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by 송현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신정은 요일이 같다. 그 해가 2009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금요일이어서 28~31일 나흘간만 연차를 내면 1월 3일까지 열흘의 연말 휴가가 가능했다.

그 연말 크리스마스, 나와 아내와 초딩 6학년 딸, 세 식구가 향한 곳은 미국 LA였다. 미국 오리건 주에 동생이 살고 있어서 그들 가족 네 명과 함께 미 서부를 여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동생 차는 도요타 8인승 밴, 일곱 명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동생과 제수, 두 조카는 LA 공항에서 형님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이틀 전에 오리건을 출발했다.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2박,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2박, 유타 주 브라이스 캐니언을 들러 애리조나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길에 1박 등의 순으로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자동차 여행의 장점을 누리느라 여행사 버스 여행으로는 생각도 못할 인디언캠프 비슷한 곳에서 밥도 먹고, 서부 개척시대 모습 그대로 보존된 마을에서 당나귀 똥도 밟았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도중 하룻밤 묵기로 한 곳은 유타주 남단 Kanab이라는 작은 도시였다. 발음이 카납이었나 커냅이었나. 위치가 미 서부 양대 캐니언 중간에 있어 볼 것 하나도 없는 곳에 관광객은 많은 도시란다. 하여튼, 그 날 눈이 왔다. LA 해변에서 서핑 하는 광경을 보고 사막을 가로질러 왔던 터라 오늘은 설경인가, 한가하게 생각했는데 Kanab에 가까워질수록 눈은 점점 폭설이 되어갔다. 한 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천천히, 거의 세 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어른들은 초조해지고 아이들만 지칠 줄 모르고 떠들었다. Kanab 외곽의 예약된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고도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기만 하고 모든 걸 집어치우고 식당부터 찾았다. 다행히 여관에서 걸어 갈만한 곳에 불이 켜진 레스토랑이 있었고 식당 안에는 손님도 제법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비프 스테이크였다. 시골 동네 음식점이라 음식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메뉴판 공부할 상황도 아니었다. 공부를 해본들 내가 알겠는가. 형 이거 하죠, 응 그러자. 대충 그렇게, 크기는 18온스짜리인가? 하여간 큰 걸로, 스테이크 다섯 개와 나눠먹을 접시를 시켰다. 여주인이 굽기 묻는 정도 영어는 나도 알아들었다. 웰던. 동생이 제지했다. 너무 질기니 미디움 웰던 정도 하시라고. 미국 생활을 해본 그들 가족은 미디움 세 개, 우리 가족은 권고대로 미디움 웰던 두 개를 먹기로 했다.

맥주 마시며 식전 빵 떼어 먹으며 떠들다 밤은 깊어갔고, 기다림 끝에 우리 앞에 스테이크가 날아왔다. 두툼했고, 정말 컸다. 미국인들은 대식가다.

바깥의 어둠이 제대로 짙어진 시간이었다. 스테이크를 한입 썰어 입에 넣었다. 미각에 불이 켜졌다. 온 몸의 신경이 잠시 숨을 참는다. 오, 천상의 맛이란 게 이런 것인가. 겉은 탄력 있고 속은 촉촉했다. 적당히 질기고 적당히 부드러웠다. 고깃덩이에 이를 박아 넣으니 향긋한 육즙이 꿀꺽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간다. 불이 켜진 건 내 미각만이 아니었다. 일곱 가족 모두 저마다 탄성을 지르고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다. 또 한입 떼어 이번에는 천천히 씹으며 맛이 주는 행복감을 느껴보았다. 그 다음에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마구 썰어 허겁지겁 먹는 거지.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오감을 총동원한다. 직접 맛을 느끼는 미각 뿐 아니라 시각, 후각, 턱 근육의 긴장도, 목 넘김 감각이 모두 모여 음식 맛을 형성한다. 음식에 직접 관여하는 신체 감각만이 아니다. 장소에 따른 분위기와 식사를 같이 하는 사람, 먹기 전후의 감정 상태까지도 음식 맛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음식만을 먹는 게 아니고 음식과 함께 생각을 먹고 관계를 먹으며 감정 또한 먹는다. 사랑하는 연인은 음식과 사랑을 같이 먹는다. 별것 아닌 음식도 신들의 만찬일 것이다. 실의에 빠진 자라면 산해진미도 젓가락 씹는 맛일 것이다. 음식 맛의 절반은 보통 음식을 먹기 전에 결정된다.

