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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현장학습 그랑 팔레

프랑스 초등학교 현장학습 

그랑 팔레 Grand Palais 전시회



두 달의 여름 바캉스와 학년말을 앞두고 아이들 학교에는 각종 행사가 몰려있다. 더구나 느닷없이 찾아온 폭염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6월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 두고 온 트렌치코트가 그리울 정도로 쌀쌀하더니 6월 넷째 주에 들어서자, 한낮 35도를 뛰어넘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프랑스는 건물의 미관을 히스테릭할 정도로 중요시하는 나라다. 자기 집 발코니에 빨래를 너는 행위조차 금지돼 있다. 파리에서 꽃과 식물로 아름답게 치장된 발코니는 흔히 볼 수 있어도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옷가지가 나다분하게 휘날리는 광경의 발코니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흉측한 에어컨 실외기를 건물 외벽에 다닥다닥 설치하는 걸 금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파리지앵은 여름 바캉스만 되면 더위를 피해 도망가다시피 파리를 떠난다. 보통 파리의 여름은 8월이나 돼야 30도가 웃도는 더운 날씨가 시작된다는데 이상기온 때문인지 작년부터 유난히 더위가 일찍 시작되었다고 한다. 때 이른 불볕더위로 파리 곳곳의 공원은 24시간 개방되었고, 분수대와 수영장과 쇼핑몰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우리 가족도 찜질방 같은 집을 피해 트로카데로 분수대에서 무더위에 맞섰다. 


이 절정에 이른 더위 속에서 첫째 아이 반의 현장학습이 진행됐고, 나는 다른 두 명의 엄마와 함께 학부모 인솔자로 참여하였다. 이번 현장학습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점심시간 전까지 박물관에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선두로 걸었고 그 뒤로 학생들은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인도 안쪽으로 건물에 붙어서 앞 친구들과 좁은 간격을 유지한 채 걸었다. 횡단보도나 코너를 만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멈추며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렸다. 지하철을 탈 때도 6명씩 그룹을 지어 학부모들과 선생님이 각 그룹을 맡아 각기 다른 문으로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현장학습 목적지는 그랑 팔레다. 그랑 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지어졌으며 현재는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박람회와 전시회가 열리는 파리의 대형 전시장이자 박물관이다. 건너편에 위치한 프티 팔레와 함께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미로 유명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그랑 팔레에서 열리는 달에 대한 특별 전시회 ‘La Lune’ 광고를 지하철에서 보고는 샤갈의 그림이 꽤 인상적이라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바로 그 전시회로 현장학습을 간다고 하니 모든 현장학습에 엄마가 와주길 간절히 바라는 첫째 아이의 소원도 들어줄 겸 학부모 동반자로 사심 가득한 신청을 하였다. 

학교 근처 역에서 5 정거장만 가면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혼잡한 군중 속에서 학생 6명을 한눈에 지켜보느라 안 그래도 에어컨이 없는 지하철에서 진땀이 흘렀다. 자리를 잡은 아이들과 서서 가는 아이들이 흩어져 있었고 프랑스어도 부족하니 도착역에 아이들 모두를 안전하게 내려야 하는 임무가 더욱 막중하게 느껴졌다. 첫째 아이에게 계속 어디서 내려야 할 건지 알려주며 지하철 노선도와 학생 한 명 한 명을 곤두세운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으니 ‘츤데레’ 성격의 이 아이는 엄마의 긴장감이 전달됐는지 시크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얘네들도 잘 알아. 알아서들 다 잘 내릴 거야.”

그러고선 한 번 더 친구들을 향해  “얘들아, 다음 내린다, 내릴 준비 해!”라며 프랑스어로 우렁차게 말했다. 

첫째 아이의 예언대로 내가 맡은 학생들은 알아서 잘 내렸고 그때야 나는 안정을 찾았다. 다행히 박물관 안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학생들을 가이드해 줄 큐레이터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이 마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콩에서 3년을 살았는데 그 영향으로 딸은 동양 문화와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프랑스어 단어를 말했을 때 마고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며 아무래도 마고가 첫째 아이를 좋아하는 거 같다며 귓속말로 전해주었다. 

첫째 아이에게 이 얘기를 하니 “평소에 나한테 말도 걸지 않는데 무슨 그게 좋아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진짜 좋아하면 멀리서 바라볼 뿐이지 오히려 말 걸기 힘들다는 내 말에 첫째 아이는 수긍하면서도 애써 그 좋은 감정을 숨기며 별로 대수롭지 않은 척, 관심 없는 척했다. 사람을 무진장 좋아하지만 외로움이 많고 츤데레에 예민하기까지 한 아이가 거쳐 갈 사춘기는 과연 어떤 모양일지 가끔은 사서 걱정할 때가 있다. 


만 7살이 된 첫째 아이는 평소에 생각과 고민이 많고 툭툭거리며 엄마를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엄마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동생이 먼저 잠들기를 졸음과 사투하며 기다린다. 뭐를 제일 좋아하냐는 어떤 어른의 뜬금없는 질문에 “베어블레이드 팽이요”, “종이 접기요,”라고 답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엄마 품에 안기는 게 제일 좋아요.”라고 답하여 많은 사람 앞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다. 

