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영어 교육

프랑스도 영어 열풍이 한국 못지않게 뜨겁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영어 학원 광고판이나 영어 과외 전단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영어의 중요성을 알고 일찌감치 영어 교육을 시키는 학부모들도 꽤 있다. 2달의 여름 방학 기간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영국에 머무는 아이들도 있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부모가 아이들과 굳이 영어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영어를 구사하는 보모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모들에게는 영어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그랑제콜 같은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기에 중학생이 되기 전에 유명한 사립학교나 명문 공립학교가 많다는 16구로 이사를 고민하는 학부모들도 종종 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15구에 소재한 학교에 다니지만, 집은 16구에 있다. 학교 주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보면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다. 반면에 16구에 있는 집 근처 놀이터에 가면 대부분의 프랑스 아이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1년에 수천만 원이 드는 국제 학교에 다니는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었다가 프랑스어가 서툰 걸 보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외국인이다 보니 처음부터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다 영어를 더 못 알아듣는 우리 아이들을 이내 안타까워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소통하려 애썼다. 그 친구들을 몇 번 겪고 나니 첫째 아이에게서 영어를 꼭 배워야겠단 다짐이 절로 나왔다.


사실 첫째 아이가 만 2살이 된 무렵 무지한 초보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또래에 비해 언어 능력이 뛰어난 첫째 아이에게 영어를 이른 시기에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구사하도록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아이가 한국어로 의사 표현을 잘하기 시작했을 때쯤 일상의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는 잠잠히 영어를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아이는 느닷없이 화를 내며 영어를 하지 말라고 영어가 싫다며 소리쳤다. 아뿔싸 싶어 그 즉시 영어로 말하는 걸 그만두었지만, 그 후로 아이는 영어에 영자면 나와도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시했다. 아무리 모국어라지만 하루하루 단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발음까지 완벽한 아이를 보며 영어도 곧잘 익히겠다 싶은 욕심이 앞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제야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엄마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고 있었는데 엄마는 느닷없이 이상한 말로 아이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이의 사기를 무참히 꺾어버렸다. 다행히 얼마 안 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비영리단체를 알게 됐고, 균형 잡힌 시각의 몇몇 육아서를 공부하며 내가 얼마나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 욕망이 앞서서 아이에게 학습시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대형 사립 유치원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그 일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기업에서 해외영업과 해외 마케팅을 담당했지만, 경력 단절이 된 후 기존의 커리어 경험을 살려 일자리를 구하기란 영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영유아 시기에 형성된 엄마와의 애착과 유대가 아이들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기에 절대 부모님이나 외부 사람한테 아이들을 맡기지 말자고 짝지와 뜻을 같이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일이 바빠 아이들을 돌봐줄 형편이 안 됐다.) 


그럼에도 사회에 나가 긴장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내가 가진 기능을 사용해서 인정받는 시간은 나에게 활력을 주기 때문에 육아와 함께 일은 꼭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만 가능한 양질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 당시에는 유치원 일자리였다. 영어가 일상화된 환경이 아닌 곳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노출되는 영어 학습의 폐해를 알고 있기에 나의 신념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영어 교육 커리큘럼이 어차피 존재한다면, 학부모들의 요구로 어떠한 방식이든 아이들이 무조건 영어에 노출돼야 한다면, 내 아이에게 했던 거처럼 일방적이고 무식한 방법이 아니면 괜찮지 않을까 타협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려운 일도 아닌데 40분에 5만 원이라는 페이 조건에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영어가 어렵게 배워야 하는 지겨운 공부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의 한 형태로 그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될 수 있게끔 내가 노력한다면 외려 조기 영어 교육의 병폐를 막을 수 있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열심히 설득하고 난 후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어 동요나 영어 게임을 열심히 찾고, 만들고, 연구해서 희극인처럼 원맨쇼를 해가며 나도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놀았다. 내가 담당한 아이들이 내 아들과 동갑이었기에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다 보니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사실 난 아직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고,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영어를 하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여행을 다녀도 불편함이 덜 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줄 뿐이다. 


