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미국이 반도체를 전략물자화하며 전세계적 갑질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 스스로도 굳이 좋은 말로 둘러대지 않는다. 중국을 미국 발 아래에 두기 위해서다. 2020년부터 시작된 전지구적 반도체 파동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을 제재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자기들이 일을 꼬이게 해놓고 공급 부족을 이유로 주권국가의 사기업(私企業)에 영업비밀까지 요구하는 것을 보면 지금이 21세기란 게 무색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를 먹기도 하나보다.
반도체가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현대 기계 문명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품질, 전투기의 성능 같은 단위 기술을 넘어 한 사회의 총체적 생산성이 반도체에 좌우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1940년대에 오늘날의 반도체보다 더한 전략물자가 있었으니, 바로 베어링(bearing)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과 추축국 양측은 베어링 수급에 사활을 걸었다. 그 뿐 아니라 베어링은 상대측 군수물자 보급 방해 전략에 핵심 무기가 되었는데 이 때 꽃놀이를 벌인 나라가 스웨덴이다. 2차대전 때 스웨덴은 중립국을 선언하고도 나치 독일과 연합국 양측과 적당히 교역하며 실리를 취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상당한 군사적 실력을 갖춘 무장 중립인데다 무엇보다 최고급 베어링 생산국이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웨덴은 베어링 선진국으로, 스웨덴에 본사를 둔 SKF(Svenska Kullagerfabriken)는 아직까지도 세계 최강의 베어링 메이커다.
당시 영국은 목숨을 걸고 민간 상선과 어선으로 위장한 경비정을 동원하여 독일의 해상 방어망을 뚫고 스웨덴에서 베어링을 밀수했다. 반면에 독일은 아주 편하게 스웨덴제 베어링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자국 수요량의 58%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었다. (스웨덴의 중립성은 당시에도 그 뒤로도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때는 자국의 철도를 이용하게 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은 스웨덴에 압력을 넣어 1943년 베어링의 대 독일 수출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했고 1944년에는 수출 금지 협상까지 벌인다. 그러나 1944년 9월 연합국의 마켓 가든 작전이 실패하자 스웨덴은 합의를 깨고 독일 수출 물량을 증가시킨다. 피꺼솟한 미국은 예테보리에 있는 SKF 공장에 '길 잃은 폭격기가 실수로' 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고 그때서야 대 독일 베어링 수출은 중단되었다.
SKF의 창업자 스벤 빙크스트(Sven Wingquist, 1876~1953). 자신이 개발한 자동조심 롤러베어링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보다 전인 1943년 8월에 미국과 영국은 독일의 베어링 생산 시설을 파괴하기로 마음먹었다. 미 공군은 독일 바이에른 주로 깊숙히 날아가 슈바인푸르트(Schweinfurt)시를 폭격했는데, 그곳에 독일 최대의 베어링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공업도시와는 다르게 슈바인푸르트는 대공 방어망이 철저히 구축되어 있어서 폭격기 60여대가 격추되는 참사를 겪었고 공장들은 3주만에 정상 가동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더 많은 전투기와 폭격기를 투입, 2차 공습을 시도하여 1차보다 더 큰 피해를 입혔으나(이른바 '검은 목요일' 공습이다.) 1차 공습때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제공권을 당해내지 못하고 전투기와 폭격기 77대, 그리고 조종사와 승무원 655명을 잃고 패퇴했다. 이 때도 독일의 베어링 생산 능력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한다.
막대한 물량과 인명을 소모하면서까지 연합국은 독일의 베어링 생산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군수물자 완제품 공장보다 베어링 생산 시설이 타겟이 된 것은 한 곳만 타격해도 수많은 군수 공장을 스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베어링 없이 만들 수 있는 기계나 군사 장비는 없다.
