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Chez Mon Ami 프랑스 친구

파리에 살며 아이들은 생일 초대 외에도 친구 집에 이따금 초대받을 때가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기들끼리 숱하게 서로의 집으로 초대하고 응하지만 그건 별 효력이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 순수한 약속이 실현되려면 부모들의 개입과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청에 적은 평수를 핑계로 번번이 퇴짜를 놓곤 한다. 현재 거주 중인 집이 방 3개(부엌과 거실 포함)짜리라 우리 가족 4명에서도 충분히 복작복작한다. 우리야 에펠탑과 개선문 중간에 위치한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이고 매일 감사하지만, 손님에게는 움직임조차 불편할 정도로 좁은 공간인지라 초대해 놓고도 미안한 상황이 발생했던 적이 왕왕 있었다.


사실 대다수 파리의 집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월세에 비해 크기는 코딱지만 하다. 물론 위치나 집 상태에 따라 렌트비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지하철역과 가깝고 부엌 시설과 거실 포함한 방 3개에 50 제곱미터 정도 되는 아파트는 못해도 2500유로 이상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자녀가 생기면 파리 외곽으로 이주하는 파리지앵들이 태반이다. 그럼에도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파리에 남아있는 경우는 원체 부자거나 아니면 아이들의 학교와 직장 때문이라는 사례를 자주 접한다. 한국보다는 훨씬 덜하긴 해도 프랑스 역시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 ‘좋은 학군’과 ‘좋은 동네’를 따지긴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친구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갈 때면 파리지앵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


나엘은 둘째 아이의 친구다. 지난 학년엔 같은 반이었지만 이번 학년엔 다른 반이 됐다. 아이들끼리 자주 토닥거리기도 했고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나엘네 부모님과 특별히 안면 틀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요 녀석들이 언제 그리 친해졌는지 나엘은 둘째 아이를 초대하고 싶어 예전부터 엄마를 적잖이 졸랐다고 한다.

약속 시간에 맞춰 애플파이를 사서 나엘네 집에 도착하니 나엘은 자신과 둘째 아이의 이름이 있는 LED 라이트박스와 함께 문을 반쯤 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니 현대식 아파트답게 널찍한 거실과 테라스가 여러 식물과 함께 모던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장난감이 한가득 들어차 있는 나엘의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죽이 잘 맞아 재미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나엘 엄마와 자연스레 차를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진입했다.


나엘네 엄마 타미드는 IT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풀타임 워킹맘이다. 이직한 지 6개월 된 회사에서 업무에 흥미와 성취감이 있지만, 팀 리더의 괴롭힘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 퇴사까지 고려 중이라고 했다. 리더가 책임감과 능력이 없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실력은 있는데 이기적이고 품격이 부족하면 밑에 사람이 참 힘들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솔직한 성격의 타미드는 쉴 새 없이 여러 에피소드를 마구 풀어놨고 난 그녀가 겪은 불공평한 처우에 함께 분노했다. 사람 때문에 회사 생활이 괴로운 건 한국이든 프랑스든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우리는 삶의 고민, 소중한 가치, 꿈, 아이들의 학교생활, 여행, 한국 문화, 실내 인테리어, 프랑스 이혼 이슈 등 풍성한 얘기를 나눴다. 특히 남편과 전처 사이에 두 아들이 있는데 청소년이 된 그 아이들과 유치원생 나엘이 사이가 나빠져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댁에 큰아이들을 보내야 했던 고충을 들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나엘의 마음도, 나엘 형들의 마음도, 타미드의 마음도, 나엘 아빠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니 안쓰러웠고 상황 자체가 안타까웠다. 그 시각에도 나엘 아빠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상처가 깊은 두 형제를 보러 파리 외곽에 있는 어머니 댁에 갔다고 했다.


나엘 엄마는 우리의 안식년 프로젝트를 듣고는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며 부러움을 한껏 쏟아냈다. 주중에는 일에 치이고 주말에는 여력이 없어 나엘과 양질의 시간을 못 갖는 게 늘 미안하고 아쉽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엘과 여행을 다니는 게 꿈인데 항상 생각에만 머물러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일본에서도 2년 정도 살았고 여러 나라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결혼과 출산 후에 일상에 안주하다 보니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았다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마 쏜살같이 지나간 세월의 파노라마를 곱씹어 보았으리라.