영어가 싫다던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됐다며 여러 학부모로부터는 감사 인사를, 원장과 이사장으로부터는 인정받았던 순간에는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지 않는 나라에서 모국어가 서툰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과하고 무분별하게 영어를 암기하게 하고 학습시키는 건 아이들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아직도 믿는다. 


프랑스 공교육 시스템 자체가 워낙 탄탄하고 수준이 높은지라 대부분의 학부모는 현재 아이들이 다니는 15구에 위치한 학교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아직 아이들이 1학년CP밖에 안 돼 그럴 수 있겠지만, 아직은 영어 교육에 극성인 학부모들은 소수에 불과한 거 같았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대략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의 영어 시간이 있다. 그것도 전적으로 담임 선생님의 재량에 맡겨지니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배우는 수업 같았다. 주로 팝송이나 영화 음악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한다. 아이가 한 번은 "엄마 이 노래 알아?" 하며 맛깔나게 'Stand by me'란 곡을 불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영어 시간에만 배웠음에도 제법 그럴싸하게 모든 가사를 외워서 불렀다. 전주에 나오는 악기 소리까지 따라 하며 고개를 흔들고 리듬과 그루브를 타며 노래를 하였다. 들리는 대로 발음하며 불러서 완벽하진 않지만 누가 들어도 아이가 부르는 노래가 'Stand by me'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영어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가사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고, 알고 나니 감정을 이입해서 더 찰지게 불렀다.


최근에는 "엄마 이 노래 알아? 잘 들어봐. 이거 영어야." 하면서 부른 노래가 정글북 삽입곡인 'Bear necessities'였다. 이번에는 학교에서도 정글북을 틈틈이 영화로 보여주며 영어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언어유희와 라임이 잘 녹아져 운율이 살아있는 재미있는 노래라서 그런지 아이는 틈만 나면 학교에서 배운 영어 노래를 흥얼거렸고, 그때마다 온 가족이 전염이라도 된 듯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이처럼 프랑스 공립 초등학교에서도 1학년서부터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다행히 읽고, 쓰고, 외우는 방식의 수업이 아니라 듣고, 부르고, 따라 하고, 즐기는 수업이라 안심이 된다.

비록 첫째 아이는 집 근처 놀이터에 갈 때마다 자신도 엄마처럼 프랑스어보다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도전을 매번 받지만, 사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익히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물론 10살 미만 아이들은 뇌가 스펀지라 언어 영역에 있어 성인보다 쉽게 여러 언어를 혼동 없이 한꺼번에 배우는 게 가능하다는 설도 있지만 다양한 언어를 많이 구사하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유아기 때부터 영어를 꼭 학습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모음을 완벽히 발음할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에 원어민 발음을 위해서라 하지만 발음은 또 그렇게 중요할까? 


언어의 주요 기능이 한 사람의 감정과 논리나 견해를 타인에게 표현하기 위함이고, 소통의 수단으로써 작용한다면 다양한 언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배우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훈련하는 게 언어 하나를 더 배우는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로 여러 언어를 익히는 게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도 앞서 언급한 생각하는 힘과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가 갖춰져 있을 때야 진정한 목적을 갖게 되는 것일 테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모국어만큼 선행 시 돼야 하는 언어는 없다. 그것에 자기 뿌리가 배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파리에 와서도 아이들에게 여전히 한국 그림책을 읽어주고 틈틈이 한글을 가르친다.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범위에서 더디지만 천천히 가고 있다.


하지만 모국어든 외국어든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 가장 어려운 건 아이들을 사람답게 교육하는 일이다. 두 개 국어든 삼 개 국어든 어떠한 지식이든 간에 인간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쓰레기일 뿐이니....

품위와 인간성이 부족한 나 같은 엄마에게 그래서 육아는 참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현장학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