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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프랑스 학교 마지막 날

새 학년, 새 학기가 3월에 시작되는 한국 학교의 시기에 맞춰 계획보다 일찍 한국행을 결정했다. 12월 20일 마지막 인사를 하러 첫째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에 들렀다. 크리스마스 2주 방학이 21일부터 시작되니 개학 후에 며칠을 더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아싸리 방학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게 낫겠다 싶었다. 더구나 한국 가기 전 1월, 2월은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전날 19일에는 둘째 아이 학교(유치원)에서 진행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 처음 참석해 보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마냥 낯설고 신기해 모든 게 즐거웠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떠날 때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바람에 아쉬움 가득한 파티였다. 둘째 아이의 학교에는 이렇게 연말 파티가 있었던 덕에 시간의 여유를 두고 학부모들과 선생님들과 작별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나엘 엄마와도, 둘째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쌍둥이 또마, 사무엘 엄마와도, 큰아이 작은 아이끼리 나이가 같아 친했던 나임과 왈라드 엄마와도, 절친 시몽이 엄마와도,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과도 근황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충분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외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고마웠던 학부모들에게는 WhatsApp(프랑스에서 사용하는 카톡 같은 메신저 앱)을 통해 인사했다. 


첫째 아이네 초등학교에는 크리스마스 행사가 없어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두루두루 작별 인사할 기회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 약속을 하고 학교에 찾아갔다. 

첫째 아이는 지하철 파업 때문에 12월 내내 거의 학교에 안 나가다시피 하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니 신나 했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간다는 걸 아는 아이는 간간이 시원섭섭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제일 친했던 친구들과는 따로 만나 선물도 주고받고 마지막으로 한바탕 놀며 작별 인사를 미리 했다. 첫째 아이가 교실에 들어서니 친구들은 여기저기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담임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이의 반 학생들은 연극 관람을 위해 극장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온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위해 그림 카드를 만드는 중이었다. 첫째 아이를 위해 수업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준 선생님께 고마웠다. 반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위해 그리고 쓰며 정성스레 그림 편지를 만드는 광경을 보니 아이는 매우 뿌듯해했다. 주인공이 된 아이는 친구들의 넘치는 관심이 기쁜지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선생님은 그동안 첫째 아이가 공부한 공책과 교과서 그리고 미술 작품들을 한데 모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교실에서 키우던 작은 식물도 챙겨주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는 그룹 포옹을 했다. 몇몇 친구들은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며 아이를 놔주지 않고 꼭 끌어안았다. 


반 친구들과 첫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비디오로 담으며 눈물이 고였다. 선생님의 배려와 친구들의 진심이 느껴져 감동이 밀려온 탓도 있었지만, 이제 프랑스 생활이 정말 끝이구나 비로소 실감했다. 작별 인사를 직접 하고 다녔던 둘째 아이의 학교 파티에서는 아무렇지 않다가 막상 첫째 아이와 친구들의 작별을 보니 눌러놨던 감정이 폭포처럼 올라왔다. 주책바가지 아줌마가 되고 싶지 않아 뜨끈히 치솟는 감정을 급하게 누르며 더 환하게 웃었다. 교장선생님과 축구 코치 선생님에게도 따로 인사를 드리며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말을 전했다.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첫째 아이를 인내와 사랑으로 잘 보살펴준 선생님들 덕에 아이는 낯선 문화와 언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과 코치 선생님은 각자 학교 로고와 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아이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교장선생님은 집 앞까지 와서 티셔츠를 전해 주고 가셨다. 


돌아보면 우리는 참 좋은 프랑스인들만 만났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항상 먼저 손 내밀어 주었던 아이들 친구의 부모들, 아이들의 상황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며 품어 주었던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 헌신적이었던 어학원 선생님들, 우리 가족이 편하게 지내는지 세심히 챙겨주었던 훌륭한 인품의 집주인 내외분, 항상 웃는 얼굴로 택배를 가져다준 가디언 아주머니 및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이웃들 등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좋았기에 프랑스라는 낯선 이방 나라에 더 정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거 같다.


무식하고 무모한 우리가 인복까지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한국행을 선택했을 거다. 그 인복은 우리가 잘하거나 잘나서 받은 복이 아니라는 걸 안다. 돌아보면 프랑스에서의 삶은 그 자체가 선물이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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