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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Apr 22. 2019

프랑스 국제도서전과 은희경 작가와의 만남

나는 본래 책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밖에서 뛰놀거나 텔레비전 보는 걸 더 좋아했다. 텔레비전이 온종일 켜져 있었던 집안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책에 집중하며 진드근히 앉아 있는 끈기가 없었다.

집에 비치돼 있던 전래동화나 위인전을 읽고 감동에 젖어 가슴에 솟구치는 뜨거움을 느낄 때도 종종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학생이 돼서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전공에 관련된 책 외에 그 당시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나 고전 소설을 겨우 찾아 읽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책이 좋아서라기보다 독서는 교양 있는 사람의 필수 행위인 양 강박에 시달려 서점을 다녔더랬다. 책에 관련된 수많은 명언은 가뜩이나 귀 얇은 나를 그런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하였다.



”책을 두 권 읽는 사람이

책을 한 권 읽는 사람을 지배한다.”  

-에이브라함 링컨-


“남의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책이 그저 좋아서 매일 밥 먹듯 읽기 시작한 건 불과 3년 전이다.
26개월이었던 둘째를 어린이집에 완벽히 적응시킨 후 다시 일해야겠단 다짐을 했었을 무렵 우연히 ‘그림에세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개성 강한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며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과 나란 사람이 속한 세상을 좀 더 객관화하며 보는 훈련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다양한 책을 접하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잃었던 나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표현하는 시간을 2년 동안 가졌다.

그래서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교수가 책을 읽는 이유가 왜 ‘쾌락’이라고 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어렸을 적에 책 앞에 더 자주, 더 오래 머무르지 못했던 이유가 끈기 없고 놀기 좋아하는 성향 때문이라 자책하였건만, 진짜 재미있는 책을 못 만나봤기에 그러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제 책은 신랑 다음으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는 날로 불어나고 있다.

나는 에세이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에세이에는 삶의 잔잔한 때로는 거대한 투쟁을 겪으며 우러나는 작가만의 진솔한 사유와 성찰이 있다. 좋은 에세이 책을 만나면 마치 그들의 내면세계에 차곡히 쌓여있는 지혜의 선물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기분이다. 심취해서 읽을 때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위로와 공감을 얻기도 한다.
작가 특유의 날카롭고 예민한 시각을 통해 세상 이모저모를 들여다보며 물론 보대낄 때도 있다.
책을 읽으며 잔잔했던 나의 내면에 찬물이 끼얹히기도 하고 생채기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너그러움이 아주 조금은 더 깊어진다.

나는 성장소설이나 역사소설도 좋아한다. 사회의 모순과 불공정한 세상에서 나와 다른 이들과 복잡다단한 관계에 얽히며 실수하고, 엇나가고, 무너지고, 질문하며 자신만의 길을 다져가는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가 좋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를 명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생생하고 세밀한 서사로 창조해내는 작가들에겐 무한한 존경심마저 느낀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은 한국에 있을 때도 꼭 찾아다녔다.

우연히 프랑스 한인 신문을 통해 ‘은희경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노란 조끼 시위로 화난 군중들의 함성과 대중교통의 정체로 혼란이 가득했던 토요일에 나는 홀로 은희경 작가를 만나러 외출을 감행했다.


아시아 도서들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서점 2층에 도착하니 어깨 넘어까지 곱슬거리는 풍성하고 새빨간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은희경 작가와 큰 체구에 안경을 끼고 수염이 덥수룩하여 전형적인 서양 교수의 이미지를 자아내는 중년의 프랑스 남성이 통역가로 함께 앉아 있었다. 한인 신문과 사이트에 광고가 났기에 한인들이 많이 올 줄 알았더니 27명 정도 되는 독자 중 한인은 나를 포함 달랑 5명뿐이었다.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책으로 작가가 먼저 책에 대하여 30분가량 이야기한 후, 독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1시간 30분가량 가졌다. 난 은희경 작가의 책 중에 저 책은 아직 못 읽었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모든 게 줄곧 흥미로웠다.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고 단일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한국 사회에 만연한 틀. 가족은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가족 관계는 이래야 하고, 싱글맘은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청소년은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 그 수많은 틀. 그리고 그 틀 안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을 가두고 남의 인생을 평가하는 시스템의 폭력.