이 글을 쓰기 전, 베어링에 대해 써보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영화 <벤허>다.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2016년 영화 <벤허>는 분명 잘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는 영화다. 스토리 전개가 개구리 뜀 뛰듯 맥락이 끊기고 캐릭터들의 상호관계가 개연성을 잃고 피상적으로 떠돈다. 배역들의 분장이 너무나 현대적이고, 사실 연기를 제대로 하는 배우가 없었다. 화면이 지나치게 선명하고 화려한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문의 대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보면 뭔가 꾀죄죄하고 손톱에 때도 끼었고 조명도 칙칙하고, 그래서 '옛날' 느낌이 확 나는데 비해 2016년작 <벤허>는 감독 스스로가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완전히 망한 영화냐 하면 그건 아니고 비주얼에 나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해전(海戰) 씬과 전차경주 장면은 수준급이다. 감독 이름이 듣보잡인것 같지만 사실 <벤허> 전에도 영화 여러편 만들었고 제임스 매커보이와 안젤리나 졸리를 데리고 만든 영화 <원티드>의 액션은 실로 대단했다.
영화 <벤허>(2016) 한장면
2016년작 <벤허>가 정당하게 먹어야 할 욕보다 훨씬 많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이유는 다른데 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 찰턴 헤스턴 주연의 1959년작 <벤허>가 있기 때문이다. 티무르 베크맘스토브 감독은 자기 영화가 결코 리메이크가 아니며 루 월러스(1827~1905)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뭘 어떻게 만들어도 제목이 <벤허>인 이상 1959년 영화와 비교해서 보지 않을 수 없다. 영화평론가 박평식은 평점 1.5를 주면서 '저열하고 천박한 리메이크'라고 했으며 2.0을 준 이동진은 '영혼도 없고 아이디어도 없는 리메이크'라고 했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박평식이 좀 심했다고 본다.
대중음악에서도 리메이크하면 안된다는 노래가 있다. 주로 신승훈, 김건모,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같은 가수들의 노래다. 원곡가수의 아우라가 너무 강하면 리메이크의 퀄리티와는 관계 없이 무조건 원곡과 비교되고 대중이 들으면 들을수록 고집스럽게 원곡을 소환하게 된다. 1959년작 <벤허>가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를 넘어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걸작이며, 개봉 당시의 관람객이 거의 하늘나라로 가신 오늘날까지도 영화예술의 금자탑으로 우뚝 선 대작이다. (나는 중학생 때 재재재개봉한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보았다.)
1959년작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
어떤 <벤허>든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전차경주 씬이다. 1959년작의 경우 전차경주 장면에 약 20분이 할애되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꼬박 1년동안 실제 경기장 세트를 지었고 훈련된 말 72마리와 엑스트라 1만여명을 동원하여 약 5주간 촬영하였다 한다. 영화에서 이 전차경주는 아무 규칙도 없이 어떤 것도 허용되는 게임으로 묘사되는데, 빌런 메살라는 전차 바퀴 허브(hub)에 드릴(drill)을 장착하여 다른 전차 바퀴의 살대(spoke)를 절단하는 방법으로 경쟁 전차들을(기수들 또한) 골로 보낸다.
바퀴 주요부분 명칭
말이 끄는 전차(chariot)는 고대의 중요한 전략무기였다.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실전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전차는 말 2~4마리를 숙달된 마부 한명이 컨트롤하고 한명 이상의 전투원이 탑승했다. 메살라의 전차처럼 바퀴 또는 전차 본체에 톱니바퀴나 낫을 장착하여 보병의 하반신을 공략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차가 전쟁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자명하다. 전차 1대로 단번에 보병 십여명을 짓밟을만한 충격력에 더하여 전투원이 높은 시야에서 다양한 무기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보다 단점이 더 컸다. 말 여러 마리가 발을 맞추어 끄는 통에 급정지, 급발진, 선회 등 유연한 움직임이 불가능했고 무엇보다 주행 중에 말 한마리라도(또는 마부가) 무력화되면 모든 말과 전투원이 운명을 같이 하기 때문이었다. 말 한마리에 기수 한명으로 조합된 기병 전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차는 자연스럽게 퇴출되었다. 영화 <벤허>의 배경인 기원 후 1세기라면 이미 전차는 오락거리가 된지 오래된 때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영화를 나처럼 감상하면 안된다. '쟁이' 티를 내고 싶은가? AMC 드라마 <베터콜사울>(Better call saul) 시즌 5에서 협잡으로 돈 버는 일에 현타가 온 변호사 지미 맥길이 '과거로 갈 수 있다면' 하고 간절히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지미가 마약제조범 월터 화이트에게 과거로 간다면 어떻게 살건지 자못 진지하게 묻는데 고등학교 화학교사 출신인 월터는 이렇게 잘라 말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건 안돼. 열역학 2법칙 때문이야."
