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자백의 대가> 리뷰
<자백의 대가>는 송혜교와 한소희 캐스팅에 이응복 감독까지 합류해서 제작 단계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여러 조율 과정에서 감독과 캐스팅이 불발되고, 심나연 감독을 거쳐 최종적으로 이정효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배우들의 하차는 전화위복이 되어 전도연과 김고은으로 최종 캐스팅되었다. 이렇게 제작 단계부터 다사다난한 화제를 몰고 다녔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한 가지, 극본이 잘 나왔다는 소문이 수년 전부터 파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이 궁금했던 <자백의 대가>. 과연 결과물은 어땠을까?
자백의 대가(2025)
방송&스트리밍 : 넷플릭스
연출 : 이정효 / 극본 : 권종관
출연 : 전도연, 김고은, 박해수, 진선규, 최영준 등
러닝타임 : 12부작
<자백의 대가>의 시놉시스는 명확하다. 남편을 죽인 혐의로 감옥에 간 윤수에게 모은이란 여자가 본인이 범인이라고 대신 자백해 준다. 그 대가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죽여 달라는 것이다. 이 시놉시스 만으로 흥미로운 전개지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그다음부터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여러 개의 가정이 생겨나면서,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추리하고 의심하게 된다. 윤수는 정말 남편을 죽인 걸까? 아니면 모은이 진짜 윤수 남편을 죽인 게 아닐까? 모은은 어떻게 감옥 밖에서 행동할 수 있는 걸까? 의사 부부 아들을 죽인 범인은 누구이며, 윤수 사건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명확한 시놉시스 안에 미스터리를 겹겹이 쌓여가고, 범죄의 재구성으로 하나씩 벗겨가는 과정이 추리물로서 확실한 재미를 선사한다.
<자백의 대가>는 초반부 백동훈 검사의 시선으로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면서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윤수와 모은의 시선으로 바뀌면서 각 캐릭터의 진심들이 드러나고, 두 개의 사건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려지게 된다. 즉 단편적인 인물로 보였던 윤수와 모은이 점점 입체적으로 그려지면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작품의 서사를 완성하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인물의 진심이 드러날수록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하나의 진실로 다가가는 과정이 색다른 인상을 준다.
<자백의 대가>는 단순히 오락적인 추리물에 그치지 않고, 여러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촉법소년의 문제, 강압 수사로 대변되는 알량한 정의감으로 밀어붙이는 검사, 언론의 문제와 무능력한 경찰, 그리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러 제도들의 허점까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한국 삶을 그린 이 작품은 그 안에 여러 사회 문제들을 녹여내면서 사건의 전개를 좀 더 밀도 있게 그려낸다. 특히 피해자뿐만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아픔을 그리는 디테일에서 이 작품의 방향성을 명확히 느끼게 한다.
영화와 드라마신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성장한 김고은과 그 이전 연기파 배우로 최정점에 올랐던 전도연. 영화 <협녀 : 칼의 기억>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난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세대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의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대결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너무 다른 캐릭터인 윤수와 모은을 완벽히 연기하면서, 두 배우의 연기에 계속해서 감탄을 하게 된다.
자유롭고 방탕스러워 보이지만 인물의 진심에 다가갈수록 투명하고 솔직한 캐릭터인 안윤수. 전도연의 그런 안윤수를 끝모를 매력으로 완벽하게 연기해낸다. 특히 감정을 숨김없이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안윤수 특유의 성격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면서 왜 전도연인지를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진짜 감탄은 김고은이다. 이 작품은 두 배우 말고도 박해수, 진선규, 최영준, 김국희, 이상희, 이규회, 남다름, 김선영, 이재인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과 다르게 초반부 유독 이질감이 느껴지는 게 바로 김고은의 연기였다. 무감정에 사이코 패스 같은 모은을 연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에서 튀지만, 이러한 이질감이 오히려 배우들의 앙상블 사이에서 남다른 특이점이 되어준다. 여기에 모은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무감정 같은 얼굴에서 분노와 공허함이 느껴질수록 김고은의 끝모를 연기력에 감탄하게 된다. 후반부 다소 흔들리는 개연성에도 이 작품을 힘 있게 이끈 건 김고은의 분노와 공허함, 그리고 이를 다스리는 알 수 없는 따스함을 그리는 연기에 있었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미장센에 공들인 촬영과 다양한 카메라 워킹, 호러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끄집어내는 연출까지. 드라마로서 상당한 공들인 연출이지만, 중반부 루즈한 전개와 편집은 살짝 아쉬움이 묻어난다. 특히 후반부 극의 하이라이트를 그리는 반전의 묘미를 드라마틱하게 살리지 못한 건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후반부 반전을 드러내는 하이라이트는 좀 더 리드미컬하게 연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시놉시스의 힘은 확실히 느껴진 극본이었지만, 대사의 아쉬움은 여러 캐릭터에서 보여진다. 오랜 기간 다듬은 극본임에도 보이는 몇몇 개연성의 문제, 특히 결말의 살해 동기를 설득시키려면 좀 더 많은 서사와 캐릭터의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였기에 이 부분에 대한 간과는 이 작품의 완성도에 다소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인다.
<자백의 대가>는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없는 웰메이드 스릴러 드라마이다. 확연히 느껴지는 극본의 힘과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파티, 그리고 몰입도 높은 연출까지. 인물의 진심이 드러날수록 누가 범인인지 드러나는 전개도 신선했으며, 추리물로서의 재미와 반전에 떡밥 회수까지 마무리마저 깔끔한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스릴러가 아닌 개성과 신선함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피해자와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심도 있게 다룬, 근래 나온 스릴러 드라마 중 가장 먹먹한 작품이기도 했다. 윤수와 모은, 두 여자의 신념이 이 작품의 슬픔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느낌이다. 단지 아쉬움이라면 가장 중요한 결말의 과정, 그 반전을 드러내는 연출과 범인의 동기가 이 작품의 완성도에 아쉬운 마이너스가 된다.
총평
★★★☆
하나의 진실 위에 쌓여가는 수많은 거짓
그 거짓을 벗겨내는 두 여자의 신념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