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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유치원 친구의 생일 파티

둘째 아이가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친구에게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그것도 여자 친구로부터. 무던하고 활달한 성격 때문인지 아이는 여자 친구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다. 여러 여자친구가 아이를 둘러싸고 얼굴 곳곳에 키스를 퍼붓는 귀여운 장면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생일 파티를 하는 문화가 있다. 보통 점심시간 후부터 시작돼 저녁 시간 전에 끝나니 초대하는 처지나 받는 처지에서 특별한 부담이 없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단출히 생일을 기념하고는 가족과 함께 축하 파티를 했다. 간혹 레스토랑 내 공간이나 키즈카페를 대여해 생일파티를 거하게 치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집을 오픈해서 파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이웃끼리 경계가 없고 서로의 사정을 다 알 정도로 친하니 스스럼없이 이웃을 향해 집이 열려 있었다. 친구의 생일에도 당연히 집으로 초대받아 가면 잡채며 불고기며 피자며 떡볶이가 한 상 가득 정성껏 차려져 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은 개별화가 심해 예전만큼 이웃 주민끼리 친밀하지도 않을뿐더러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 임대인지 자가인지 더 나아가서는 빌라인지 아파트인지 단독주택인지에 따라 엄마들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마음이 맞아 친해진 경우가 아니고서는 집 공개를 꺼리게 된다.

집을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을 알 수 있는 단서들이 많다. 취향, 취미, 습관, 가치관, 세계관, 종교, 과거, 관심 분야 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집을 공개하고 초대한다는 의미 안에는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드러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파리도 서울만큼이나 같은 지역 안에 다양한 주거 형태가 존재하고 경제적 상황도 제각각일 텐데 거리낌 없이 집을 공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프랑스에서는 아이의 친구들만 보더라도 다들 검소하고 수수해 부모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없다. 친구와 사귐에 있어서 어디에 사는지, 부모가 부유한지 아닌지는 아이들도, 부모들도 따지지도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그러하다.


한국 같으면 부유한 아이들은 온갖 브랜드 옷과 신발, 가방 등으로 말끔히 치장돼 있다. 그래서 그런 친구가 키즈카페에서 생일 파티를 한다고 초대할 때면 당장 선물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 있을 때 벼룩시장에서 천 원, 이천 원을 주고 아이들 옷을 사서 입히거나 주변에서 물려준 옷을 입혔다. 아이들이 금세 커버려서 계절마다 옷을 구매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재활용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부부 또한 벼룩시장에서 스타일리쉬 하면서도 깨끗한 옷을 사 입었고, 꼭 필요한 건 아울렛 세일 기간을 기다렸다가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사서 유행에 상관없이 오래도록 입었다. 내가 옷을 좋아하고 중고 옷에 거부감이 없는 걸 아는 여러 지인으로부터 작아져서 고이고이 모셔만 두었던 아끼는 브랜드 옷들을 왕왕 얻어 입기도 했다. 


다국적 명품 패션 기업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시즌마다 유행을 선도하고 주입하며 대중의 허위의식을 부추김으로써 과소비를 초래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공고히 하는 악순환에 맞서 우리 부부는 빈티지 샵이나 벼룩시장을 고집했다. 돈도 아끼고, 버려질 옷을 구제하니 환경도 보호하고, 한때 자신이 입었던 옷을 직접 판매하는 사람들과 흥정하며 ‘얼굴 있는 거래’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몇십만 원짜리 가방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경쟁적으로 사주는 사회에서 신상 브랜드 옷을 입지 않아도 얼마든지 패셔너블할 수 있다는 점을, 진정한 가치는 어떤 사람인지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입고 있는 옷이 얼마나 비싼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직구로 구매한 각종 해외 브랜드 자전거를 자랑하며 타는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가 주워 온 낡은 자전거를 아이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엄마가 버려진 자전거를 주워다가 고쳐주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해 자식들의 자전거 브랜드를 자랑하던 엄마들을 당황케 했다.

하지만 맞벌이해서라도 내 아이만큼은 랄프로렌 같은 백화점 브랜드를 입혀야 담임 선생님이 한 번 더 아이를 봐주고, 친구들이나 다른 엄마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웃 언니의 현실적인 충고는 나와 아이들이 맞서야 하는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실감하며 씁쓸하게 하였다. 다행히 지금은 파리에서 학교에 다니니 아이가 3유로짜리 허접한 보조 가방을 메고 다닌 들 가방의 브랜드를 따지거나 살피는 이가 없어 해방감을 느낀다. 


친구의 선물과 축하 카드를 함께 준비하고 설렘 가득한 발걸음으로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파티 전날 친구의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아 편한 마음으로 초인종을 울렸다. 

친구의 엄마, 아빠 그리고 한 젊은 여자 베이비시터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니 햇살이 가득히 내리쬐는 아늑한 거실과 부엌이 바로 보였다. 거실 한쪽에는 다과와 음료 테이블이 아기자기한 가렌더 아래 세팅돼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친구는 예쁜 금색의 자수가 놓인 검은 드레스를 입고 아이가 건네는 선물을 기쁘게 받았다. 아이는 이미 신이 나서 친구들과 풍선 놀이를 하며 깔깔거렸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 생일 파티에 초대된 거라 아이가 엄청나게 고대했다는 사실을 말하니 친구의 부모는 아이가 참석해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는 엄청 재미있는 파티가 될 거라며 윙크를 보냈다. 다른 부모들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아이에게도 이따 보자는 인사와 뽀뽀를 건넸다. 주저함 없이 엄마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아이는 이미 파티 분위기에 완벽 적응 중으로 보였다.


짝지가 약속이 있는 바람에 첫째 아이까지 데리고 왔는데 아이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첫째 아이 역시 생일 파티에 초대됐었지만, 노란 조끼 시위로 안타깝게 참석하지 못했다. 현재 거주 중인 집이 개선문과 에펠탑 중간에 있어 주변 지하철과 버스 운행이 모두 끊기고 우버 차량까지 접근이 어려워 주말마다 집에서 옴짝달싹 못 하던 때였다. 자신은 생일 파티에 못 갔는데 동생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며 케이크까지 먹게 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며 자신도 파티에 남아 있겠다고 우겼다. 그런 아이에게 지난번 엄마와의 데이트가 얼마나 좋았는지 상기시키며 겨우 달래서 나왔다. 기온이 16도까지 올라 따뜻한 볕에서 일광욕도 하고, 카페에 가서 빵도 먹고, 중간에 아이의 친구에게 연락해 공원에서 만나 잠시 놀기도 했다. 마트에 가서 책과 장난감을 구경하니 어느덧 3시간이 알차게 지나갔다.


아이들 각자와 독대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다는데 이 시간은 엄마에게도 힐링이 된다. 서로에게만 시선을 두며 함께 했던 모든 행위가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이 되어 마음에 소복이 쌓이는 기분이다. 파티 종료 시각에 맞춰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가니 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친구의 부모는 아이가 전혀 수줍어하지도 않고 모든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뿌듯해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그들의 얼굴에 역시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을 돌보며 놀아주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인 줄 알기에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로서의 공감이 절로 흘러나왔다.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위로를 건네는 내게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친구의 아빠는 활짝 웃어 보였다. 아이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숨바꼭질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고양이랑도 놀고 재밌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떠올랐다. 여행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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