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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뮤지엄 나이트

프랑스에는 일 년에 한 번 유러피언 뮤지엄 나이트라는 날이 있다. 파리와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에 소재한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저녁 7시부터 자정이 넘어서까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는 행사다. 요즘은 일몰 시각이 저녁 9시 30분쯤이라 저녁 7시에 밖에 나와 있으면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헷갈릴 만큼 햇살이 지면에 따스하게 내린다.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집에서 푹 쉬다 이른 저녁을 든든히 먹고 나왔다. 


사실 나는 독특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을 가고 싶었다. 인상파전이 진행 중이기도 하고, 불로뉴 숲을 갈 때마다 그 유니크하고 미래적인 건물을 보며 언젠가 한번 가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참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12개의 유리 돛을 형상화한 최첨단 건축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강력한 주장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우리는 결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7시를 10분 앞두고 도착하니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같은 가족 단위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커플들과 중년과 노년의 커플들도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듯 보였다. 자연사 박물관 안에 있는 진화과학 박물관에 입장하기 위해 우리도 기나긴 줄에 합류했다. 


7,000종의 박제 동물이 전시된 이곳에는 이미 멸종됐거나 멸종 위기인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300년이 넘은 동물들도 있는데 프랑스 원정대가 1762년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며 다종다양한 척추동물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진화과학 박물관 이외에도 공룡 뼈가 전시된 박물관도 있다. 

대부분 남자아이가 그러하듯 공룡이라면 환장하는 우리 아이들은 공룡을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유독 이 건물만 굳게 닫혀있는 걸 보며 크게 실망하였다. 지난겨울 바캉스 때 파리에 놀러 온 사촌 누나와 함께 다녀왔으니 나중에 또 오자며 아이들을 위로하였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옆 널따란 대지에는 식물원과 동물원도 있다. 겨울에 갔을 때는 꽃이 없어 휑했었는데 이번에 보니 식물원의 정원이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진화 박물관을 향해 바삐 걸어가느라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지만 도시에서 이렇게 동화 속 세상에나 존재할 법한 꽃밭을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가방 검사를 마치고 진화과학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어둡고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커다란 고래의 뼈가 우리를 환영하며 맞아주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을 탐험하는 듯한 박물관 인테리어가 전시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불이 꺼질 때 드는 설렘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들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며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1층(프랑스식 0층)에는 해양 생물들이 모형이나 박제된 상태로 전시돼 있었다. 첫째 아이는 신화 속 동물인 유니콘과 같이 뿔을 가지고 있는 멸종 위기 동물인 외뿔고래(Narwhal)에 대한 전시를 인상 깊게 봤고, 둘째 아이는 역시나 상어를 제일 좋아했다. 아이는 어두컴컴하고 무시무시한 상어 입속으로 자기 머리와 손을 계속 집어넣는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나 또한 외뿔고래를 보며 이렇게 독특한 생김새의 고래가 실존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하지만 이 특별한 동물이 고가에 활발히 거래되고 있어 여전히 외뿔고래 사냥이 끊이지 않아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금세 서글퍼졌다. 2층에는 기린, 코끼리, 얼룩말, 사자 같은 여러 종류의 포유류 동물들이 줄지어 행진하는 디스플레이가 예술 작품처럼 펼쳐져 있었다. 동물들 사이사이에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다양한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한꺼번에 들으며 실제 동물과 똑같이 제작된 모형 동물들을 바라보니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 숨 쉬는 실제 동물들이 내 옆을 걷고 있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3층이나 4층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니 동물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루었다.각층에 박제 버섯, 곤충, 조개, 동물 근처에 그 동물들과 관련된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게임이 컴퓨터 화면으로 설치돼 있었다. 아이들은 박제된 동물을 구경하는 거보다 손으로 터치하는 게임에 더 신나 했다. 

우리는 3층(프랑스식 2층)을 제일 재밌게 봤는데 이곳에는 멸종된 동물들의 실제 모습이 유리관 안에 박제된 상태로 전시돼 있었다. 멸종된 동물과 멸종 위기 동물뿐만 아니라 독특하게 생긴 희귀한 동물들도 전시돼 있어 그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어떤 동물은 으르렁거리며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어떤 동물은 우아한 자태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또 어떤 동물은 무얼 먹고 있는 듯한 포즈로 있거나 역동성이 느껴지는 포즈의 동물도 있었다. 첫째 아이가 그런 박제된 동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숙한 동물들 말고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동물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 존재한다는 신비로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또한 한 동물의 범주 안에서도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의 수많은 동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시에 상당한 수의 귀한 동물들이 지금 멸종 위기를 앞두고 있다는 경각심마저 다시금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 모든 걸 구경하며 첫째 아이는 물었다.

우리도 멸종될까?

우리도 지구에서 사라질 거 같아...

너무나도 심오한 질문을 순진무구하게 그리고 나름 진지하게 훅 던지는 아이 앞에 나도 할 말이 딱히 생각이 안 나 잠시 침묵했다. 

끝없는 개발과 혁신과 발전을 추구하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자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다른 생명체를 죄의식 없이 멸종 위기에 빠트리는 일에 앞장서는 우리네 인간이 이렇게 계속해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살다 보면 끝내 자멸의 시대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이 가정이 비단 SF 소설에만 국한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다.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환경 문제만 봐도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각종 자연재해와 식량 부족으로 지구 자체가 공멸할 가능성도 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협력하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최대한 해도 모자를 판국에 당장 내일 일이 아니라고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과 이해관계가 앞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인간이기에 빠른 시기 안에 얼마든지 자멸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나의 의견을 어떻게 아이에게 전달해야 할지 몰라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지구상에 한때 존재했으나 사라져 지금은 박제된 동물로만 박물관에 남아 있는 존재 아닌 존재를 보며 왠지 모를 허무가 밀려왔다. 영원하지도 않을 육체를 위해 영원하지 않을 무언가를 쫓으며 또 영원하지 않을 것을 위해 끊임없이 다른 존재에게 상처 주고, 싸우고, 죽이는 인간 동물은 무엇이며 그 존재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을 향해야 할까. 

블록버스터 영화 보듯 가볍게 시작한 박물관 투어가 끝내는 풀지 못할 무거운 질문들만 안겨줬던 뮤지엄 나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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