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은 아씨들> 리뷰
블로그에 드라마 리뷰를 시작한 지 어느덧 4년. 나는 처음으로 이번 작품에 만점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만점이 되지는 못했지만, 나에겐 이 작품이 그랬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 떨림과 설렘이 멈춰지지 않았던, 단연코 <작은 아씨들>은 나에게 2022년 최고의 드라마였다.
정서경 작가가 그려내는 <작은 아씨들>은 확실히 여타 드라마들과 결을 달리한다. 당연하겠지만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보는 듯한 인상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여러 번 곱씹게 만드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감정들을 그려내는 디테일, 여유가 넘쳐흐르는 배우들의 연기와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 미술 배경과 음악까지 모든 것이 하나같이 일품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는 치명적이고, 디테일을 살려주는 대사들은 너무나 짜릿하다. 김희원 감독은 이러한 극본을 우아하면서도 힘 있게 연출해 나간다.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기준은 이렇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원작 '작은 아씨들'에서 캐릭터의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다르다. 1화의 프롤로그만 보면 세 자매의 현실에서 흙수저들의 현실 도피와 사회 풍자를 그린 드라마로 읽힌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건지 쉽게 예상하지만, 그 예상을 비웃기라도 한 듯 마지막까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펼쳐진다.
계급 사회를 풍자하는 드라마에서 범인 찾기로 빠져드는 스릴러로, 심지어 중반부에는 푸른 난초로 인해 호러와 오컬트스러운 분위기까지 넘나든다. 후반부 부패 범죄 카르텔과 싸우는 누아르식 전개는 이 드라마의 시작 당시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였다. 물론 예상 밖의 범주와 널뛰기 식 장르 파괴에 어떤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내비칠 수도 있지만, 나에겐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서 오는 이 짜릿함이 너무나 신선했다.
장르의 파괴만큼이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연속도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백미이다. 의미 없이 시청자들을 피곤하게 하는 최근 드라마들의 반전과는 다른, 클리셰를 비틀고 설득되는 개연성 높은 반전들은 실로 감탄의 연속이었다.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고 리뷰했던 나이지만, 단연코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이렇게 전개를 예상할 수 없었던 드라마는 없었다.
이 작품이 전개뿐만 아니라 장르적인 느낌에서도 다양한 톤을 구사할 수 있었던 건, 서로 다른 정의를 내비쳤던 세 자매의 캐릭터성 때문이다.
원작 '작은 아씨들'에서 가져온 세 자매의 캐릭터성을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돈에 대한 세 자매의 각기 다른 생각과 정의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가 원령가라는 거대한 범죄 집단에 집결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우게 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선보이게 된다. 결국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이 작품을 블랙코미디와 스릴러, 오컬트에 범죄 누아르 물까지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바탕이 된다. 정확히 분배된 캐릭터성이 여러 혼합 장르를 선보일 수 있는 장치이자 매력 넘치는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렇듯 <작은 아씨들>은 어려운 드라마 같지만, 사실상 엔터테인먼트 가득한 드라마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주체를 그 무엇보다 신성하고 정직한 돈으로 삼는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돈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돈보다 권력이나 명예에 더 욕망을 보이는 사람들, 심지어 돈보다 자유나 사랑을 선택하는 욕망까지 다채롭게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다채로운 욕망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지만 이뤄질 수 있다는 점과 그러한 바탕에는 결국 돈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아씨들>은 그 어떤 드라마들 보다 온갖 장면과 대사들 속에 다양한 메타포를 숨겨 놓았다.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복선과 대사들, 작은 장면 하나부터 놓치기 쉬운 소품까지 온갖 메타포로 가득한 장치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해석과 질문들을 던지게 했으며, 놀라운 떡밥 회수와 이야기 전개는 또 한 번 이 작품의 숨겨진 메타포에 감탄하게 만든다.
이미 <빈센조>와 <돈꽃>에서 드라마를 재밌게 만드는 능력을 보여줬던 김희원 감독은 <작은 아씨들>에서 박찬욱 사단을 만나 날개 단듯 놀라운 연출력을 선보인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오마주 하는 듯한 매력적인 측면 샷과 시선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카메라 워킹이 상당히 돋보였다. 무엇보다 몽환적인 BGM의 활용과 소리의 끊김을 이용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력은 이 작품의 연출적 백미였다.