아이들은 중간에 간식을 한 번 먹고는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놀았다. 둘 다 헤어지는 걸 몹시 아쉬워해 언제든 또 연락하고 만나자며 엄마들끼리 대신 약속하고선 겨우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둘째 아이는 이 플레이데이트 이후 학교에서 나엘과 더욱더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둘째 아이의 베스트 프렌드는 누가 뭐래도 시몽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9월부터 몇 번이고 초대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하필 선약이 있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하다가 11월이 돼서야 드디어 시몽이네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프랑스 학교는 수요일에 오전 수업만 있어서 11시 30분에 끝난다. 첫째 아이가 수요일 오후에 축구클럽에 가니 둘째 아이도 방과 후 활동을 학교에서 이어서 하도록 신청해 놓았다. 그래서 수요일에도 어김없이 4시 30분에 아이들을 찾는다. 11시 30분에 하교하는 시몽이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나도 이날만큼은 둘째 아이를 일찍 하교시키고 선 한국에서 선물용으로 준비해 온 필통과 한국에서 재배한 유기농 녹차를 들고 시몽이네로 향했다.


아이들이 셋인 시몽이네 집은 대식구답게 파리의 집치고 굉장히 컸다. 널찍한 아파트 사이즈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넓은 평수를 찾다 보니 두 아파트 사이의 벽을 허물어서 하나로 합쳐놓은 집을 구했다고 했다. 파리의 아파트 구조는 복잡하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반영된 탓인지 미로처럼 복도가 있고 복도마다 방이 있다. 한국도 방들을 일렬로 나열하며 복도를 기다랗게 뺀 아파트 구조가 이제는 흔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복도 공간이 아까워서라도 거실과 부엌 중심으로 사방에 방이 있는 구조를 더 선호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프랑스 집 구조의 장점에 익숙해져 복도의 필요성이 이제는 납득이 간다.

시몽이는 우리나라 전통 천으로 만든 색색깔의 필통이 예쁘다며 무척 좋아했다. 필통을 볼에 비비며 ‘두두(프랑스 아이들의 애착 인형)’같다고 엄마에게 말하고선 장난감에 정신 팔려있는 둘째 아이에게 한국말로 “고마워”라는 말을 얼른 배워와서 나에게 해주었다. 막둥이인 시몽이를 끔찍이 사랑스러워하는 시몽 엄마 소피도 시몽이가 선물을 좋아하니 덩달아 신이 나 고마워했다.

시몽이 엄마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을 위해 먹음직스러운 블루베리 머핀을 잔뜩 구워놨다. 볕이 잘 드는 널찍한 거실 소파에 앉아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들과 그림들로 사랑스럽게 꾸며져 있는 공간에서 구수한 빵 냄새를 맡으니 예쁜 카페에 온 거처럼 기분이 좋았다. 시몽이네 집에는 햄스터와 금붕어 그리고 강아지도 있었다.


시몽이의 맏형인 폴이 음악 수업을 마치고 귀가했다. 폴은 중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다. 테니스 수업에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잠시 집에 들렀단다. 나를 보자 의젓하고 늠름하게 비쥬와 함께 낮은 톤으로 목소리를 내리깔며 인사하는데 성인 남자를 흉내 내는 거 같아 귀여워 보였다.

