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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초등학교 현장학습

프랑스 초등학교 현장학습 

프레데릭 쇼팽 시립 음악원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에서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현장학습Sortie(학교 밖에서 진행하는 현장 체험 학습, 소풍과 같은 모든 종류의 행사를 일컬음)을 간다. 의미 있는 건축물을 보러 가거나, 전시회, 인형극, 뮤지컬공연을 감상하러 가거나, 오케스트라 음악회에도 자주 간다. 그때마다 학부모들은 진행과 인솔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현장학습에 동참한다. 


나는 그동안 기회를 보다 이제야 참석하게 됐다. 사실 불어를 못하니 가봤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괜히 피해만 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담임선생님에게 그런 심경을 전하니 아이들의 안전에 관해서만 관리하는 일이고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선생님 자신에게 즉각 영어로 알려주면 될 일이니 괜찮다고 하였다. 더구나 다른 몇몇 학부모들이 동행하기에 서로 도우며 할 수 있다고 했다. 바깥 체험학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고 아이도 보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다. 


내가 학부모 도우미로 참여한 현장학습은 시립 음악원에 방문해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감상하는 일정이었다. 파리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 음악원이 지역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음악, 댄스, 연극 분야에서 워크숍이나 아틀리에를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양질의 교습을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 


두 반으로 나뉘어 있는 1학년CP 학생들이 짝지어 나란히 음악원을 향해 걸어갔다. 담임선생님들이 각자 반에 선두로 섰고, 학부모가 나를 포함해 5명이 동행했다. 원래 한 반당 2명의 학부모 도우미가 따라가는 것이 원칙인데 선생님은 나를 깍두기로 여겨 주었다. 아이 반 친구들은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쌩긋 웃으며 인사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초라한 미소밖에 없어 못내 아쉬웠다. 


어정쩡히 학생들을 인솔하는 내게 선생님은 아이 옆에 서 있어도 괜찮다고 했다. 아무리 깍두기라도 명색이 학부모 도우미이기에 맡은 역할에 성실히 임하고자 초조히 아이 반 친구들의 동향을 살피는 나와 다르게 아이는 자신 옆에 바짝 붙어 걷는 엄마가 있어서인지 무척이나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두 반의 학생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가두행진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좁은 인도와 몇 번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대략 10분 정도 걸으니 15구에 있는 프레데릭 쇼팽 시립 음악원Conservatoire Municipal Frédéric Chopin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공사 현장도 있었고 찻길을 건너야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여러 번 가본 곳이라 그런지 선생님의 지휘 아래 제법 질서정연하게 잘 따라왔다. 그럼에도 몇 명의 장난꾸러기들은 길에서 딴짓하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무섭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음악원에 도착하니 다른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와있었다.  13명의 연주자와 1명의 지휘자 그리고 1명의 진행자가 검은 복장을 갖춰 입고 악기와 함께 앉아 있었다. 첫 번째 줄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같은 현악기가, 두 번째 줄에는 호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과 같은 관악기가 세 번째 줄에는 타악기인 심벌즈, 마림바, 팀파니, 실로폰, 큰북, 작은북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줄 양옆에 하프와 콘트라베이스가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무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의 배려로 나는 아이 바로 옆자리면서도 정중앙에 앉았다. 


진행자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한 뒤 오늘 감상할 작품인 <어미 거위, Ma mère l'Oye>에 대해 소개했다. 아이들은 음악 시간에 이미 발레 음악인 이 작품에 대해 배우고 왔으므로 진행자가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아이들은 손을 높이 들고 답을 말하는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진행자는 연주자와 함께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악기의 이름을 물으며 관심을 끌었다.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듯 손을 높이 쳐들고 지목되면 자기가 아는 악기의 이름을 말하였다. 엉뚱한 답이나 틀린 답을 내놓을지언정 계속해서 검지만 핀 손을 팔이 빠지라 들며 선택되기를 바랐다. 이 광경을 지켜보며 프랑스어가 서툴러 손을 들지 못하는 내 아이가 딱하게 여겨졌지만, 엄마가 옆에 있어서인지 관중의 흥분감 때문인지 아이도 덩달아 신나 보였다. 