이공계 직업을 가졌을수록 시(詩)도 읽고 고급진 음악도 듣고, 하여튼 문과적 감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
전차 경주를 보는 내 눈은 전차 바퀴의 허브를 따라 움직였다. 나는 현대 첨단 기계라 해도 회전체 베어링의 윤활이 제대로 안되면 기계가 빠르게 망가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 바퀴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나, 그게 궁금해진 것이다. 급기야 구글에서 'ancient chariot axle'을 쳐 보고 몇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은 그 중 한장이다.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출토된 전차라 한다.
사람 두명이 올라서면 꽉 찰것같은 바구니 모양의 차체 하부에 길다란 축(axle)을 잡아맸고 그 축에 스포크 여섯개짜리 바퀴를 끼웠고 바퀴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축 끝에 쐐기를 박았다. 차축과 바퀴 허브는 단단한 목재로 만들었다. 허브 외곽을 불에 그을려 경도(hardness)를 더한 이유는 쐐기와의 마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축과 허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이 나무와 나무의 접촉이다.
전차는 상당한 고속으로 주행하는데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의 땅바닥이 고를 리가 없으니 차축과 바퀴 허브에 가해지는 충격도 클 것인데 과연 바퀴나 축이 남아날까?
기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의 산업플랜트 정비 10건 중 3~4건은 베어링 교환이다. 내가 한 베어링 전문서적에서 읽고 뇌리에 박힌 문구는 "베어링은 기계보다 오래 산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비팀은 허구헌 날 베어링을 교환한다. 베어링 손상 원인으로 가장 큰 것은 윤활 불량인데, 그것이 직접 원인은 아니라 해도 윤활이 부족하면 접촉면에서 쇳가루가 발생하고 마찰로 인한 열이 발생한다. 이물질과 발열은 베어링을 빠르게 파괴하는 요인이다. 한번 윤활에 문제가 생겨 건조마찰(dry friction)이 발생한 베어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음을 내고 소음까지 발생할 정도면 박살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므로 베어링은 고사하고 회전 부품이 직접 접촉한다면, 그 접촉면도 나무처럼 마찰계수가 높은 재질이라면, 목재의 특성상 금속처럼 매끄럽게 가공하지도 못했을게 분명하다면, 어떤 상황일지 안보고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접촉면에 기름으로 떡칠을 해도 나무가 갈려 가루가 되고 열이 발생할텐데, 단언컨대 고대 전차부대에는 전투병보다 정비병이 많았을 것이고 축과 휠은 가장 중요한 보급품이었을 것이다.
축 외경과 허브 내경을 금속으로 둘러씌울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 모르지만, 아마 전차가 처음 등장한지 최소 10세기는 뒤인 <벤허> 극중 시대에는 그러한 금속 라이닝(lining)이 도입되었을 것이다. 수레 바퀴에 베어링이 적용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중국에서 나왔다.
주나라의 수레 부품 유물. 허브용(左)과 축용(右) 사진은 BCE 5세기로 추정되는 주(周)나라 시대 유물이다. 당시에 불렀던 명칭은 모르겠으나 허브 안쪽에 삽입하는 튜브 형태도 있고 축에 끼우는 부품도 있다. 청동제인 이것은 완벽한 베어링이다. 보통 베어링이라 하면 내부에 볼(ball)이나 롤러(roller)가 장착된 구름 베어링(rolling bearing)을 떠올릴텐데, 금속끼리 면접촉으로 회전부를 지지하는 부품도 엄연히 베어링으로, 후술하겠지만 이를 미끄럼 베어링(sliding bearing)이라 한다. 정밀 가공 기술이 없고 윤활유가 마르지 않게 공급해주는 기술도 없었으므로 이 베어링의 수명도 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축이나 바퀴를 통째로 교환하지 않고 베어링만 바꾸면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혁신이다.