그래서 사춘기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더 아프진 않을지 지레 겁먹을 때가 있다. 어쩜 그날을 위하여 지금 아이가 나를 원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함께 있어 주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사람 때문에 아이가 홀로 아픔을 견뎌야 할 그때 안달복달하며 집착하고 참견하는 엄마가 아닌 그저 버팀목이 돼주는 엄마로 아이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식 일만큼은 누가 확신하랴. 어쩌면 아이의 사춘기보다 나의 갱년기가 더 아프고 괴로울지도. 

‘La Lune’(달)은 1969년 7월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세 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무사히 달에 착륙하여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역사적인 날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다. 5개의 전시실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이고 상상적인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어느 시대에든, 어느 지역에든 달은 인간에게 영감을 주었다. 달에 관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인간은 달을 바라보며 무수히 많은 꿈을 꾸었고,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각 전시실에 들어설 때마다 전시회 기획 의도대로 시간 여행하며 달에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전시실에는 역사적인 달 착륙에 대한 기록에 관한 전시였다. 여러 사진과 문서 그리고 실제로 우주 비행사들이 사용한 생필품과 비디오카메라 등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실 중앙에는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이 새겨진 달 표면의 모형이 바닥에 전시돼 있었는데 학생들은 저마다 그 발자국 위에 자기 발을 넣어보며 좋아했다. 전시실 한편에는 달과 관련된 오래된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품 이것저것을 유심히 보았다. 


두 번째 전시실은 천체 망원경이 전시돼 있었고, 달의 움직임과 크기와 성질 등 과학적 정보가 담긴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망원경은 네덜란드의 한 과학자가 발명하였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 시대에 가장 정교한 망원경을 만든 사람이지 최초 개발자는 아니라는 팩트 체크도 하였다. 지동설을 증명한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는 이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였고 달을 관찰하며 표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이는 달의 표면이 완전하고 부드럽다고 믿었던 당시 믿음에 반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세 번째 전시실부터는 달과 관련된 여러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벌거벗은 사람이 등장하는 앤 루이 지로데 트리아종의 <엔디미온의 잠>이라는 신화를 다룬 작품을 보며 큐레이터로부터 그림에 등장하는 달빛에 관한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이렇게 예술 작품을 통해 어렸을 적부터 남자와 여자의 나체를 자연스럽게 그림의 내용과 함께 관찰할 수 있는 건 좋은 기회인 거 같다. 이런 작품에 워낙 익숙해서인지 이 그림 앞에서 쑥스러워하거나 야유를 보내거나 호들갑을 떠는 아이는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 나는 남자의 몸이 너무 궁금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거나 찾을 방법이 없었다. 투명 인간이 돼 남자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는 꿈에서 꼭 결정적일 때 깨고는 했다. 호기심을 꼭꼭 숨겨둔 채 살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포르노 영화를 통해 남자 성기를 처음 보았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더랬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그 기억이 곧 수치로 남아 성인이 돼서도 한동안은 나체 사진이나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것을 예술로 볼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죄책감과 수치심이 먼저 들었던 탓이다. 집중하며 나체 그림에 시선을 두는 프랑스 학생들을 부러운 눈길로 보며 어릴 때의 안타깝고 우스운 내 모습이 기억나 한동안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지로데의 마법 같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샤갈의 그림은 지하철 광고로 계속 봐와서인지 실제 그림을 보고선 생각보다 감동이 덜했다. 그래도 자신만의 뚜렷한 화풍을 통해 진실하고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천재 화가 샤갈의 작품을 만나 반가웠다. 블랙톤에 가까운 강렬한 블루 색채 때문에 심란하고 쓸쓸하고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푸른 배경에 놓여있는 초승달 물고기며, 그것을 간절히 바라보는 새며, 영혼 없는 듯한 여자의 얼굴에 애절히 입 맞추는 얼굴과 손만 있는 남자의 표정이 합쳐져 신비롭고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이 그림은 아무래도 샤갈의 아내이자 그의 영원한 사랑인 벨라가 죽은 후에 그린 작품 같다. 


네 번째 전시실에서는 러시아 출신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인 Leonid Tishkov(레오니드 티쉬 코프)의 Private Moon 사진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그는 달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작품을 창조하는 “고독한 예술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초현실적인 작품에서 드러나는 고독이 적막하고 외로운 게 아니라 오히려 초승달의 우아한 빛과 함께 몽환적이고 고상해 보였다. 

달을 인간화하여 표현한 고대 시대의 조각 작품들을 끝으로 한 시간의 박물관 일정을 마쳤다. 후반에는 아이들도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지 하품하며 종종 다른 곳을 쳐다보며 한눈을 팔기도 했다. 그래도 박물관 안에서 떠들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큐레이터의 가이드에 따라 작품을 진중하게 감상하는 학생들이 대견했다. 물론 박물관을 나오는 순간 다시 초등학교 1학년의 모습을 되찾아 서로 장난을 치고 몇몇은 뛰어다녀 무서운 담임선생님의 훈계를 듣기도 했지만. 

‘La Lune’ 특별 전시는 16세 미만은 1유로이고 성인은 15유로의 티켓 비용이 있다. 상당히 알찬 기획의 특별 전시라 멋진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도 구경할 겸 더위를 피해 한 번쯤 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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