수요일은 오전 수업밖에 없어 방과 후 활동을 하느라 제일 바쁘다고 했다. 폴과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BTS를 아냐고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한국을 여행하며 BTS 콘서트에 직접 가서 동영상을 찍어 보내줬다며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어른 앞에서 엔간해서 주눅 드는 법이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당차게 물어보고 토론도 서슴지 않는다. 함께 녹차를 마시며 신사답게 예의를 갖추어 대화에 참여하는 폴을 보니 처음 느꼈던 귀엽단 인상이 어느새 희미해져 갔다. 상대를 존중하는 만큼 자신도 존중받는다는 이치를 벌써 터득한 폴은 고작 만 13살밖에 안 된 소년임에도 기품이 느껴졌다. 새삼 아이 셋을 이렇게 멋지게 키우고 있는 소피가 대단해 보여 폴이 떠난 후 나도 모르게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첫째 아이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녀 자주 마주치는 만 11살인 시몽이의 누나 마에도 그렇지만 어쩜 아이들이 하나같이 예의 바르고 바르게 컸냐며 감탄하니 소피는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가르친다며 칭찬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소피는 항상 시몽이를 직접 데려다주고 오후에도 데리러 와 당연히 전업주부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큐레이터였다. 내 기준과 입맛대로 보고 느낀 걸 섣불리 판단하고 재단하면서 평소에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할까.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해를 하고 있을까. 뜨끔했다. 미술사를 전공했고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관심사가 비슷해 최근 다녀온 전시와 미술관에 대해 한참을 대화했다. 프랑스도 국립 미술관에 취업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란다. 그래서 일 년 전부터 개인사업자로 일한다며 최근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어와 프랑스 교육 그리고 시위에 관한 이야기도 했는데 소피는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에 소홀해 불만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북유럽만 봐도 영어를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국가에서 교육하니 모든 국민이 모국어만큼 영어도 잘하고 국제사회에서 기회가 더 많다며 부러워했다.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영어로 기똥차게 연설했던 당찬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툰베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프랑스는 아직도 영어교육의 비중이 작다며 답답하다고 했다. 확실히 프랑스에서 영어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소피는 지나친 시위나 빈번한 파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프랑스 시민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미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감사가 부족한 거 같다며 자기 생각을 풀어냈다. 프랑스 시민들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았으면 좋겠다며 소피는 거듭 강조했다.

시몽이네서도 아이들은 장장 4시간을 놀았다. 그다음 날 학교에서 또 만나는데도 아이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소피와 타미드처럼 아이들 덕분에 생긴 친구들이 있다. 가끔 마음에 맞는 엄마들과 학교 근처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인연이 될 수 없었을 다양한 파리지엔느를 만나며 저절로 인생 공부가 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프랑스에서도 아이들로 인해 맺어진 관계는 특별하다. 또래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 하나로 나이와 국적과 인종과 상관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엄마가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이 세상 모든 아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알게 됐다는 거다. 내 아이를 향한 형언할 수 없는, 얼마만큼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경험하니 다른 부모도 그들의 자식에게 그만치 사랑을 쏟겠구나, 얼마나 금쪽같은 자식이겠냔 감이 저절로 생긴다.


어른들의 부주의와 한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으로 한국에서 발생한 여러 어린이 교통사고를 접하며 남 일 같지 않은 충격이 있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아이를 떠나보낸 그 부모들이 같은 종류의 희생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빚진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이가 고열로 아파하는 모습만 봐도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찢어질 듯한 가슴을 움켜잡는 게 부모다. 그런데 이 부모들은 당연히 있어야 할 신호등이 설치돼 있지 않은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안전시설이 전무한 경사면 주차장에서, 어른 동승자 없이 질주하며 달리는 어린이 차량에서 아이를 잃었다. 이들이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투쟁하는데 거기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몰지각한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중대한 법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국회의원들이 정말이지 너무나 싫고 역겹다. ‘태호유찬이법’이 통과 안 되면서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이 그랬단다. “어린이 법안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발상의 기저에 깔린 몰인간성이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에 비유한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의 것과 다르지 않아 소름이 돋았다.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어떠한 이유로 언론과 정부 기관과 권력이 공작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건을 단순 사고로 치부해 버린 국회의원. 스쿨존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등 어린이 안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법을 그 법이 없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이 만들자는데 그런다고 사고 안 나냐는 발언을 내뱉은 국회의원.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얼마나 더 희생돼야 바뀔 건가. 우리 자식들은 그 총체적으로 불의하고 불안한 시스템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거고 앞으로도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운에 맡기며 지뢰밭에서 지뢰를 피하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어린이 생명 안전 법안들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유치원 현장학습  애니메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