우리가 아는, 구름체로 볼이 내장된 베어링은 그로부터 1천년이 지나 역사에 등장하는데, 기계의 역사를 훑다 보면 자주 만나는 이름이 다시 한번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다. 이 분, 도대체 못하는게 무엇이었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구상한 베어링의 스케치와 이를 현대에 재현한 모형 이 스케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헬리콥터 구상을 이루는 부품 도면이다. 거대한 스크루를 회전시켜 공기를 끌어 당기며 올라가는 다 빈치 헬리콥터의 원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부품도까지 남긴 걸로 봐서는 충분히 하늘을 날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투자자만 있었으면 제작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다 빈치 베어링은 오늘날의 분류로 스러스트 볼 베어링(thrust ball bearing)이다. 그리고 지금 생산되는 동종의 베어링과 원리상 차이가 없다. 다만 구조적으로 다 빈치 베어링의 볼이 따로 놀아서 자칫하면 빠져 돌아다닐 수 있는데 반해 현대의 베어링은 볼들이 하나의 틀에 감싸여져 있다. 이렇게 구름체의 위치를 유지시켜 주는 틀을 케이지(cage)라 한다. 케이지로 볼을 감쌀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뜻밖의 이름으로, 위대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다.
Thrust ball bearing 실물 파단. 상 하 레이스(race) 사이에 구름체인 볼(ball)이 케이지(cage)에 감싸여져 있다. 갈릴레이가 베어링 개량을 제안했다는 것은 그 시대에 볼 베어링이 상당한 범위로 쓰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볼 베어링을 발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레오나르도의 스케치로부터 100년 남짓 지나 있을 즈음 베어링은 기계의 핵심 부품 중 하나였다. 갈릴레이는 천문학자면서 망원경을 스스로 제작할 정도로 발명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베어링의 발전에도 한몫 할 수 있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베어링이 엄청난 진화를 한 것은 물론이다. 베어링 최초 특허는 1794년 영국의 필립 본(Philip Vaughn)에게 돌아갔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보다 좀 후진 디자인이다. 현대적 레이디얼 볼 베어링의 발명자는 기계 엔지니어가 아니라 자전거 수리공인 쥴 수리레이(Jules Suriray)로, 1869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자전거 경주에 내보낼 자전거를 제작하면서 베어링을 개발하여 특허까지 취득했다. 미국의 헨리 팀켄(Henry Timken)은 1898년 테이퍼 롤러 베어링(taper roller bearing)을 발명하고 회사를 차렸는데 팀켄 베어링은 아직까지 대형 기계장치용으로 대체 불가다. 마지막 스타는 이 글 첫번째 사진으로 보여드린 SKF의 설립자 스벤 빙크스트로, 자동조심 롤러 베어링의 발명자이기도 하고 베어링의 표준을 정립한 인물로 역사에 남은 분이다.
베어링의 종류는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우선 하중의 방향에 따른 분류로, 축을 받치는 형식을 레이디얼 베어링(radial bearing)이라 하고 수직, 즉 축방향으로 작용하는 하중을 받는 베어링을 스러스트 베어링(thrust bearing)이라 한다. 구름체가 볼이면 볼 베어링(ball bearing), 롤러면 롤러 베어링(roller bearing)이다. 이 글 대문 사진의 가운데와 오른쪽이 롤러 베어링이다. 구름체가 없는 베어링이 슬라이딩 베어링이라고 했는데 아래 사진과 같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베어링 형식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고 수백 종에 이르는 베어링 형식이 다들 부르는 이름이 있다. 그 모두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다만 가장 대표적인 분류법이 위의 하중 방향, 구름체 유무, 구름체 형상 등 세가지인 것이다.
Sliding bearing
요즘은 기술계에서 일본 도서를 별로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학교와 사회 초년기 공부할 때만 해도 이바닥에는 일본 기술서적의 번역서가 많았다. 서구 기술 선진국(주로 미국)의 책과 일본 책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점이 있는데, 미국 서적은 첫장부터 수식이 나오는데 반해 일본 서적은 해당 부품이나 기술의 분류(categorization)를 상세하게 해놓고 시작한다. 감속기(speed reducer) 책이라면 미국은 곧장 마력과 토오크 얘기부터 시작하고 일본은 감속기의 정의와 종류, 기어의 종류, 윤활법의 종류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 식이다. 물론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딱 떨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베어링의 경우 적합한 모델을 선정하는데 '짬밥'이 필요하다. 수많은 베어링 형식이 있고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특성이 제각각이라 어떤 기계 개소에 적합한 베어링은 딱 한종류인 경우가 많다. 롤러 베어링을 쓸 곳에 크기가 같은 볼 베어링를 대신해서 쓰면 사달이 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바로 알려면 상당한 경험이 쌓여야 하는데, 경험 쌓을 기간과 시행착오를 줄이는데는 개괄을 중시하는 일본식 기술교육이 더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 쉽게 짬밥을 쌓으려면 도면을 많이 보아야 한다. 글을 읽을수록 글쓰기 근육이 발달하듯이 남들이 제작한 기계를 많이 볼수록 내 기술도 올라간다.
