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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타우 Nov 05. 2023

긴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할 모두에게 내리는 처방전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리뷰

솔직히 말하면 이번 넷플릭스의 신작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보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이남규 작가의 전작 <힙하게>를 너무 많이 실망했었고,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주인공들도 함께 치유하는 그런 뻔한 작품이란 것을 예고편만 봐도 쉽게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신병을 다루는 이 작품의 이야기에 나 또한 우울해질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다. 분명 나처럼 비슷한 고민 때문에 이 작품의 시청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작품을 놓치지 않고 시청한 것에 대해 지금은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병원에서 펼쳐지는 간호사 중심의 의학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전형적인 의학 드라마의 구성을 보여준다. 각각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그려나가면서, 병원 의료진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중심이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봉사자가 아닌 직장인으로 그리는 간호사들의 애환을 원작자의 실제 경험 안에서 리얼리티하고 디테일하게 그려 나간다. 간호사와 의사의 대립이나 직장맘들의 고통, 그리고 적성에 대한 고민과 퇴사 등 여러 현실적인 간호사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미생>의 간호사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전형적인 의학 드라마의 구성을 보여주는데...
그 중심이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환자들의 치유와 함께 성장하는 주인공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공황장애, 우울증, 조현병까지 다양한 정신병 환자들을 다루면서 주인공들도 함께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신병 환자들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함께 치유하고 성장하는 주조연 캐릭터들의 변화들이 뻔한 클리셰 같지만, 그러한 과정을 그리는 디테일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 작품에 몰입하는 시청자들마저 위로하고 공감케 한다. 의학 드라마로서의 외형과 구성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러한 치유와 위로의 과정은 오히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더 가깝게 닮아 있다.

다양한 정신병 환자들을 다루면서 주인공들도 함께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과정을 그리는 디테일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매력적인 화면 전환과 진심인 CG

그동안 자신의 커리어와 조금은 다른 작품을 선보인 이재규 감독은 본인만의 특기를 이 진정성 가득한 드라마에 제대로 녹여낸다. 정신병 환자들과 주인공들이 함께 치유되는 과정을 교차 편집으로 그려낸 연출이 특히 인상적인데, 개성 넘치는 화면 전환으로 그려내는 환자와 주인공들의 데칼코마니적인 상황에 대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환자들과 주인공들이 함께 치유되는 과정을 교차 편집으로 그려낸 연출이 인상적이다.

자신만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준 CG는 이 작품의 또 다른 백미이다. 정신병의 다양한 증상들을 CG로 남다르게 표현하면서 독특한 비주얼들을 그려내는데, 무엇보다 이러한 비주얼들이 그 병에 대한 고통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6화에서 보여준 판타지 배경의 CG는 이재규 감독이 이 작품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정신병에 대한 고통을 CG를 통해 독특한 비주얼로 그려내면서 제대로 실감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6화에서 보여준 CG는 이재규 감독이 이 작품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족함 없는 배우들의 연기

정신병을 그리는 작품이기에 당연히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일 수밖에 없인데, 다양한 정신 질환을 연기한 조달환, 김여진, 정운선 등 여러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가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려 준다. 누구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사건을 담당했던 김서완을 연기한 노재원이란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인데, 게임 외에는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김서완이라는 캐릭터를 엇박자의 톤과 오묘한 표정으로 실감 나게 연기해 낸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한 사건을 담당했던 김서완 역의 노재원이란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병원을 담당하는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완벽함을 보여주는데, 이젠 자신의 매력을 너무나 잘 활용하는 연우진부터 이 작품의 버팀목이 제대로 되어준 이정은까지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해 보인다. 스타성에 비해 작품 선구안이 좋지 못했던 장동윤도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마이네임>부터 <몸값>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매번 엄청난 변신을 선보이는 장률도 또 한 번 나를 놀랍게 만들었다. 중성적인 매력과 특유의 그늘진 표정으로 민들레 역을 소화해낸 이이담이란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박보영

결국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정다은을 연기한 박보영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면 볼수록 정다은이란 캐릭터를 박보영 말고 누가 소화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로 이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우울한 작품을 환기시키는 특유의 밝은 미소와 투명한 눈빛은 이보다 더 정다은에 이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반부 우울증에 무너지는 무기력한 정다은을 연기하면서, 박보영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밝은 이미지와 대비되는 어둠은 그래서 더 임팩트 있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도 느꼈던 부분인데, 본인도 이러한 이중성에서 오는 강렬한 매력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올해 여배우들 중에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연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정다은이란 캐릭터를 가장 이상적으로 연기해낸 박보영!!
특유의 밝은 미소와 투명한 눈빛은 이보다 더 정다은에 이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반부 무너지는 정다은을 연기하면서, 박보영이 가지고 있는 밝은 이미지와 대비되는 어둠은 그래서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도 저도 아닌 멜로

이 작품도 몇몇 아쉬운 부분들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멜로 이야기가 이 작품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감독과 작가도 멜로 이야기 자체가 이 작품이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멜로 라인의 서사를 띄엄띄엄 보여주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악수처럼 보였다. 차라리 멜로 이야기를 넣을 거면 제대로 넣던가 아니면 과감하게 뺐어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를 그린다. 특히 알다가도 모르게 사라진 송유찬의 멜로 서사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아까워 보였다.

주인공들의 멜로 이야기가 이 작품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전달되는 고통

사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정신병을 다루면서 전달되는 그 특유의 우울감이다. 물론 중반부까지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밝은 캐릭터들로 인해 어두운 분위기를 곧잘 환기시키지만, 후반부 정다은이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이 작품의 분위기는 시청자에게 시종일관 우울감과 고통스러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이 그리는 언젠가 맞이할 아침을 인내와 고통 속에 견디듯 기다리면서, 그 긴 밤을 시청자도 함께 헤쳐나가게 된다. 이러한 정신병을 다루는 우울한 에너지는 결국 이 작품의 흥행에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완전히 치유될 수 없는 정신병처럼 이 작품이 그리는 하이라이트와 결말도 그리 극적이거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후반부 정다은이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이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는 시청자에게 시종일관 우울감과 고통스러움을 선사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2023. NETFLIX)

그럼에도

이 작품을 반드시 봐야 하는 이유는 마음의 병에 대한 인지와 정신 병원에 대한 문턱을 낮춘 이 작품의 진정성에 있다. 누구나 마음의 병이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치유하는 방법을 그려내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마치 지금의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또 하나의 처방전처럼 느껴진다. 자의든 타의든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찾아오는 정신병으로 긴 어둠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언젠가 반드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을 내비치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 설득력 있고 희망적인 위로가 되어준다. 여기에 정신병을 범죄자가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그리는 메시지와 환자 가족들에게 바치는 따스한 위로와 응원까지. 마치 공중파 드라마에서 보여줘야 했던 드라마의 순기능을 넷플릭스에서 대신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알맹이 없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변질되어 가는 넷플릭스 드라마에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긴 어둠을 겪고 있을 당신에게 반드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을 내비치는 희망의 메시지는 그 어떤 위로보다 크게 느껴진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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