주인공 소년은 아빠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은 마이너한 존재다. 그 소년은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작가는 실제로 아들이 듣는 힙합 음악을 통해 힙합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헤드폰을 끼고 늘 음악에 빠져있는 아들이 엄마를 대화에서 배제하는 느낌이었지만, 그 앨범의 제목을 곱씹어 보며 관심을 가지고 음악을 듣다 보니 작가 자신도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다고 한다. 곡의 내용도 ‘~ 답게 해라’라는 폭력에 상처 받은 사람의 이야기였고 노래를 들으며 이 힙합의 세계가 이해가 됐고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됐다. 은희경 작가는 실제 엄마로서의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을 “비밀”이라며 알려주었다.


이 책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타자에 대한 소통의 이야기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

문학적 상상력은 특이하고 새로운 소재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문학에 대한 상상력이다. 우리가 다른 건 인종차나 성별차가 아니라 대부분 개인차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몰랐던 타인에 대해 마음을 열고 나와 다르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을 쓴다.
- 은희경 작가 -


내가 책을 읽을 때 쾌락을 느끼는 이유와 작가가 소설을 쓰는 마음이 동일한 걸 보니 내가 왜 이 작가의 책에 끌렸고 한국의 독자들이 왜 이토록 이 사람에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프랑스 독자들이 한국 사회의 문화나 한국 문학의 특징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프랑스 문학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한국 독자들이 작가의 책을 읽는지 한국 문학계의 변화나 시류를 묻기도 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랑스 독자나 한국 독자나 사람의 삶과 생각은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음을 느꼈다. 은희경 작가를 실제로 만나니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함께 사진도 찍고 감사 인사를 하며 중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내가 작가를 보며 설렜듯 나의 삶과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누군가를 설레게 할 수 있을까.



주말이 지나고 프랑스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다.
인터넷으로 8유로(1만 원) 티켓을 미리 구매하고 입장했다.

한국의 킨텍스 정도 되는 규모의 전시장에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 지역 위주의 국가별 홍보관과 프랑스어로 번역된 자국 작가들의 도서가 전시돼있었고 출판사별로 정말 많은 부스가 있었다.

이런 전시회는 마치 대형 서점과 마트의 장점이 잘 버무려진 컬래버레이션을 경험하는 듯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정말 다채롭고 다양한 도서들 사이를 거닐며 그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은 채 내 시선이 꽂히는 대로 책을 골라볼 수 있다. 출판사별로 자신의 가치를 담은 인테리어로 부스를 설치하고 그 출판사를 대표하는 책들이나 신간 도서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만큼 내가 평소에 관심 두던 종류의 책을 넘어서 새로운 책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덕분에 내 취향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표지 스타일이나 어떤 소재나 어떤 장르의 책에 흥미를 느끼는지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다.


전시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평소에 눈여겨보던 출판사가 있다면 그 회사의 직원들과 얼마든지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분위기였다.
여러 부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토론이나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출판 관계자와 사업가 또는 작가가 미팅을 진행하고 있는 장소도 보였다. 어떤 공간에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소개팅을 하듯 일대일로 앉아 열띤 토론을 하고 있어 이건 뭐지 하고 들어가니 예약한 사람만 입장 가능하다는 말에 그 공간의 분위기만 느끼고 나왔다.

초등학생들이나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선생님과 함께 단체로 와서 도서전을 즐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그래픽 노블이나 만화 부스에서 나눠주는 홍보물을 한가득 담은 쇼핑백을 모두 한 손에 들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몰려다녔다.


확실히 한국 도서전보다 그래픽 노블이나 만화책 그리고 그림책을 특화하여 전시하는 출판사가 많았다. 어떤 부스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몰려있어 가까이 가보니 작가들이 사인이 아닌 그림을 직접 그려주고 있는 게 아닌가. 독자들이 사거나 가져온 책에 독자들의 초상화를 일일이 그려주는 엄청난 이벤트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작가들이 많이 고단하겠구나 싶으면서도 자신의 책을 사랑해주는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심정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불어를 잘했다면 더 풍성히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 나라에 살며 그 나라의 언어를 못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지 뼈저리게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남들도 다 하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냐며 호기롭게 불어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그러다 보니 더듬거리는 불어가 민망하거나 무시당하는 상황이 싫어 자꾸 영어만 쓰게 된다. 배운 걸 반복해서 실제 상황에 써먹어야 실력이 느는데 꼭꼭 숨겨두기 바쁘니 힘들게 이해한 문법이나 외운 문장들마저도 머릿속에 쌓여간다 싶으면 고새 휘발되고 만다.

도서전에서 본 아이들처럼 나도 선물로 받은 홍보물을 한 아름 안고 자위하며 내년을 기약해 본다.
내년 이맘때도 프랑스에 있게 된다면 프랑스 도서전 2020에서 casterman 출판사 관계자와 Bastien Vivès의 책들에 대해 기필코 불어로 대화를 해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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