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합창 공연

프랑스 초등학교 합창 공연



초등학교의 최고참 5학년CM2과 신출내기 1학년CP 학생들이 함께 영어로 합창하는 자리에 학부모들이 초대되었다. 평일 저녁에 진행된 이 행사는 아주 심플했다. 무대가 꾸며져 있지도 않았고 학생들은 의상도 따로 맞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평소 자기 모습 그대로 학부모들 앞에 섰다.

5학년 학생들이 먼저 두 곡을 영어로 부른 다음 1학년 동생들이 합세하여 두 곡을 함께 더 불렀다. 학년말을 앞두고 한 행사치고 참 단출했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 없어 보여 좋았다. 학생들은 지난 1년 동안 배운 영어 노래를 그저 수업에서 하듯 밝은 표정으로 편안하게 불렀다. 둘째 아이 학교의 전통춤 행사도 그러했듯이 첫째 아이의 영어 합창 또한 학생들의 일상적인 수업을 단지 우리가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거창한 것도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의 모습과 수업 내용을 볼 수 있었던 그 자체가 뿌듯하고 즐거웠다.


문득 한국 어린이집의 ‘재롱잔치’와 ‘발표회’가 떠올랐다.

작년 2월쯤 참여한 어린이집 졸업식 겸 발표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합창하고, 악기 연주하고, 율동하고, 춤췄다. 한겨울에도 배꼽이 보이는 민 소매티와 다채롭지만 꺼끌꺼끌한 원단의 코스튬을 공연 순서마다 바꿔 입으며 무대에 올랐다. 큰 무대에서 긴장감을 안고 그동안 친구들과 열심히 연습한 내용을 수많은 관중 앞에서 선보이는 경험이 분명 추억과 배움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부모인 우리 또한 아이들이 앙증맞은 복장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며 흥분감으로 고양되곤 한다.

하지만 유치원 영어 선생으로 일하며 아이들의 무대를 준비해 보고 공연 당일 무대 뒤편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런 종류의 행사가 달갑지 않다. 학부모와 원장의 평가에 자유롭지 못한 교사들은 완벽한 무대를 위해 공연을 기획하고 연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실수해도 괜찮아, 재밌게 하자라고 말하면서도 은연중에 그 스트레스와 초조함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수업에서 연습할 때야 걱정 없이 신나게 한다지만 공연 당일에는 대기실에서 계절에 안 맞는 답답한 옷을 입은 채로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자신의 순서를 지루하게 기다리며 달달한 간식에 의지한 채 스트레스를 겨우 견디곤 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과도하고 힘겨운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런 행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일 년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며 교사와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생활 일부를 엄마 아빠와 함께 공유하는 게 아니라 학부모들을 위해 재롱을 떠느라 교사들과 아이들이 소모되는 현상이 안타까웠다. (학부모 공개 수업 역시 이런 재롱잔치 못지않은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행사로 그치는 걸 본다.) 그에 비해 프랑스 공립 초등학교에서 앙코르곡까지 포함해 20분 남짓 진행한 영어 합창은 철저히 교사와 학생들 위주로 준비된 행사였다. 난 그 인위적이지 않은 소박함이 좋았다. 


첫째 아이는 영어 수업 때 배워 평소에 집에서도 늘 부르던 ‘Stand by me’와 ‘Bear necessities’를 친구들과 형, 누나들과 함께 힘차게 불렀다. 최고학년과 최저학년의 앙상블이 인상적이었던 짧고 굵은 영어합창이었다. 더운 날씨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고생하지 않는 행사라 좋았다. 

교장 선생님은 앞에 앉은 어른들에 가려 잘 안 보인다며 아쉬워하는 둘째 아이를 보자 아이의 손을 잡고 맨 앞으로 데려가 앉혔다. 덕분에 뒤편에 앉아 목을 빼며 힘겹게 봤던 우리와 다르게 둘째 아이는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형과 형의 친구들 멋진 모습을 VIP석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학년 초에 첫째 아이가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창 힘겨워했을 때 첫째 아이를 늘 곁에서 도와준 졸업생 치보를 이제 못 본다 생각하니 우리 부부는 매우 아쉬웠다. 치보는 인자한 성품만큼이나 훤칠하고 잘생긴 갈색 머리의 5학년 소년이다. 지난번 모금 후원 꺄나발 파티에서 치보는 금발의 긴 생머리가 아름다운 자신의 엄마를 우리에게 직접 소개해 주었다. 치보가 첫째 아이를 얼마나 귀여워하고 좋아하는지 첫째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우리 부부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치보 엄마는 말했다. 치보는 교장선생님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무로써 첫째 아이를 챙겨준 게 아니라 언어와 생김새가 다른 이방인 동생을 진심으로 친절히 대해주었다. 치보는 우리에게 천사이자 은인 같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 치보와 첫째 아이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는 멋진 합창을 선보인 아이들에게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치보와의 만남과 우정이 첫째 아이 마음속에 잘 간직됐으면 좋겠다. 그런 따뜻했던 기억들이 모이다 보면 치보처럼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는 형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현장학습 그랑 팔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