부러지기도 한다. 잘 풀리지 않은 볼트는 성질 부리기보다 WD40을 뿌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힘을 지긋이 주지 말고 한번 세게 스냅을 주어 풀면 대개는 풀린다. 육각이 뭉개지기 때문에 오픈 스패너는 금물이고 반드시 박스형 스패너를 쓰도록 하자. 보통 메가네(メガネ)라고 하는 그 스패너다.

한쪽 오픈엔드, 다른쪽 박스엔드인 스패너. 양쪽 다 박스엔드인 스패너는 옵셋렌치라 불린다.

   그래도 육각이 뭉개지면 쌍욕 하지 말고 바이스 프라이어를 쓰면 된다. 볼트 머리에 쇠파이프를 용접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들어간 구멍이 있으면 나올 구멍도 있다는 격언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스패너나 육각 L렌치로 분해하는 볼트는 완전히 고착된 볼트도 끈기를 갖고 풀면 풀린다. 그러나 스크루드라이버로 돌려야 하는 작은 나사가 풀리지 않으면서 드라이버 홈마저 뭉개지면 대책이 마땅치 않다. 절대 드라이버 홈이 뭉개질 정도로는 힘을 주지 말아야 한다. 드라이버를 홈에 끼우고 망치로 드라이버 머리를 여러번 때리면 나사가 조금 헐거워질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안되고 볼트 대가리까지 부러져 달아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백탭을 쓴다.

빠꾸탭이라 하는 백탭(back tap). 볼트 리무버(bolt remover)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탭이란 본래 구멍에 암나사를 가공하는 공구다. 백탭은 볼트 머리에 드릴로 구멍을 내고 나사산을 파들어 가는데 왼나사라서 백탭을 조이면 박힌 볼트는 풀리는 쪽으로 돈다.




   끝으로, 스크루드라이버라는 칵테일을 만들어 보자.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로 만드는 아주 간단한 칵테일인데 그런 공돌이스러운 이름이 붙은 이유는 노동자들이 젓가락 대신 드라이버로 저어 만든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믿기 힘든 이야기다. 나부터도 노가다 할 때는 지친 목구멍에 독주를 붓기 바빴지 칵테일 따위 만들 생각이 날 리가 없다.


   글라스에 보드카와 오렌지주스를 1:2 ~ 1:4 비율로 부어 채운다. 얼음 몇알 넣어도 좋다.

   드라이버 말고 찻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젓는다.

   오렌지 슬라이스를 가니쉬로 올리면 더욱 좋다.

   

   보드카라는 술이 원체 무미 무취인데다 오렌지 주스까지 섞으니 알콜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는 여자를 어떻게 하는 칵테일로 애용되었다 하는데, 부질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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