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마저 설득시키는 백아진의 가스라이팅

티빙 <친애하는 X> 리뷰

by 투스타우

OTT만이 구현할 수 있는 초자극적인 드라마.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작품이 나왔다. 원작의 드라마화 단계부터 화제가 되었고, 한때 드라마신 최고의 PD였지만 <스위트홈>시리즈로 자존심을 구긴 이응복 감독의 복귀작. 무엇보다 악마 같은 여주인공에 아역배우부터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로 성장했던 김유정이 캐스팅되어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 바로 티빙의 오리지널 드라마 <친애하는 X>이다.


친애하는 X(2025)

방송&스트리밍 : 티빙

연출 : 이응복, 박소현 / 극본 : 최자원, 반지운

출연 : 김유정, 김영대, 김도훈, 이열음, 황인엽 등

러닝타임 : 12부작




시청자마저 설득당하는 백아진의 가스라이팅

<친애하는 X>는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X들에게 가스라이팅해서 벌을 내리는 소시오패스 여자의 이야기이다. X라는 표적에게 친애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가증스럽게 가스라이팅 한다는 의미이다. 캐릭터의 관계에서 <백야행>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심판하는 과정들이 <더 글로리>와 비슷하다. 또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악마화되는 과정은 <안나>를 떠오르게 한다. 재밌는 건 백아진이란 캐릭터가 미모와 연기로 모든 상황을 컨트롤한다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김유정의 놀라운 미모와 연기를 만나 자연스럽게 설득되어진다. 자극적이고 막장스런 이야기임에도 중반부까지는 개연성의 문제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캐릭터들의 서사부터 배우들의 연기, 이응복 감독의 연출까지 탄탄한 완성도를 선보인다. 시청자마저도 백아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악녀 서사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다.

20251128131932.png?type=w773 <친애하는 X>는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X들에게 가스라이팅 해서 벌을 내리는 악녀의 이야기이다.
20251126124053.png?type=w773 재밌는 건 시청자마저도 백아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악녀 서사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다.


백아진의 흥미로운 악마화

<친애하는 X>는 사실상 막장에 가까운 서사를 그리면서 드라마가 예상대로 가지 않는 신선함을 보여준다. 산 넘어 산 같은 전개를 그리면서, 점점 백아진이 악마화가 되는 전개가 파격적으로 펼쳐진다. 여기에 사랑과 연민, 이해의 관계로 얽혀있는 윤준서, 김재오와의 관계도 흥미로워서 드라마의 재미는 배가된다. 심지어 중반부 허인강과 그의 할머니 에피소드에선 백아진이 순수한 악이 아니라는 점을 그리면서, 이 캐릭터에 대한 연민마저 심어 넣는다. 백아진이 일말의 희망이라도 찾기 위해 내면에서 발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면서 그녀의 악마화를 더욱 흥미롭게 묘사한다. 복수의 카타르시스 만큼이나 백아진의 악마화 전개도 흥미로워서 자극적인 작품이지만 몰입할 수밖에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20251128125703.png?type=w773 막장스런 전개로 백아진이 악마화가 되는 전개가 파격적으로 그려진다.
20251128130839.png?type=w773 심지어 백아진이 순수한 악이 아니라는 점을 그리면서, 이 캐릭터에 대한 연민마저 심어 넣는다.




백아진이 흔들릴수록 허술해지는 개연성

백아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악녀의 서사에 어느 정도 설득당하는 느낌이었지만, 불안해 보였던 개연성이 후반부에 가선 결국엔 흔들리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자극적인 전개에 대한 피로감보다 이러한 개연성의 문제가 작품의 완성도를 조금씩 위태롭게 만든다. 그토록 치밀했던 백아진이 다이어리 문제나 인강과 헤어질 때 너무 달라 보여서, 흔들리는 백아진의 감정만큼이나 캐릭터가 허술해 보이는 단점을 드러낸다. 심성희를 왜 집에 놔두는지도 이해하기 어렵고, 문도혁의 손을 의심 없이 잡아버리는 선택도 뭔가 어색해 보인다.

20251128155612.png?type=w773 그토록 치밀했던 백아진이 다이어리 문제나 인강과 헤어질 때 너무 달라 보여서 캐릭터가 허술해 보인다.

백아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캐릭터들도 조금씩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준서가 엄마와 화해하는 과정이나 레나와의 감정 부분은 너무 애매모호해서 쉽게 그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아무리 순애보라고 해도 김재오의 마지막 선택은 좀 더 빌드업이 필요해 보였다. 인강을 복수하겠다는 서미리 대표의 전개도 다소 설득력이 부족해 보여, 뭔가 주변 캐릭터들의 전개나 퇴장을 대충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인다.