<어미 거위>는 5개의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곡의 제목을 물어보며 아이들에게 그 곡은 어떤 악기로 연주되는지, 곡의 분위기나 특징은 무엇인지 역시나 질문을 먼저 던졌다. 그 후 오케스트라가 그 첫 번째 곡을 멋지게 연주하였다. 이런 식으로 곡마다 멈추어 아이들에게 묻고 답을 듣고 설명해 주고 다시 연주하기를 반복했다. 진행자는 악기가 관악기인지 현악기지인 타악기인지 구별하여 알려주었다. 오보에나 바순이 길이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비교하여 보여주기도 했다. 각 악기의 명칭과 특징을 연주자와 함께 정확히 알려주고 들려주기 위해 애썼다. 나 역시도 오보에족에서 테너 음역을 담당하는 잉글리쉬 호른과 길이가 가장 짧은 피콜로 오보에의 존재와 차이를 이날 난생처음 알았다. 진행자는 이 모든 걸 아이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질문을 통해 풀어나갔다. 5곡의 연주를 다 마치고서는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질의를 받았다. 이번에는 질문에 해당하는 연주자와 지휘자가 진행자 대신에 아이들의 질문에 정성껏 응답해 주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분명 음악 시간에 배웠겠지만, 이론으로만 어렵고 재미없게 배우고 음악 테이프로 들은 게 전부였을 테다. 그마저도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다시피 하여 사실 뭘 배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성인이 되어서야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걸 깨닫고 유튜브를 통해 간혹 듣거나, 후원하는 기부단체에서 주선하는 클래식 음악회에 초대돼 가거나, 뮤지컬 무대에 함께하는 오케스트라를 멀리서 두어 번 관람한 게 내가 접한 클래식 세계의 전부다. 솔직히 아직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차이를,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 못 한다. 실상은 엥겔 지수가 높은 나 같은 평범한 서민이라면 이런 오케스트라 악기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버거울뿐더러 음악회를 가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기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오케스트라에 대한 교양을 갖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뭣도 모르면서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이유 하나로 클래식을 마구잡이로 들었을 뿐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번 현장학습 프로그램이 오케스트라에 문외한인 내가 클래식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재발견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돼주었다. 어른으로서 도움을 주려고 갔는데 외려 내가 큰 도움을 받은 셈이다. 나중에 아이와 함께 <어미 거위>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영상을 찾아보고 우리가 본 악기를 인터넷 포털에 검색하며 음악원에서 느낀 흥분과 전율을 되찾기도 했다. 나는 이날 모양과 특색이 다른 여러 악기의 소리가 겹치며 하모니를 이루어 공간에 퍼져나갈 때 음악이 마법처럼 황홀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연주자의 절제된 감정 안에 솟구치는 열정이 그의 손과 입에 닿아 한 몸이 돼버린 악기를 통해 흘러 퍼지는 순간 탄생하는 소리의 물결을 나의 온 감각으로 느꼈다. 또 그 소리가 다른 연주자의 그것과 더해져 만들어 내는 소리의 조화에 넋을 잃고 연주를 감상했다. 정말 말 그대로 음악회는 오감이 충족되는 체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튜브에서 귀로만 듣던 음악과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이래서 비싼 티켓을 지불하고 음악회를 가는구나, 직접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있구나 깨달았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오케스트라의 힘을 경험한다. 공립학교에서 클래식을 자연스레 그리고 재미있게 접하는 프랑스 아이들이 무진장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마음에 감동을 주는 클래식 음악이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돼버렸을까. 단순히 듣는 걸 넘어서 오감으로 직접 체험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느 악기든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모든 시민이 클래식의 참맛을 어렸을 적부터 향유할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덜 팍팍해지지 않았을까. 

한국에 가서 후회 없으려면 적어도 이곳에 있을 때만큼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음악회를 두루 다니며 좋은 음악을 많이 경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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