그 밤, 눈이 한 뼘이나 쌓였고 미국 시골 소도시답게 낮은 지붕 밑 불빛이 드문드문했다. 장시간 여행에 배는 한없이 고팠으나 형제의 가족들은 왁자지껄, 그저 즐겁기만 했다. 스테이크 자체도 훌륭했지만 이미 입맛이 최고조에 올라 있을 때 식탁에 올라온 음식이니 천상의 맛이 아니 날 수 없었다.

Kanab의 비프 스테이크를 더욱 잊지 못할 음식으로 만들어 준 사건은 다 먹어갈 때쯤 일어났다. 주인아줌마가 우리 테이블에 맥주 몇 병을 내려놓았다. 시키지 않았는데? 아줌마는 두어 테이블 옆, 혼자 식사하고 있는 흰 수염의 남자를 가리켰다. 저 신사분이 사신답니다. 동생이 가서 무슨 연유인지 물어보았고, 잠시 후에 돌아와 전하는 말이 놀라왔다.

노신사는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분이었다. 학회 참석차 한국을 두 번 방문하기도 했다 한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왔고, 오늘 늦은 저녁을 먹으러 왔는데, 아이들을 동반한 한국인 가족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단다. 그래서 작은 기쁨이나마 좀 더 드리고 싶었다고.

그런 마음이 현실에도 있을 수 있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갚아야겠다, 순간 든 생각이다.

나가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Thank you so much.”

"My pleasure.”

밤이 깊었고 눈은 그쳐 있었다. 조용한 동네에서 스테이크 참 맛있게 먹었다.

이후, 여러 나라 여러 음식점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런던에서, 피렌체에서, 헬싱키에서 먹었다. 한국의 아웃백에서 먹었고 미국에 출장 가서는 제일 먼저 스테이크 하우스부터 찾았다.

내가 만들어본 적도 여러 번이다. 거의 항상 먹기도 전에 육즙이 흥건히 흘러나왔다. 조리법을 알고 왜 실패하는지도 안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고기 표면을 센 불로 한 번에 지져내야 하는데 그러면 기름이 튀어 가스렌지가 난장판이 된다. 나 같은 사람은 소심해서 스테이크를 굽지 못한다. 불을 약하게 하거나 기름을 적게 쓰거나 팬에 뚜껑을 덮게 된다. 즉, 알고도 망친다.

어디를 가서 먹든 내가 만들어 먹든 2009년 12월 미국 시골에서 먹은 스테이크 맛을 능가할 작품은 아직 없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아내에게도, 사소한 것 잘 잊어버리는 내 딸에게도 그것은 인생 스테이크로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혹 어디서 달인의 맛집을 찾는다 해도, 내가 용케 그럴듯한 스테이크를 완성한다 해도 그것은 마치 주재료 하나가 빠진 음식이나 같을 것이다. 더 맛있는 스테이크를 찾는 것은 헛수고다. 맛도 없는데 왜 자꾸 스테이크냐는 아내의 핀잔이 타당하다.


여담이지만, 내가 미국 노신사에게서 받은 마음을 돌려줄 기회가 몇 년 뒤에 왔다. 아내와 무한리필 집에서 고기를 먹고 나오려는 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 네 명이 눈에 들어왔다. 네 사람 다 인상이 선했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여느 남자 아이들과 달리 다들 조용조용, 쌍시옷은 한자도 없이, 담소하는 모습이 무척 단정했다. 우리 먹은 것 계산을 하고, 카드를 한 번 더 그었다. 그 아이들 고깃상에 맥주 몇 병 올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던 걸로 보아 아내 눈에도 예쁜 청년들이었을 게다.

내가 쏜 술에 그들이 행복해 할까? 그러고 보니 괜한 허세 아닌가? 좀 겸연쩍어져서 서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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