구름 베어링 중에 대표적인 깊은홈 볼 베어링(deep groove ball bearing) 제작 공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내륜과 외륜 사이에 볼을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몹시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단열 깊은홈 볼 베어링 내륜과 외륜, 볼의 재질은 모두 베어링강(bearing steel)이라는 고강도 합금이다. 볼의 이탈을 방지하고 간격을 유지시켜 주는 케이지는 연강판의 판금 또는 플라스틱으로 제작한다. 먼저 내륜과 외륜, 볼을 따로 제작하는데, 볼의 경우 베어링강 선재(wire) 또는 봉(bar)을 일정한 길이로 토막내고 프레스로 찍어 대략 구형(球形)을 만든 후 연마(grinding)하여 정확한 볼을 제작한다. 연마는 수많은 볼을 연속으로 숫돌 사이로 통과시키는 방법인데, 크게 두번의 연마 공정을 거친다. 중간에 경화 열처리(hardening)을 반드시 해야 되기 때문이다.
볼 제작의 마지막 공정은 래핑(lapping)이다. 볼들을 아주 고운 연마제(abrasive)와 섞고 마주보는 두장의 강판으로 볼을 굴려주면 볼의 외경 치수는 거의 변화 없이 표면만 거울처럼 광택이 난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볼을 내륜과 외륜 사이에 조립하는데 내가 제작 공정을 보기 전까지는 이해를 하지 못했던 작업이다. 사실은 아주 간단해서 내륜을 치우치게 놓고 넓은 쪽에 볼을 삽입한 다음 볼 간격을 조정하면서 내륜과 외륜이 동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볼 삽입 방법 마지막으로 양쪽에서 케이지를 압착해 주면 조립은 완성되고 여기에 윤활제를 충진하여 판매처로 출하한다. 모든 공정은 자동화된 기계로 이루어져 사람이 할 일이 별로 없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종류도 많고 사이즈도 무지하게 많고 각 사이즈마다 공차도 몇개의 등급이 있어서 경우의 수를 모두 곱하면 수만가지의 베어링이 있는 셈이다. 다품종 대량생산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때문에 잘 쓰이지 않는 대형 사이즈는 주문제작을 해야 하는데, 제작 자체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아도 몇달치 생산 계획이 밀려 있어 그 틈 사이로 주문을 넣으려면 갑을이 뒤바뀌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기계 납기보다 베어링 구매 기간이 더 긴 사례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대형 베어링이 필요한 기계는 얼추 기본설계로 베어링 스펙을 정하고 주문부터 넣은 다음 상세설계를 진행하는데, 설계 과정에서 베어링 스펙에 문제가 있다 해도 별수 없다. 무조건 발주한 베어링에 맞춰 설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납기를 파격적으로 제시하는 대리점도 있다. 그러나 통상의 제작 기간보다 턱없이 짧은 납기는 조심해야 한다. 업자에 따라서는 재생 베어링을 납품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내륜과 외륜만 제작하고 폐 베어링에서 구름체를 빼내어 조립하면 감쪽같다!
베어링이 2차대전 때 무기가 되었다고 했지만 진짜 무기로 쓰는 일도 가끔 있는것 같다. 강구(鋼球), 즉 베어링의 볼을 새총으로 쏘는 짓이다.
새총 말이 새총이지 이렇게 부정확한 총으로 잡을 수 있는 새는 없을 것이다. 가끔 신문에서 살상무기라 보도하지만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위력도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베어링 볼을 보면 영락없는 총알이다. 사람에게 쏘는 행위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상해의 의도가 분명하다.
차라리 돌을 던지는게 낫다. 베어링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