이미 전작 <헤어질 결심>에서 주제로 다뤄질 정도로 강렬했던 청색의 오묘함을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연장시킨다. 청색인지 녹색인지 알 수 없는 이 오묘한 컬러는 온갖 벽지와 드레스 그리고 난초에까지 난무하면서 이 작품의 오묘한 분위기와 감정들을 고스란히 표현해 낸다. 캐릭터마다 어울리는 인테리어 미술과 개성 넘치는 배경 섭외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인혜와 원상아의 예술적 감각과 류성희 미술 감독의 미적 감각이 제대로 믹싱 되면서, 이 작품의 미적 퀄리티를 압도적으로 끌어올리는 바탕이 된다. 드라마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미장센의 절대적인 퀄리티였다.
김고은의 커리어 중 최고는 <유미의 세포들>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청룡시리즈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던 이 놀라운 커리어를 그녀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완전히 갈아치워 버린다. 그만큼 <작은 아씨들>에서 보여주는 김고은의 연기는 너무나 완벽하고 압도적이었다. 욕망과 감정에 솔직한 인주라는 캐릭터를 그녀 특유의 백치미 가득한 생활연기로 무심한 듯 섬세하게 연기하면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성해 낸다. 특히 정서경 작가의 대사를 남다른 호흡과 톤으로 살려내면서, 극강의 몰입도를 선사하는 후반부의 연기력은 실로 감탄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8화 엔딩씬에서 보여준 화면을 장악하는 순간의 연기는 정말 올해 그 어떤 배우보다 대단했다. 특정 캐릭터와 연기에서 확실한 강점을 보이는 배우이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작은 아씨들>에서의 김고은의 연기는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명연기였다.
김고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여유가 넘쳐흐르는 남지현의 연기는 김고은의 대척점에서 너무나 멋들어졌으며,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다소 아쉬웠던 박지후는 확실히 좋은 10대 배우임을 다시금 증명시킨다. 위하준의 지적이면서도 절제미 넘치는 매력과 비록 주단테와 비슷했지만 또 한 번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준 엄기준도 너무나 마음에 드는 캐스팅이었다. 역시나 선한 배역에도 잘 어울리는 강훈의 차분한 연기와 지적인 카리스마로 중반부까지 무게중심을 잡아 주었던 김미숙의 연기도 훌륭했다. 작은 배역임에도 남다른 카리스마를 선보인 오정세와 이민우, 그리고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던 추자연까지 너무나 훌륭했다. 무엇보다 그 어떤 캐릭터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은 점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사실 누구보다 놀라웠던 건 원상아를 연기한 엄지원이다. 기존 여성 싸이코 빌런들이 선보였던 이미지와는 조금은 다른, 나태함과 치밀함, 나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오묘한 원상아를 엄지원 특유의 제스처와 연기톤으로 완벽히 표현해 낸다. 특히 선한 비주얼과 목소리와는 정반대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이중적인 매력은 김고은과 함께 이번 작품의 최고의 캐스팅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빈틈이 보이는 이야기 구조와 원상아와 진화영의 관계를 포함한 그녀의 연극에 대한 의문점, 모호하게 그려진 푸른 난초의 힘과 원령가의 비밀 등 시청자들의 해석에 맡긴 여러 의문점들은 분명 아쉽게 느껴진다. 디테일을 완벽히 가져간 캐릭터와 미장센과는 다르게 개연성 부족한 몇몇 장면들은 옥에 티처럼 느껴지고, 어수선한 홀수화에 비해 극강의 몰입도를 선사했던 짝수화의 간극의 차이도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건 엔딩이다. 700억 분배는 이 작품이 끌고 왔던 전반적인 기조나 메시지와 다소 다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반전의 요소 말고는 상당히 불필요해 보이는데, 차라리 최도일이 다시 훔치는 것으로 마무리 졌어도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검은돈을 세 자매가 나눠 갖는 결말에서 다소 배신감마저 들었다. 물론 이 돈이 어떻게 쓰여질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마지막 엔딩이 제일 아쉬웠다.
이동진 평론가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영화 별점에서 별 네 개 반과 다섯 개의 차이는 크게 없고, 굳이 차이라면 별 다섯 개의 영화는 온전히 나의 감정이 올인된 영화라고. 나에겐 <작은 아씨들>이 그랬다. <비밀의 숲>과 <나의 아저씨>이후 온전히 나의 감정이 올인되었던 드라마였다. 그저 오락적인 드라마로만 느껴질 이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와 디테일에 온전히 나의 오감이 절정으로 자극되었던 작품이었다. 마치 열일곱 살 데이빗 핀처의 <세븐>을 처음 봤을 때의 자극과 비슷했다. 누가 뭐라 한들 나에겐 경이로웠던 작품이었다. 비록 마지막 700억 나누기 엔딩 때문에 만점을 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