SE-0c3aaaa1-0c78-409d-9da6-f58d6d1359a0.png?type=w773 주변 캐릭터들의 전개나 퇴장을 대충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인다. 준서와 레나의 감정도 이해가 안 되고...
61.JPG?type=w773 특히 아무리 순애보라고 해도 김재오의 마지막 선택은 좀 더 빌드업이 필요해 보였다.

다행히 가장 높은 순간에 백아진을 무너뜨리는 결말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흔들리는 이야기를 잘 잡아준다. 백아진이 스스로 악행을 멈추는 게 아닌 윤준서로 인해 파멸되는 결말은 돌진하던 이야기에 가장 이상적인 브레이크가 되어준다. 이 작품의 전개 중 유일하게 예상되었던 결말이지만,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였기에 어찌 보면 가장 안정적인 엔딩이었다.

60.JPG?type=w773 백아진이 윤준서로 인해 파멸되는 결말은 뻔하지만 돌진하던 이야기에 가장 이상적인 브레이크가 되어준다.




폭주하는 김유정!!

사실 <친애하는 X>는 김유정의 연기를 보는 재미 하나만으로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킨다. 그만큼 백아진이라는 캐릭터가 드라마 역사상 몇 안 되는 치열한 악녀였으며, 그 중심에는 김유정의 신들린 연기가 있었다. 물론 배우들이 악역으로 변신했다고 모두 잘 어울리는 건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조금씩 빌런의 얼굴을 들이밀었던 김유정이 백아진이라는 전무후무한 미친년을 만나 무서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아름다운 외모와 연기로 가스라이팅하는 백아진이란 캐릭터가 최정점에 오른 김유정의 미모를 만나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느낌이다. 이전 귀엽고 발랄했던 아역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이러한 모습들이 더욱 파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배우의 이미지고 뭐고 다 내던지듯이 연기하는 김유정의 마인드가 백아진이란 캐릭터를 더 미쳐 보이게 만드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여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배우의 이미지를 망가뜨려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내년 백상에서 <미지의 서울>의 박보영과 <은중과 상연>의 박지현에 최대 대항마가 될 건 자명해 보인다.

20251128131215.png?type=w773 김유정의 신들린 연기를 보는 재미 하나만으로 작품의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킨다.
20251128130903.png?type=w773 여기에 배우의 이미지고 뭐고 다 내던지듯이 연기하는 김유정의 마인드가~
20251128130915.png?type=w773 백아진이란 캐릭터를 더 미쳐 보이게 만드는 느낌이다.

덤으로 이번 리뷰에서 꼭 언급하고 싶었던 배수빈의 연기. 이전 작 <은수 좋은날>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선보이면서, 이 배우의 놀라운 연기 폭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연모>에서부터 그동안 보여왔던 TV 드라마와 다른 결의 연기를 한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배수빈의 연기 스펙트럼과 깊이가 매 작품마다 달라짐이 확연히 느껴진다.

20251128131312.png?type=w773 전작 <은수 좋은날>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선보이면서, 배수빈의 놀라운 연기 폭을 깨닫게 된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기에 김영대의 연기는 살짝 아쉬움이 있다. 전반적인 연기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백아진만큼 복잡했던 윤준서라는 캐릭터를 소화하기에는 그 연기력의 한계가 확연히 느껴진다. 마지막 사랑하는 이를 파멸시켜야 하는 윤준서의 행동은 분명 연기력으로 설득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영대와 황인엽의 캐스팅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251128123829.png?type=w773 윤준서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하기에는 김영대의 연기력에 한계가 느껴진다.....
20251128155244.png?type=w773 보면 볼수록 황인엽과 캐스팅을 바꿨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51127150550.png?type=w773 친애하는 X (티빙. 2025)

<친애하는 X>는 분명 웰메이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응복 감독이 그리는 리듬미컬한 연출과 미장센, 음악의 활용과 엔터테인먼트를 그리는 화려한 미술까지. 원작의 힘과 배우들의 미친 열연으로 자극적이고 막장스러운 전개지만 중반부까지는 어색한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아진이 흔들리고 약해질수록 작품의 개연성이 흔들리면서 작품의 이야기가 허술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약해 보이는 건 단순히 자극적인 전개에 따른 피로감만은 아닐 것이다. 막장드라마가 웰메이드로 완성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작품이지만, 그만큼 이 작품의 성과도 크다. 특히 김유정의 배우로서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을 알게 된 건 너무나 큰 성과이다. 김유정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는 거 하나만으로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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